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5. 20:32ㆍ완결/《연자软刺》唐酒卿,2017
쇠파이프
롼쓰가 보기에 친종의 노랫소리는 살상력이 아주 뛰어난 무기였다. 중학교 때 반에서 합창을 했었는데 친종은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선창자로 선택되었다. 롼쓰는 리허설 때 그가 입을 열자 음악 선생님이 하마터면 그에게 무릎을 꿇을 뻔한 것을 목격했다. 덕분에 친종은 뒷줄에 방치되어 많은 사람들 틈에 존재감이 사라졌다. 또 본 공연 때는 나비넥타이가 너무 커서 목과 아래턱을 가리는 바람에 내내 고개를 높이 들고 큰소리로 울부짖어야했다. 무대는 지방 방송에 나가기도 했는데, 친종을 특별히 2초간 클로즈업해주었다. 리친양은 아직도 녹화영상을 보관하고 있으면서 명절마다 재탕하며 웃곤 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친종의 중학교 시절 최대의 울 거리였다.
"그렇게 듣기 싫어?" 그는 울먹이며 물었다. "나는 꽤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너무 어려서 양심을 속일 수 없었던 롼쓰는 정직하고 시원하게 말했다. "너 그게 무슨 착각이야."
친종은 나비넥타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롼쓰의 자전거 뒤에 타고 갈 때는 콧물과 눈물이 그의 등에 몽땅 묻었다. 등이 줄곧 축축하다 느꼈던 롼쓰는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통해 끈적한 게 뭉쳐 있는 것을 보고는 방으로 뛰어들어 베개를 베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뒷모습만 드러낸 친종을 미친듯이 두드렸다.
아주 인상 깊은 기억이다.
"너 그러다 나를 잃게 될거야." 친종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잃어버릴까." 롼쓰는 웃느라 얼굴이 아팠다. "난 너한테 이렇게 긴 세월동안 원한을 사며 지냈는걸."
"누가 너한테 원한을 져." 친종은 밀짚모자의 챙을 끌어내렸다. "난 전투력 5짜리 부스러기라 용서나 빌었다고."
"전투력 5짜리가 원한을 품으니까 재밌는 거지." 롼쓰는 몸을 돌려 토마토를 잘라냈다. "다른 사람은 그런 대접 안 해줘."
"감동이다아." 친종이 말했다.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넣어둬." 롼쓰가 웃었다. "수분이 부족해질거야."
"......"
"오늘이 며칠째지?" 롼쓰가 말했다. "바오바오한테 전화한다는 게 이틀 내내 생각만하고 잊어버렸네."
"내가 널 일깨워 준거야?" 친종이 말했다. "나 칭찬해줘."
롼쓰는 돌아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넌 이미 이렇게 잘생겼는데 내가 뭘 어떻게 칭찬해야 기분이 안 상할까?"
"......" 친종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롼쓰의 눈빛이 집중되자 남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는 다리를 옮겼다. "너 이런 감언이설은 누구한테 배워서 이런 경지에 이른 거야?"
"너야." 롼쓰는 친종을 향해 가볍고 유쾌하게 휘파람을 불며 장난스럽게 쳐다봤다.
친종은 한참동안 롼쓰를 쳐다보더니 최후에는 단지 바구니만 끌어다 둘 사이를 막으며 묵묵히 가슴에 끌어안았다.
롼쓰 : "......"
"너 잠깐만." 롼쓰가 말했다. "왜 내가 너한테 키스를 강요하는 것처럼 구는 건데!"
태양 아래서 빠르게 움직인 두 사람은 해질녘엔 이미 다 땄고, 바구니를 끌며 한줄씩 훑어 빨간 점을 모두 없앴다. 빠릿빠릿한데다 효율도 좋아 오늘 수당은 의외로 많이 나왔다. 덕분에 두 사람은 가게에 들러 AD칼슘우유를 사서 피로를 달랬다.
돌아가서 저녁밥을 먹을 때는 두 사람 다 대화할 겨를도 없이 배가 꼬르륵거려 그릇에 가득한 밥을 깨끗이 해치웠다. 샤워를 할 때 친종은 꽃무늬 커튼 안쪽에서 시원한 물을 썼고, 롼쓰는 바깥 세면대에서 자신의 아래턱을 매만지며 조금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칼날 가져왔어?" 롼쓰가 물었다.
"왜?" 친종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15분 동안 씻은 걸로 칼날까지 쓰게?"
"퉤." 롼쓰는 머리를 들어 자신의 아래턱을 보며 말했다. "수염이 좀 자란 거 같아서 그래."
"자라게 놔둬. 깎지 말고." 친종은 거의 다 씻었다. "너희 어머니께서 깎으면 깎을수록 억세진다고 하셨어. 그냥 몇 년 더 기다려."
"너도 그거 났어?" 롼쓰는 커튼을 열어젖히고 고개를 들이밀어 말했다. "어디 보자."
친종은 물을 잠그고 돌아섰다. "수건 좀 줘. 난 아직——어리거든." 친종은 수건을 받아 머리카락을 닦으며 말했다. "여전히 미소년이라고. 부럽지? 거친 아저씨."
"거친 아저씨?" 롼쓰가 말했다. "너 내 얼굴에 대고 다시 한 번 말해 봐."
"그다지 익숙해지질 않아." 롼쓰는 티셔츠를 그에게 던졌다. "너 햇볕에 팬더가 돼버렸네."
"내가 다시 봐줄게." 친종은 티셔츠를 입고 롼쓰의 얼굴을 들어올려 한참을 쳐다봤다. "별로 티 안 나."
"안 나면 말고." 롼쓰가 말했다. "너 손가락으로 긁는 것좀 그만하지 않을래? 고양이랑 놀아줄 알아?"
"깨끗이 씻었으니 당연히 더 만지고싶지" 친종은 손을 놓았다.
두 사람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친종의 뒷목은 며칠동안 햇볕에 그을려 심하게 탔다. 롼쓰는 이불에 엎드려 말했다. "너 뒷목에 약 좀 발라야겠다. 할머니한테 물어보고 올게."
"내일은 셔츠를 입는 게 낫겠어" 친종은 불을 껐다.
두 사람은 얇은 담요를 가로로 덮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롼쓰는 360도 회전을 하며 머리를 친종의 가슴에 대고 누르는 바람에 친종은 비몽사몽 간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왼쪽 어깨로 사람을 밀어 롼쓰가 베개로 쓰게 했다. 늦은 밤, 뒤통수가 불편했던 롼쓰는 아예 사람인 자로 몸을 펴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편안한 지점을 찾아내서 결국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정신없이 잤다.
아침에 아직 몽롱하던 친종은 난데없이 뒷허리를 걷어차여 무방비한 채 침대에서 바닥으로 굴렀다. '쿠당탕'하는 소리에 롼쓰가 홱 일어나 앉았다.
"......" 롼쓰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친종은 몸을 일으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반신은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었다.
"정신차려." 롼쓰는 그의 머리를 밀었다. "바보같이 떨어졌어?"
친종은 이불 속에서 모호하게 몇 마디 했다.
롼쓰는 머리를 숙였다. "어?"
"멍청아!" 친종이 고개를 들었다. "너님이 정확하게 걷어차는 바람에 문을 열고 나갈뻔 했잖아."
"아," 롼쓰는 웃었다. "내가 자면서 꿈을 꾸다가 실수했나봐. 여태 널 몇 번이나 걷어찬거야? 빨리 일어나."
친종은 침대에 올라갔다. "양심에 손을 얹고 말해, 너 어디 안 차본데가 있어?
"왜 기억이 안 나지?" 롼쓰는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증거 있어? 없잖아."
"봐." 친종은 옷자락을 들어올려 큼직한 복근을 드러냈다. "자국이 있잖아."
옷 아래 감춰진 복근과 가슴은 새하얗고 팔뚝은 검게 그을려 있어 색의 차이가 눈에 띄었지만 선이 좋았고 특히 복근은, 이 녀석이 일부러 숨을 참은건지 이상하게 단단해 보였다.
"...... 너 동의도 구하지 않고 노출해도 되는거야?" 롼쓰는 코끝을 세게 문질렀다. "젠장."
"젠장?" 친종은 깜짝놀라 그를 바라봤다.
"...... 아, 아니, 난 아니야, 네가 특별히......"
"내가 뭘." 친종은 옷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는 떳떳해서 아무 것도 모르겠어."
롼쓰 : "......"
"난 좀 더 자야겠어." 롼쓰가 말했다. "무릎꿇고 빌테니까 어린 청년 친종아, 그만 추궁해 줘."
"너 오늘은 집을 지키고 있어." 친종이 말했다. "난 오늘은 울타리만 세울 거야."
"갈 때 할아버지한테 그 큰 밀짚모자 있는지 여쭤봐." 롼쓰는 담요를 끌어올렸다. "오늘은 내 경박한 셔츠를 입어, 네 건 안 어울려."
롼쓰는 티셔츠는 많지만 유독 셔츠 몇 벌은 잘 입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진기한 것은 리친양이 특별히 고른 것이었다. 쪽빛 바탕에 노란색 데이지가 프린트된 경박한 스타일로, 거울에 한번 비춰본 롼쓰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르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친종은 털썩 드러누웠다. "난 네가 진작 내다버린 줄 알았어."
"리친양 동지가 말하길" 롼쓰는 눈을 감았다. "이건 시골의 휴일 스타일이니 안 가져가면 난 아들도 아니래. 내가 어떻게 안 가져올 수 있겠어. 하마터면 아예 입고 나올 뻔했어."
"입어도 꽤 멋있어." 친종이 말했다. "특별히."
롼쓰는 잠시 침묵하더니 몸을 돌려 숙연하게 말했다. "네가 우리 엄마의 친아들이야, 정말로."
"......"
친종이 간 뒤 롼쓰는 곧 새로운 원고와 씨름을 시작했다. 오늘 오전은 날씨가 괜찮았는데, 정오가 되자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롼쓰가 밥을 가져다 주며 하늘을 보니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았다.
"오전 일 끝났어?" 그는 밥을 먹는 친종에게 물었다. "끝났으면 나랑 집에 돌아가자. 오후는 내버려두고."
"이미 한다고 했어." 친종은 재빨리 밥을 퍼먹었다. "많지는 않다고 하셨어. 오래된 곳간을 치우는 일이야."
"그럼 일찍 데리러 올게." 롼쓰는 돌의자에 앉아 생각해본 뒤 말했다. "이럴 땐 휴대전화가 있으면 편했을 텐데."
"늦게 와도 돼." 친종은 찬합 뚜껑을 덮었다. "여기서 얌전하게 기다릴테니까."
"내가 안 오면?" 롼쓰가 눈썹을 들어올렸다.
"네가 안 오면," 친종이 말했다. "그럼 여기서 뿌리 내리고 싹을 틔워서 꽃을 피우는 수밖에."
"친종화." 롼쓰는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쳤다. "계속해, 시간이 다된 것 같으면 데리러 올게."
하늘끝에 무거운 천둥이 쳤다. 잿빛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후덥지근했다. 일어나 되돌아가려던 롼쓰가 또 고개를 돌려 친종을 바라보니 친종은 얌전히 돌의자에 앉아 보고있었다.
"나 돌아간다." 롼쓰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너 반대로 걸어?" 친종이 웃었다. "제자리 걸음인데?"
"오후에 얌전히 날 기다리고 있어." 롼쓰가 말했다. "날을 보니 꽤 크게 내릴 것 같아."
친종은 고개를 끄덕였고 롼쓰는 비로소 진짜 되돌아갔다.
오후 내내 아무 것도 쓰지 못한 롼쓰는 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벌레와 새 울음 소리 사이에서 멀리 연못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잔물결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있었다. 그는 사색하는 듯했지만 사실 머릿속은 텅 비엉 있었다.
이런 상태는 꽤 좋았다. 자연스럽게 뭔가 떠오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기억을 회상하게 되기도 했다. 홀가분하게 떠올리다보면 끝내기란 쉽지 않았다.
롼셩리가 그의 등을 두드렸을 때 그는 놀라서 펜을 날려버릴 뻔했다.
"할아버지." 롼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공쓰시냐고요!"
"네 할머니가 너를 몇 번이나 불렀는데 반응이 없니." 롼셩리는 그의 텅 빈 원고지를 보았다. "모든 일의 시작은 다 어렵지, 아직도 고민 중이냐?"
"생각 중이었는데," 롼쓰는 펜 뚜껑을 닫았다. "할아버지 때문에 놀라서 다 날아갔어요."
"그럼 그건 생각한 게 아니지." 롼셩리는 하늘을 가리켰다. "밖에 벌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롼쓰는 그제서야 비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말하는 사이에도 빗발이 끊임없이 거세지는 게 곧 억수같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당장 친종을 데리러 가야겠어요."
"우산 준비 해놨다." 롼셩리는 뒤편에서 소리쳤다. "길 잘 보고 다녀, 도처에 진흙이야."
롼쓰는 소리내 대답하며 우산을 펼치고 밖으로 나갔다.
길에서는 감히 꾸물거릴 생각도 못하고 빠르게 달렸다. 친종을 찾았을 때, 그는 곳간 입구에 기대어 낡은 노트 종이를 접고 있었다. 분명히 고운 두 손이건만 그는 롼쓰가 가르쳐준 종이 접기 방법에 영원히 서툴렀다. 뱃머리가 모두 틀어막혀 공같은 모양이 완성됐다.
"크악." 롼쓰는 우산을 접고 문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누가 하늘을 찢어서 물이 새는 거 같아."
"며칠 동안 너무 더웠어." 친종은 종이에 대고 궁리 중이었다. "크게 내리니까 좀 시원하다."
"집에 가도 시원해." 롼쓰는 외투를 벗어 그의 등에 던졌다. "다 끝났어?"
친종은 그의 겉옷을 걸쳤다. "재빨리 끝냈지. 내일도 이렇게 비가 오면 올 필요가 없어. 비가 오는 날엔 할 게 없대."
"그럼 난 내일 점심때까지 자고 일어날래." 롼쓰가 말했다. "너 나 건드리지 마."
"......" 친종은 외투를 덮었다. "내가 뭘 건드렸다고 그래, 이렇게 얌전한 어린 청년인데."
"아니면 난 밤에 바닥에 자리 깔고 잘게." 롼쓰는 우산을 털었다. "침대가 너무 작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또 너를 바닥으로 걷어차버릴 거야."
"안 돼." 친종은 여지를 주지 않았다. "바닥에 쥐며느리가 많은데 너 어느 품종의 쥐며느리와 함께 자고 싶은 건데?"
롼쓰는 몸을 떨었다. "완전 징그러워."
"너도 알잖아." 친종이 말했다. "저녁 때 나한테 방법이 있어."
"무슨 방법?" 롼쓰가 물었다.
"묶어." 친종이 아래턱을 어루만졌다. "할머니한테 엄청 기다란 빨간 비단이 있잖아. 뒤에서부터 묶으면 리본도 만들어줄 수 있어."
롼쓰 : "......"
"변태." 롼쓰는 결국 가슴을 안고 남 얘기를 했다. "쓰레기!"
"누가 쓰레기야?" 친종은 까놓고 도리를 말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며칠 전에 내 허리를 더듬었더라? 누굴까아."
롼쓰는 목이메어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아니." 친종이 말했다. "난 아직 네 죄를 묻지도 않았어. 너 한밤중에 나 더듬으면서 무슨 생각했어?"
"...... 나 아무것도 안 했어." 롼쓰는 진지하게 그를 바라봤다. "동생, 난 단단한지 아닌지 확인한 것뿐이야."
말소리가 떨어진 후 두 사람 : "......"
크악.
롼쓰는 말없이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아니, 내 말은 복근, 복근......"
"단단하지." 친종은 그의 말을 끊었다. "난 그냥 단단해. 너 때려볼래?"
천둥 소리가 낮게 울렸고 롼쓰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친종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누가 너한테 내가 곧다고 말했어?"
폭우가 곳간 문을 둘러싼 철판을 후두둑 소리를 내며 두드렸다.
롼쓰는 손가락 틈으로 흐릿하게 비를 보는 친종의 진지한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서투른 작은 종이배는 빗속에 던져져 글씨가 지워졌다. 친종이 흘끗 바라보는 시선을 롼쓰는 감히 피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