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 제12장

2020. 11. 8. 01:20완결/《연자软刺》唐酒卿,2017

 

 

고양이귀

 

 

오후엔 날씨가 돌변해서 비가 유리창을 빠르게 두드렸다. 저 멀리까지 봐도 온통 어둑어둑한 먹구름이 가득했다.

롼쓰가 교실을 나왔을 때 샤징은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샤징과 인사를 나눈 그는 두 사람 모두 우산이 없는 걸 깨닫고 교사 입구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우산을 펼치거나 비가 멎길 기다리느라 붐비는 바람에 수시로 '내 신발 밟지마' 소리가 들렸다.

친종을 보지 못한 롼쓰가 얘가 아직 나오지 않은걸까 생각하던 차에 뒤쪽에서 친종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샤징, 먼저 가."

작은 꽃우산 하나가 팔로 사이로 건네졌다.

"웬일?" 롼쓰가 받아서 우산을 펼쳤다. 이 우산은 아마 여학생이 친종에게 준 것일 터였다. 아주 여리고 작아서 롼쓰가 받쳐들자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그는 빗속에 고개를 내밀고 샤징에게 넘겨주었다. "너무 작아, 네가 쓰고 돌아가."

누이가 가자마자 두 사람은 또 잠시 절굿공이처럼 서 있었다. 롼쓰는 도저히 더 참지 못하고 친종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뛰어갈까?"

"자전거 타자." 친종이 외투를 벗었다. "너는 운전하고 나는 가리고."

"그러자."

 

"입어, 가면서 날 덮어주고 너는 형 등에 맡겨." 자전거에 올라타자, 롼쓰는 갑자기 외투를 벗어 뒤의 친종에게 던졌다.

말을 잘 듣는 친종은 몸에 덮어 지퍼를 단단히 잠그고, 안장 아래 바에 서서 그의 어깨를 짚었다. 롼쓰가 발을 떼고 힘껏 휘파람을 불자 앞의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는 이미 빗속으로 뛰어들어 날아가듯 바람을 일으켰다.

"알도 쓸 데가 있네." 자전거를 모는 롼쓰의 얼굴 위 머리카락이 비에 젖어들었다. 그가 말했다. "덮을 줄을 알아......"

뒤편에서 몸을 누른 친종은 외투를 지탱해 그의 머리꼭대기를 가린 게 거의 차양막 같았다.

"너 가려주는 거," 친종이 말했다. "이거 보통 일 아니야."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롼쓰가 크게 커브를 틀었다. 지면이 미끄러워 자전거가 1초 정도 확연하게 미끄러지자 친종은 '크악'하며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귓가에 소리쳤다.

"직업정신 좀 가져, 미리 신호를 좀 주면 안 될까? 이따 집에 도착하면 난 날아가고 없겠어!"

롼쓰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기울여 소리쳤다. "너 이 자식 목소리좀 낮춰! 귀 먹겠다!"

"내 말은......" 친종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됐어." 롼쓰가 말을 잘랐다. "너 그냥 고함치는 게 낫겠다."

"크악" 친종은 그의 귓가로 다가갔다. "너 이거 나 괴롭히는 거지!"

"크악!" 롼쓰는 놀라서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움직였다. "진짜 고함을 지르냐! 이 일은 우리 잠시 작은 소리로 얘기하지 않을래? 온 세상이 다 알겠다!"

"페달이나 잘 밟아." 친종이 말했다. "좀 이따 상을 줄게."

"친종." 롼쓰는 웃었다. "너 요 며칠 유난히 아니꼽다? 간이 부었구나."

"좀이 쑤셔서 그래." 친종은 그의 귓바퀴에 가볍게 호 하고 입김을 불었다. "나 물 거야?"

롼쓰는 온 어깨가 반쯤 저려오는 바람에 손을 떨었다. 자전거의 핸들은 곧 비뚤어졌다. 앞쪽에서 택시가 질주해오자 롼쓰는 핸들을 옆으로 돌려 난간에 부딪히며 다리를 뻗어 고정했다. 차가 '쌩'하고 지나가자 두 사람의 온 몸에 시원하게 물이 튀었다.

친종&롼쓰 : "......"

"넌 독이 있어." 롼쓰는 친종을 뒤돌아보고 손을 들어 더러운 물을 닦아내더니 또 소매를 혐오스럽게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 밤 너 집에 못 가! 가서 내 옷 빨아 놔! 다 빨기 전엔 저녁도 안 줄 거야!"

"무서워라." 친종은 앞선 그의 말투를 따라 말했다. "내가 탈게."

"내 거야." 롼쓰는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안 줘."

"쳇" 친종은 나지막히 고개를 떨며 웃다가 다시 그의 어깨를 눌렀다.

"왜 이렇게 인색해."

"네가 뭘 알아?" 롼쓰는 모질고 호되게 말했다. "이건 근검절약이라는 거야. 네가 몰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폐차하고 집안까지 망할 거야."

"너 먼저 자제해." 친종이 말했다. "내가 몬다고 당장 폐차될 정도면 그건 이 자전거가 진작 은퇴했어야 했다는 거야."

"네 혼돈의 힘을 버티지 못한 거지." 롼쓰는 말했다. "난 이렇게 생존을 위해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네가 좀 고무시켜줄 순 없겠니?"

오르막길에서 친종은 아예 외투를 머리로 받치고 란쓰의 허리를 쥐더니 넘치도록 기분을 고무시키며 소리쳤다. "응, 화이팅. 넌 할 수 있어 롼롼, 힘내힘내힘내, 네가 제일 뚱뚱해."

롼쓰는 하마터면 다리가 미끄러질 뻔했다. "됐어!"

"그래." 친종은 목소리를 가라앉혀 롼쓰의 귀에 대고 나지막히 말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곳은 바로 이 시의 가장 가파르기로 유명한 오르막으로, 시에서 최고로 특색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일컬어집니다. 그동안 몸을 사리지 않고 오르막을 정복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최후의 승리는 분명 멘탈 왕자의 것일 겁니다. 바로 이 시의 열혈청년 롼쓰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놀랍도록 굳은 의지로 위를 향해 오르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멈추더니 갑자기 말했다. "난 그의 옆모습이 굉장히 잘생겼다고 생각해."

롼쓰는 발이 미끄러져 황망히 땅을 짚었다.

친종은 가볍게 말했다. "칭찬을 못 받다니, 심리적인 자질을 좀더 향상시켜야겠군요."

"평범한 건 없을까?" 롼쓰가 말했다. "너 끈적거리지 좀 마, 나를 졸라 죽일 셈이야?"

"허리를 졸려서 죽는 경우는 본 적 없는데." 친종이 비아냥거렸다. "넌 자전거나 좀 집중해서 몰아줘."

 

두 사람이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진작에 온몸이 젖은 후였다. 축축한 진흙이 튀어 외투가 더러웠다. 둘이 뭉쳐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친종은 정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롼쓰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리친양은 야근을 한다는 메모를 남겼고, 롼청은 출장을 간다는 음성메시지를 남겼으며, 특히 친종이 굶어 죽을지 모르니 꼭 집으로 불러오라고 당부했다.

롼쓰는 냉장고를 뒤적여 라면 몇 봉지를 찾았다. 그가 꺼내들 때 친종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이미 외투를 벗고 젖은 티셔츠만 입고 있었다. 다가와서 보더니 신선한 채소와 계란도 집어들었다.

"너 먼저 가서 씻어." 친종은 계란을 품에 안고 부엌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 채소를 씻었다. "내가 밥 할게."

그가 고개를 숙이고 채소를 씻는 옆모습이 아주 특별해서 롼쓰는 잠깐 쳐다보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말했다. "내 옷으로 갈아입어."

"이따 샤워하고 갈아입을게." 친종이 옷을 걷어올리며 소년의 단련된 복근을 드러냈다. 

"땀냄새랑 더러운 물 뒤범벅인데 네 옷을 입는 걸 참을 수 있겠어?"

"그럼 이따 너 씻을 때 화장실 옷바구니에 넣어줄게."

롼쓰는 돌아서서 상의를 벗었다. "밥 먹고나서 빨래하는 거 잊지 마!"

뒤에서 친종이 휘파람을 불었다. "몸 좋은데."

"이거 유료야." 롼쓰가 고개를 돌려 새끼손가락을 그으며 도발했다.

"동생아, 네 그 약간의 근육으로는 아직 멀었어."

친종은 실소하더니 계란을 깨뜨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너 대단하지, 말랑근육."*

"크악." 롼쓰는 이미 욕실 문을 닫고 샤워기 물을 틀어 맞으며 소리쳤다. "말랑은 빼!"

*원문 肌肉软

 

샤워를 하고 나오니 식탁엔 이미 밥과 몇 가지 반찬, 탕이 차려져 있었다. 탕은 평범한 계란탕이었는데, 새우를 약간 넣어 감칠맛이 났다. 마른 솥에 든 저민 감자는 더우츠를 사용해 맛이 매우 강했지만 오늘 같이 추운데다 온 몸이 젖기까지 했을 때는 매콤한 맛과 뜨거운 국물로 위를 채울 필요가 있었다. 이제 막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친 사지는 따뜻했고 속도 후끈해졌다. 곧 온 몸이 개운하고 한기도 사라졌다.

"좀 이따 설거지 할게." 친종은 재빨리 밥을 다 먹고 자신의 그릇을 치운 뒤 화장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롼쓰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친종이 그를 불렀다.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거품이 가득한 채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욕실 문을 조금 열었다. 친종은 젖은 머리를 이마에 드리우고 있었다.

"옷은?" 친종은 손을 들어올려 축축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이마를 드러내며 계산을 따지는 모양새였다. "까먹은 건 아니겠지."

롼쓰는 문으로 비집고 들어가 세면대에서 거품을 씻어냈다.

"지금 주려고 했어, 방금 떠오른 거 아니야!"

그는 거울을 통해 친종을 힐끗 보았다.

친종은 '드르륵' 문을 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보여줄게. 편하게 봐."

"...... 눈 썩어!"

친종은 키가 아주 빠르게 자랐는데, 아마도 친웨에게 유전된 것인지 185cm는 넘길 것 같았다. 그가 내년에 롼쓰를 넘겠다던 말은 이 기세라면 장난이 아닐터였다. 사실 지금도 이미 두 사람은 몇 센티 차이가 났다. 친종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고 마른 편이며 탄탄한 허리와 배는 줄곧 친종과 같이 농구를 해서 훌륭하게 단련되어 있었다. 소년의 피부는 아직 희고 깨끗했고, 젖어있는 새까만 머리를 쓸어올리자 약간 날카로운 용모가 드러났다. 손가락도 단정하고 가늘고 긴데다, 아래에는......

"너 사양 좀 하지 않을래?"

친종은 목욕 수건을 꺼내 몸 앞을 감았다.

"눈도 안 떼고 음탕하게 보고 있는 거 알아?"

롼쓰의 앞치마가 그의 얼굴을 때렸다.

"너는 맘대로 보면서, 형도 너처럼 보겠다는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친종은 문 옆에 기대어 그가 침실로 들어가 옷을 뒤지는 것을 보며 말했다.

"좀 큰 걸로 골라, 너무 끼지 않게."

"흥" 롼쓰는 마리오 프린팅이 있는 옅은 회색 티셔츠를 꺼냈다. 그의 티셔츠는 전부 이모양이었다. 입으면 멋있지만, 반드시 유치한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겨우 몇 센티 차이에 얼마나 끼겠어. 속옷은 필요 없어?"

"쓸데없는 소리. 아니면 나더러 티셔츠만 입고 방 안을 싸돌아다니라고?"

친종은 경악하며 말했다. "너 이런 취향도 있었구나."

롼쓰는 몇 걸음 후퇴해서 갑자기 수중의 드로즈를 멋진 선을 그리며 맹렬하게 던졌다.

"받아라! 팬티도 없이 돌아다니다니 누가 그렇게 용기를 줬니?"

친종이 받아 재빨리 걸치고 목욕수건을 걷은 뒤 티셔츠를 입었다. 그는 거울로 차림새를 한 번 살펴보더니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몸을 돌려 거울 속의 드로즈 뒷면을 가리켰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이 사이즈에도 곰돌이푸가 있다니, 제조업체에 병이 있나봐."

"이건 동심을 잃지 않았다고 해야지." 롼쓰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 몸께선 아직도 원피스를 입고 계신다구."

"...... 자랑스러운 얼굴이네."

친종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곰돌이푸를 다시 보며 물었다.

"나는 왜 곰돌이푸야?"

"손 가는 대로 집었어." 롼쓰는 다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했다.

"너는 옷 깨끗하게 빨아 놔."

친종은 세탁기를 열고 빨랫감을 뒤적이며 물었다.

"갈아입은 속옷은? 먹었어?"

"직접 빨았어." 롼쓰는 참지 못했다. "아니, 친종, 너 치한이야? 팬티도 관심있냐!"

"그래그래그래" 친종은 쪼그리고 앉아 더러운 옷을 빨기 시작했다.

"해적왕이 될 남자를 입은 남자가 손수 자기 팬티를 빨다니, 깜놀.jpg."

 

설거지와 빨래를 마치고 두 사람은 소파에 비집고 앉아 TV를 보았다. 채널을 뒤지던 롼쓰는 마침 화장을 하고 머리를 땋는 장면을 보고는 채널을 멈추고 꽤 진지하게 보았다.

"배워서 샤징 해주게?" 친종은 턱을 괴었다. "시큼시큼하네."

"분위기 못 읽네." 롼쓰는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핀 보는 거야. 다음 주 리닝 생일 때 여자가 쓸만한 걸 줘야지."

"꽤 신경써주네." 친종은 TV로 시선을 돌리더니 더는 별말이 없었다.

"크악" 롼쓰는 쌍꺼풀을 붙이는 장면을 보고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렇게 잔인하다니."

쉐이딩을 할 때 그는 또 물었다. "이러면 뽀뽀할 때 얼굴이 닦이지 않나?"

"네가 해 봐." 친종은 탁자 위에 몸을 숙여 리친양이 남긴 고양이 귀 핀을 집더니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는 롼쓰의 머리에 끼웠다.

몸에 약간의 사납고 고집스러운 기질을 띤 롼쓰가 이런 귀척 전용 고양이 귀를 끼니——

미친.

친종은 느릿느릿 다리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미 티셔츠로도 가릴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팔꿈치를 양 무릎에 괴고, 고개를 돌려 손바닥으로 입과 코를 반쯤 가렸다.

이건 살상력이 지나치다. 묘사할 수 없을 만큼 당혹스럽다.

 

 

 

 

작가의 말 :

고양이귀 롼

저도 보고싶어요.

친엄마의 폭풍눈물.

봐줘서 고마워요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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