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0. 01:22ㆍ완결/《연자软刺》唐酒卿,2017
농장
눈을 가리고 있던 롼쓰의 손등에 부드러운 실크처럼 가벼운 바람이 닿았다. 롼쓰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뽀...... 뭐? 뭐 사달라고, 빙수?"
"쯧." 친종의 셔츠는 따뜻한 바람을 감싸고 있었다. "빙수 필요 없어."
"그럼 뭐 하고 싶어?" 롼쓰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 듣고 있어."
친종은 그를 쳐다봤다. "말하면 들어줄거야?"
"말하면 들어줄게." 롼쓰는 소리내어 웃었다. "너 뭘 하고 싶은데?"
친종은 그를 향해 손을 들어올리더니 빠르게 그의 뺨을 스치고 야구 모자를 벗겨 자신의 머리에 쓰고 말했다. "돌아가서 황서를 내놔, 한창 푸른 세월의 청년은 성기능 저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너 어디서 구했어?"
"압수한다고?" 롼쓰는 그를 놀렸다. "무슨 오지랖이람. 황서를 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아예 앞으로 어떤 속옷을 입을지도 네가 정해주지 그래?"
"그래" 친종이 말했다. "난 네가 그 곰돌이푸 입는 걸 좋아해."
롼쓰 : "......"
"이미 좋아한다고 했잖아." 롼쓰가 말했다. "내가 스무 장 사줄테니까 매일 다양한 포즈의 곰돌이푸로 바꿔 입어. 어때?"
"말을 반만 들었네." 친종은 한숨을 쉬었다. "난 네가 입은 걸 보는 게 좋다고 한거야."
"보는 게 좋다고?" 롼스는 매마른 입술을 핥았다. "돈을 내. 한 번에 50위안."
두 사람은 서로를 경멸하듯 마주보다 몇 초 후 동시에 분위기를 깨뜨렸다.
"미친놈." 롼쓰는 웃으며 말했다. "난 이제 곰돌이푸 입기 싫어, 난 해적왕이 좋아!"
"성숙한 남자는 모두 가로줄무늬를 입어." 친종의 손가락이 허리띠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 같은 사람."
"미성년은 아껴둬." 롼쓰는 다리를 뻗으려 했지만 자리가 좁은 걸 깨닫고 억울하게 계속 다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개학하면 고2인데, 넌 문과에 가고 싶어, 이과에 가고 싶어?"
"문과." 친종은 바람을 후 불었다.
"딱이네." 롼쓰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후배 좋지. 고2때 공부 열심히 해, 소녀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도대체 누가 오지랖이 넓은지 모르겠다." 친종이 말했다. "관군만 불을 질러야 해?"
"그럼 너 눈에 든 사람 있어?" 롼쓰가 그를 보았다. "나한테 보여주기도 전에 서두른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누가 나더러 눈에 든 사람이 없대?" 친종은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난 진작부터 눈에 든 사람이 있었어."
"누구?" 롼쓰가 똑바로 앉았다. "어느 반이야?"
때마침 종점에 도착해, 친종은 가방을 등에 메고 일어나 좌석 등받이를 받치고 롼쓰를 향해 말했다. "굉장히 둔한 사람이야." 또 약간 여운이 남는 듯 말했다. "그리고 굉장히 귀여워. 알고 싶어? 안알랴줌."
"아." 롼쓰는 손뼉을 짝짝짝 몇 번 쳤다. "평생 내 앞에 데려오지 마."
"그럼 기다려봐." 친종이 말했다. "아마 너도 꽤 낯이 익을 걸."
크악.
롼쓰는 뒤따라 몸을 일으키고 차에서 내리며 낯익은 소녀 몇 명을 떠올려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누구도 불가능했다. 롼쓰가 고개를 들어 보니 앞서 가던 친종 이 자식은 이미 갈림길을 지나고 있었다.
"친종." 롼쓰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냐? 집은 이쪽이야. 오늘 우리 친척집에 가지 않을 거야?"
속이 답답한 친종 : "......"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할머니가 가장 기뻐했다. 저녁으로 그들에게 쏸차이위(酸菜鱼)를 만들어주기 위해 서둘러 롼셩리에게 갓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도록 시켰다. 이제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롼쓰는 칠면조만 보면 동생의 지휘를 받으며 가는 곳마다 한 바탕 난리를 쳤다.
롼셩리의 작은 농장은 외진 곳에 위치했다. 건물에는 복도와 직접 지은 나무 막사가 있었고 벽의 절반은 담쟁이덩굴이 가득 덮여 있었다. 주변에는 정식 안뜰은 아니었지만, 월계화와 과일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초목이 울창하고 푸르렀다. 앞뒤로는 넓은 연 못 세 개가 있었고, 롼셩리가 직접 심어서 만든 50m 길이의 쭉 뻗은 숲길도 있었다. 부엌 뒤편에 있는 작은 텃밭은 할머니가 질서정연하게 가꾸어놓았다. 제일 끝에는 딸기를 새로 심었고 중간에는 방울토마토를 심어두었다. 방울토마토에 대해서는 또 사연이 있었다. 친종이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개학 후 학교에서 다같이 과일 샐러드를 만드는 활동을 하기로 했는데, 친종에게 할당된 것이 바로 방울토마토 3kg이었다. 슈신은 부재중이었고, 친웨도 아이와 함께 있지 않았다. 친종은 롼청과 리친양에게 말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혼자 한 달 동안 페트병을 주웠지만 수량이 모자랐다. 마침 현청에서 며칠 지내고 있던 할머니가 채소를 사러갔다가 롼쓰가 친종을 데리고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된 할머니는 마음이 아프고 또 화가 나서 농장으로 돌아가자마자 오직 친종만을 위해 준비해 직접 채소밭에 심었다. 그후 여러 해 동안 심어둔 채 지금까지도 그 얘기만 나오면 여전히 '우리 샤오쫑즈를 위해 남겨두는 것'이었다.
"할머니." 해진 밀짚모자를 쓴 롼쓰는 부엌 뒤쪽 창문에 기대어 노부인의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음악 소리 틈에서 소리쳤다. "딸기 먹고 싶어요!"
"이미 없어졌어." 할머니는 생강과 마늘을 깔끔하게 썰고 있었다. "먼젓번에 류 할아버지 댁의 어린 손자가 와서 다 따갔다. 너더러 돌아오라니까 안 오더니 뺏겨버렸구나."
"할머니." 롼쓰는 귀가 아플 지경이라 밀짚모자 가장자리를 끌어내렸다. "우리 노래 좀 바꾸면 안 될까요!"
동방홍(东方红)이 쟁쟁하게 울려퍼져 그는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뭘 들을래?"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 스피커는 정말 좋구나. 별 노래가 다 있어. 기다려 봐, 너희 젊은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걸 틀어주마."
"아," 롼쓰는 웃었다. "맞아요. 젊은 애들 노래를 들어야죠."
"소리 좀 낮춰요." 롼셩리는 다리를 괸 채 채소를 다듬으며 말했다. "지붕이 다 뒤집어지겠네."
"뜰에 잡초를 뽑아야겠어요, 할아버지." 뒤에서 쭈그리고 있던 친종이 머리를 들었다. "내일 저랑 롼롼이랑 같이 해요."
"쓰야의 그 시력으로?" 롼셩리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했다. "너는 잡초를 뽑지만, 걔는 채소만 골라서 뽑을 거다."
"내 눈은 전혀 근시가 아니거든요?" 롼쓰가 고개를 기울였다. "똑똑히 볼 수 있어요. 내일 틀림없이 예쁘게 뽑아드릴게요. 할아버지, 쟤 너무 칭찬하지 마세요. 꼬리가 하늘로 올라가다 못해 저까지 들어올리겠어요."
"난 쫑쫑이 들어올리는 건 한번도 못 봤어." 롼셩리는 흙을 털어냈다. "네가 하루종일 신나서 들고 다니는 것만 봤지."
"할머니가 너 칭찬 해줄게." 할머니는 노래를 바꾸고 롼쓰를 보며 말했다. "다 좋다, 다 좋아."
롼쓰는 노부인을 향해 손키스를 날려보내고 창문에 엎드려 새로 튼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혼자 웃기 시작했다.
"망했다." 롼쓰는 팔을 펼쳐 흔들었다. "열정적으로 삼바를 추고 싶은 노래예요."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할머니가 내려받은 노래 리스트에 뜻밖에 터키 노래가 들어 있었다. 리듬감이 아주 강하고 엄청나게 열정적이었다.
"할머니," 롼쓰는 강아지풀을 물고 창문앞에서 흔들거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같이 해요."
친종은 딸꾹질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음악은 계속되었고 롼쓰는 음악에 따라 휘파람을 불며 밀짚모자를 벗어 빙글 돌린 뒤 다시 음악에 따라 쓰고 몸을 내키는 대로 흔들었다.
제기랄.
친종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놔버려도 이렇게 멋있다.
할머니의 쏸차이위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맛있었다.
할머니가 만든 모든 요리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맛있었다.
깔끔하게 손질된 신선한 초어는 맛술과 다진 생강에 잘 절여서 옅은 금빛을 띠도록 부쳤다. 쏸차이위는 할머니만의 비법으로 알맞은 산미와 씹는 맛이 가득하도록 적당한 크기로 썬 생선 살과 함께 익힌다. 향긋하게 볶은 파와 산초, 그리고 말린 홍고추를 넣어 뜸을 들이는 동안 특유의 양념이 배어었다. 냄비에서 덜어낸 뒤 맑은 식초를 한 바퀴 뿌리니 옆에 서서 냄새를 맡던 롼쓰의 목울대가 힘차게 굴렀다. 쏸차이위가 계속 끌리게 만드는 것은 쏸차이와 생선살의 조화에 있었다. 입맛을 돌게 만드는 새콤한 쏸차이와 부드럽고 매끈한 생선살이 만나면 우유빛 육즙이 곁들여져 입안에서 매콤한 맛과 새콤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산더미처럼 담은 쌀밥은 알맞게 쪄졌다. 하얗고 투명한 쌀알이 옹골졌고, 찌는 동안 독특한 벼 향기가 진하게 우러나왔다. 쏸차이위 국물을 곁들이면 적당한 볼륨감이 느껴지고 쾌감과 누적된 향미가 일제히 혀끝에 맴돌아 위장이 시끄럽게 울며 독촉하게 만들었다.
할머니표 쏸차이위의 초진화체이다.
할머니 만세!
롼쓰와 친종은 한편으로는 밥을 뜨고 한 편으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눈빛을 교환했다.
할머니 무적!
"시원하다." 롼쓰는 밤하늘 아래 안락의자에 쓰러져 흔들거리며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먹느라 땀이 다 났어."
"배불러." 친종은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를 들어올려 롼쓰의 다리를 눌렀다. "죽을 지경인데...... 다시 먹으려면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너 배 좀 봐." 롼쓰가 손을 뻗어 만졌다. "허리띠는 괜찮아?"
"네가 만져봐." 친종은 웃었다. "손부터 내밀어놓고 뭘 예의차리고 있어."
롼쓰는 의자를 흔들고 있었다. "난 너 희롱하지 않을 거니까, 너도 나 건드리지 마. 지금은 아무래도 내 지반 위니까 너는 나를 형아라고 부르도록 해."
"그럼 기다릴 게 뭐 있어." 친종은 그의 위로 허리를 굽히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롼롼형아."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데 모기가 앵앵거리며 귓가를 날아다녔다.
"크악." 롼쓰는 어리둥절하게 굳어 있었다. "크악......" 그는 코를 쥐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냥 소리지른거야." 친종이 말했다. "너도 반응이......"
"너 말하지 마." 롼쓰는 어색하게 정신을 집중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미친, 코피가 났어."
친종은 곧바로 웃음을 터뜨리고, 의자에 기댄 채 계속 웃다가 정말로 딸꾹질을 했다. 롼쓰가 그를 걷어찼다. "웃어?웃어?웃어? 웃음이 나오냐! 빨리 휴지 뽑아와, 아, 흘러나오려고 해."
"그 정도야?" 친종은 곁에서 딸꾹질을 참으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에게 휴지를 건네주러 가까이 다가가 팔짝팔짝 뛰며 말했다. "형아, 너 그 정도야?"
"너무 우쭐대지 마." 롼쓰는 코를 막고 고개를 들어 눈썹끝을 치켜올렸다. "내가 너한테 너무 우쭐대지 말라고 했어, 친종."
"안 돼." 친종은 웃었다. "내 꼬리가 흔들려서 일어섰는걸."
"젠장." 롼쓰도 웃고 싶었고, 또 자신에 대해 철이 강철이 되지 못한 게 원망스러웠다. "아양떨지 마, 너!"
"왜애." 친종은 딸꾹질을 했다. "난 아직 너한테 아양떠는 게 좋은데."
"난 진짜," 롼쓰는 어이없이 말했다. "난 진짜 황서가 필요해."
"할아버지!" 친종이 고개를 돌렸다. "롼롼이 저한테 그거 가르쳐주려고——"
"크악!" 롼쓰는 코를 막을 틈도 없이 그의 입을 막고 의자 위로 눌렀다. "혼이 덜 났지."
친종은 아주 거침없는 표정으로 그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손짓을 했다. 롼쓰는 진짜로 뭔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뒤에서 롼셩리가 작은 탁자를 들고 복도를 뒷걸음질로 나오고 있었다. 바깥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아 할머니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어 손짓만 하고 있었다. "괜찮아괜찮아, 계속 가요."
뒷걸음질치던 노인이 롼쓰의 발을 밟자 롼쓰는 아파서 펄쩍펄쩍 뛰었다. 의자 아래쪽에 있던 친종이 마침 다리를 길게 뻗는 바람에 다리가 걸린 롼쓰는 곧바로 넘어져버렸다.
아래 깔린 친종은 재빨리 팔을 벌려 사람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할아버지." 친종은 롼쓰의 이마에 아래턱을 부딪혀 고개를 들고 쉰소리로 말했다. "뒤로 걷지 마세요."
작가의 말 :
위에 나온 터키 노래는 《Cuppa》라고 하는데, 들으면 제 머릿속은 온통 "헤이, 헤이, 삼바"로 가득해져요.
봐줘서 고마워요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