연자 제9장

2020. 11. 5. 22:48완결/《연자软刺》唐酒卿,2017

 

 

봉투

 

 

어린 시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당시 갈대숲에서 뒤쫓던 잠자리는 아직 잡히지 않았는데 사람은 이미 빠르게 벗어나 소년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롼쓰에게는 각양각색의 봉투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소녀의 치맛자락이 꽃밭을 가르며 흔들렸고, 그의 자전거 바구니와 서랍을 채운 문자는 시적인 정취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 축구를 하며 거칠게 달릴 줄만 알았던 남자 아이가 지금은 의외로 소년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아졌다.

 

시끄럽게 벨을 울리며, 롼쓰는 자전거를 밟은 채 두유를 단숨에 들이마셨다.

뒷좌석에 올라탄 친종이 말했다. "잘 잤다."

"곧 지각이야." 사람을 태운 롼쓰는 가속하여 번개처럼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까만 머리카락이 바람에 걷혀 부드럽게 귓가를 쓸었다. 친종이 갑자기 귓불을 건드렸다. 롼쓰는 고개를 기울여 한쪽 어깨를 스치며 말했다.

"손발 가만히 놔둬. 안 그러면 도랑에 나뒹굴 거야."

"귀는 왜 뚫었어." 친종이 가까이서 보더니 구멍은 단 하나였고 아무 것도 끼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전에는 기생오라비 같다고 했잖아."

"지금은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롼쓰가 말했다.

이때 마침 자전거가 과속방지턱을 지나 두 사람은 냅다 흔들리며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크악!"

"인사 좀 해도 될까요," 친종이 머리를 그의 어깨에 올렸다. "미남 오빠!"

"바빠요."  롼쓰가 말했다. "됐어, 다음엔——크아악!" 그는 흔들리면서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친종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래턱으로 그의 어깨를 콕콕 누르며 간지럽혔다. 학교 문 앞에 이르자 멀리서 쿵자바오가 붉은 완장을 차고 학생증을 검사하고 있었다. 롼쓰가 휘파람을 불자 누군가 소리쳤다. "자전거 세워두고 들어가!"

쿵자바오가 등을 돌려 신발 끈을 묶는 척했다. 아무도 막지 않는 틈에 롼쓰는 '쌩'하고 문으로 뛰어들어가 쿵자바오의 어깨를 스치면서 '이따 보자'고 그의 등을 두드렸다. 쿵자바오는 정문 초소의 창문을 한참동안 쳐다보고서야 비로소 등에 붙은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알파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크" 쿵자바오는 소리내서 웃었다. "심심할 틈이 없다니까."

두 사람은 미친듯이 교사로 뛰어들었다. 복도 입구가 갈릴 때 롼쓰가 친종에게 가방을 집어던졌다.

"가방에 도시락 들었어. 엄마가 너한테 계란이랑 춘권 싸주셨어. 쉬는 시간에 다 먹고 저녁 때 돌려줘."

"그럼 학교 마치고 봐." 친종은 한 걸음에 두 계단을 올라가더니 다시 몸을 돌려 소리쳤다. 

"잊고 있었네, 오늘의 쪽쪽!"

"소름돋아!" 롼쓰가 웃으며 말했다.

수업종이 치자 학생주임의 하이힐 소리가 복도에서 '또각또각' 울렸다. 그녀는 허리를 쫙 펴고 소리쳤다.

"누구야! 수업 중에 쪽쪽이라니. 난 다 봤어, 롼쓰! 남학생 둘이서 뭐 하는 거니!"

"아니에요." 롼쓰는 교실 입구에서 고개를 쳐들며 그녀에게 눈을 깜빡였다.

"그럼 선생님한테도 해드릴게요. 황선생님 쪼오옥!"

"하아" 황미인은 그에게 화가 나 헛웃음이 나왔다. "수업이나 잘 들어!"

다른 곳에선 친종이 아직 교실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담임 선생이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 그리고 다가와서 그에게 물었다. "너 뭘 안고 있니?"

친종은 사실대로 말했다. "아침밥이요."

"교실 내 취식은 금지야. 아침부터 거하게도 준비했구나." 담임 선생은 그를 한 번 보고 말했다.

"서운하니? 그럼 해봐. 만약 3분 만에 다 먹을 수 있으면 들어가게 해줄게."

친종이 도시락을 열자 안에는 계란 두 개와 춘권 네 개가 있었다. 그는 덥석덥석 해치웠다. 3분도 필요 없었다. 다 먹은 뒤 여운까지 즐기며 침착하게 뚜껑을 덮고는, 담임 선생을 향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저 들어갑니다."

"......"

 

롼쓰는 손을 내밀어 교과서를 찾아 더듬었는데 초콜릿 한 상자가 만져졌다. 고개를 숙여서 보니 연녹색 봉투가 아래에 깔려 있었다. 쿵자바오는 뒷자리에서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이 아가씨 빠르게 왔다 갔네.  완전 특수요원 같아. 난 지금까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렇게 폐를 끼쳐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롼쓰는 초콜릿을 건드리지 않고, 외투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역시나 박하사탕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그는 입속으로 하나를 넣고, 책을 펴서 얼굴을 반쯤 가린 뒤, 뒤로 기대서 쿵자바오를 향해 말했다. "나도 본 적이 없어."

"아," 쿵자바오는 그를 따라 책으로 가린 후 "이렇게 대단하다니까. 편지에 어느 반인지 적혀 있지 않아?"

"안 봤어." 롼쓰가 말했다. "매일 축구하고 돌아가면 시간이 몇 신데. 씻고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어."

"잘난 친구, 난 네가 바쁘지 않다고 생각해." 쿵자바오는 코웃음쳤다.

"며칠 전만 해도 발코니를 지키며 친종 피아노소리를 들었다며."

"그건 별개의 문제."

교탁에서 출석을 부르자, 쿵자바오는 제발저리듯 자리에 앉아 몇 분 안 되어 이 일을 잊어버렸고, 롼쓰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방과 후 쿵자위는 아직도 계산 문제를 풀고 있었다. 콧등에 걸린 안경은 렌즈가 맥주병 바닥 만큼이나 두꺼웠다. 그는 친종이 가려는 것을 보고 서둘러 가방을 끌어당겨서는 기어이 친종에게 문제를 풀고 가라고 설득했다. 친종이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땐 이미 20분이나 늦은 뒤였다. 학교에서는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반에서 작은 사과를 신청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전거 보관소에 비스듬히 스며든 귤빛 햇살이 눈부셨다. 롼쓰의 얼굴은 반쯤 그늘에 가려져 있었고, 나머지 윤곽은 아주 수려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손에는 농구공을 들고 있었다.

대화 상대는 한 여자 아이였다.

친종은 걸음을 멈추고 기둥에 몸을 기댔다.

"고마워...... 너...... 그래도 난...... 넌 내 작은 사과야......"

쯧.

친종이 혀를 찼다. 롼쓰의 목소리가 방송의 세뇌곡과 합쳐졌다. 그는 손끝으로 무의식적으로 주머니 속의 박하사탕을 헤집으며 롼쓰의 아른거리는 옆모습을 보고 있었다. 얼마 후 맞은 편 여자 아이는 갑자기 몸을 돌려 달려갔다. 롼쓰는 코끝을 만지며 알수없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친종을 마주보았다.

롼쓰는 농구공을 친종에게 던졌고, 친종은 안정적으로 받았다.

"타." 롼쓰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집에 가자."

"오늘은 농구 안 해?" 친종은 뒷좌석에 앉았다.

"며칠 쉬려고." 롼쓰가 말했다. "교실에서 대체 뭐하느라 여태 꾸물거렸어?"

"쿵자위 시중 드느라." 친종은 사탕봉지를 뜯으며 불렀다. "롼롼."

"그렇게 좀 안 부르면 안될까? 아, 네가 위층에서 그렇게 부르면 난 학교에 못 다닐 거야......"

롼쓰가 고개를 돌리자 박하사탕에 가로막혔다. 입에 물었더니 혀끝에 은은하게 청량감이 느껴졌다.

"뇌물 주지 말라고 했지."

"결재 부탁드립니다, 리더." 친종이 말했다. "내일 네 방에 가도 될까?"

"컨펌." 롼쓰가 말했다. "내일 통관되니까 3DS 갖고 가."

친종은 '응'하고 대답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 그들은 더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동네 개가 짖기도 전에 롼쓰는 일어났다. 발코니가 계속 '딩딩딩' 울리고 있었다. 그와 친종이 연결된 방울 소리였다. 상대를 부르고 싶을 때 방울을 당겨서 울렸다. 그가 아무렇게나 티셔츠를 입고 문을 열어젖히자 친종이 난간에 기대 있는 게 보였다.

롼쓰는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졸다시피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너."

친종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 어디 고장난 거 같아."

"...... 하?"

친종은 엎드리며 다가오더니 두 사람이 반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작게 속삭였다. 그는 마침내 약간의 주저와 망설임을 보이며 말했다. "어젯밤에...... 꿈을 좀 꿨는데."

롼쓰는 재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 알겠다. 그건 지극히 정상이야."

친종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침대에 오줌을 쌌어."

롼쓰가 말했다. "...... 그건 몽정이야, 뚱땡아."

"하지만 내가 꿈에서 본 건 너였어."

친종은 순진무구한 말투로 물었다.

"설마 너도 내 꿈 꾸고 몽정하는 거야?"

"......"

"엄마한테 이를 거야." 롼쓰는 하품을 했다. "아침부터 건달한테 희롱을 당하다니, 이런 식으로 교태 부리면 내가 너 때릴 거야."

"나는 진지해." 친종은 손을 뻗어 롼쓰의 옷깃을 잡아당겨 새하얀 가슴이 드러나게 한 뒤 말했다. "젠장 내 꿈에서 본 거랑 똑같잖아!"

"......" 롼쓰가 말했다. "당기지 마. 추워." 

그는 옷깃을 되돌려놓고 다시 말했다. "그래. 꿈은 꿈이지...... 교과서에 남자 꿈은 꿀 수 없다는 말도 안 나오잖아."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몽정하는 건 정상이야."

말을 마치고는 또 친종의 멱살을 사납게 끌어당기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 다음엔 쿵자바오 꿈 꾸고!"

"......"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친종이 보름도 안돼서 쿵자바오에게 롼쓰가 조기연애를 시작했다는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을까. 계기는 일주일 전 비가 오던 날 롼쓰가 체육팀을 도와 기자재를 나를 때 여자 아이가 우산을 받쳐 준 것이었다. 마침 롼쓰의 이어폰 안에서 '쪽빛 안개비 속에서 나는 너를 기다려' 부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다시 만난 여자 아이가 곧바로 인연이라고 느껴졌다.

이를 들은 친종은 말했다. "내 생각에 네 머리가 단선된 것 같아."

"이거 둘이 의기투합해서 물흐르듯 뭐하는 거야." 롼쓰가 뒤에서 친종의 목덜미를 단단히 감으며 그를 누르고 말했다.

"축하 좀 해주지 않겠니? 좋은 얘기로 나 좀 편안하게 만들어줘."

"기쁘다. 축하해." 친종이 말했다.

두 사람은 농구를 하고 난 뒤라 이렇게 기대고 있으니 땀으로 끈끈해졌다. 롼쓰는 손을 풀지 않은 채 팔뚝을 걸고 물을 마셨다. 친종이 고개를 들어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네 여자친구 왔어."

"그 단어로 부르지 마." 롼쓰는 물병을 친종 품에 던졌다.

"엄마가 들으면 때릴 거야. 형은 아주 풋풋한 교내 연애일 뿐이야. 작고 순수하다고."

"아니야." 친종이 그를 쳐다보았다. "여, 자, 친, 구. 또는 이성친구. 넌 어느 쪽을 원해?"

롼쓰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침대에 오줌 싸는 사람이 이해하긴 어렵겠지."

"......" 친종이 말했다. "너는 씨, 그 꿈 얘기 하지 말라더니——"

여자 아이가 서서 수줍게 물 한 병을 내밀었다. 먼저 친종을 보고 또 고개를 돌려 롼쓰를 보더니 "롼쓰"하고 불렀다. 농구장에선 호의 없는 휘파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롼쓰는 친종의 등을 치며 일어나 여자 아이를 보고 웃었다.

친종은 여자 아이가 가장자리에 놓아둔 물을 건드리지 않고, 롼쓰가 던져 준 남은 병을 마시고 의자에 기대 그가 서서 여자 아이와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쿵자바오가 땀을 닦으며 옆에 앉더니 덩달아 쳐다봤다.

"이 나쁜 남자." 쿵자바오는 속없이 말했다. "분명 날 가장 사랑한다고 했었는데."

"리닝한테 전해줄게." 친종이 말했다.

"나의 동생아, 장난 치지마."  쿵자바오가 말했다. "넌 늘 다른 사람 둘 쳐다보면서 뭐해? 롼쓰 이 양심없는 놈은 이미 우리 고독한 황금 늑대 조직을 배신했어. 나는 정말 실망했다. 야, 넌 부럽지 않아?"

쿵자바오는 손을 친종 눈앞에서 흔들었다. "무슨 생각해."

"자전거를 하나 사야하는 게 아닐까 싶어." 친종은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내 자가용을 점거당할 거라는 예감이 들어."

"그럼 나가셔서 존귀하신 손을 들어올려 한 대 잡으시죠. 틀림없이 더 빠르고 쾌적하실 겁니다. 사방이  뚫려 시원하고 미친듯 덜그럭대는 자가용보다 훨씬 좋을 것을 장담하죠."

쿵자바오는 웃다가 곧 말했다. "정말 불편해?"

"아니." 친종은 일어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온몸이 홀가분해."

 

 

 

 

작가의 말 :

도대체 이건 사랑에 빠진 바보쫑인가, 계략쫑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골라보세요.

봐줘서 고마워요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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