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3. 13:02ㆍ진행중/《살야撒野》巫哲,2017
제9장
쟝청은 담배를 버리고 몸을 돌려 골목 입구쪽으로 걸어갔다.
"야! 나가지 말라니까!" 왕쉬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아? 원숭이 같은 놈들은 정말 건드리면 안 돼! 지난 학기에 7중의 누군가도 몇 달 동안 병원에서 보냈다고!"
"건드리면 안 된다고?" 쟝청은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 굉장한 놈을 구페이를 부르면 건드릴 수 있어?"
"다페이는 달라." 왕쉬가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기에서 자랐고 게다가...... 어쨌든, 넌 내 말 들어, 네가 날 한 번 도와줬으니 나도 널 내보내서 놈들을 마주치게 할 수는 없어!"
게다가...... 게다가 뭔데?
게다가 그는 자기 아버지도 죽였다? 쟝청은 갑자기 리바오궈의 말이 떠올라 영문을 알 수 없이 즐거워졌다. 이런 소도시의 구시가지에 거리마다 전설이 존재하니 정말이지 흥미롭다.
"웃긴 뭘 웃어 자식아!" 왕쉬는 그의 웃음에 화가 났다.
쟝청은 그를 무시하고 계속 가려고 발걸음을 내딛었는데 곧 왕쉬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아 있던 자리로 다시 잡아당겼다.
"야야야," 쟝청은 깜짝 놀랐다. "손 놔! 너 어디 잘못됐어?"
"잘못돼?" 왕쉬는 어리둥절하다가 손을 홱 놓았다. "난 아니야...... 난 다른 의미는 없어! 너 오해하지 마! 오해하지 마!"
쟝청은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너한테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어?"
왕쉬는 말없이 휴대전화를 스와이프 해 전화를 걸었다.
쟝청은 한숨을 쉬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문 뒤 바람이 작은 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나뭇가지를 들고 눈 바닥 위를 아무렇게나 그어댔다.
"다페이, 다페이," 왕쉬는 휴대전화를 들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치 원숭이 무리가 바로 옆집 마당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들 원숭이를 만나서...... 도망쳤는데, 아니, 지금 못 나가…… 때려서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가! 누구겠어, 나, 그리고 쟝청."
왕쉬는 말을 하면서 쟝청이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쟝청은 그와 눈을 마주쳐주지 않았다. 왕쉬는 그다지 유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쫄보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이렇게 놀랐으니 확실히 이 사람들은 상대하기 만만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실 그는 이전 학교에서는 되는대로 살면서, 외부인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귀찮았으니까.
다만 전화기 너머에 있는 게 구페이라고 생각하자 그는 차라리 나가서 버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성이 있었다. 이대로 나가면 아마도 한두번 버텨서 될 일이 아닐 것이다.
"다페이가 곧 올 거야." 왕쉬가 전화를 끊고 쓰레기 더미를 발로 왔다갔다하며 헤집었다. "동생을 데리고 국수를 먹고 있는데 아직 다 못 먹었대."
쟝청은 할말을 잃었다.
왕쉬는 쓰레기더미에서 반 미터가 넘는 나무 막대기를 찾아내어 그의 발밑에 던지고는, 또 한동안 뒤지다가 아무런 소득이 없자 그 다리가 세 개인 낡은 의자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뭐하냐?" 쟝청이 그를 쳐다보았다.
"무기 좀 찾아." 왕쉬가 말했다. "원숭이들도 이쪽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만약 다페이가 도착하기 전에 찾아올 때를 대비해야지."
쟝청은 한숨을 쉬더니 가방을 뒤집어 칼을 꺼내 그의 발 쪽에 던졌다. "이거 써."
"시발!" 왕쉬는 칼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넌 시발 진짜 학패 맞아? 무슨 학패가 아무 일 없이 칼을 갖고 다녀!"
"나도 써본 적 없어." 쟝청이 말했다. "날도 제대로 안 펴져, 사람 겁주는 용이야."
왕쉬는 칼을 집어들고 잠시 진지하게 보더니 그의 앞으로 다가가 쪼그리고 앉았다. "쟝청, 내가 널 건드려선 안 됐어."
쟝청은 그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둘 일은 이미 끝난거다." 왕쉬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후로는 우리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게 어떨까?"
"이 말은 네가 기억하고 있으면 돼." 쟝청이 말했다. "우리 학패들은 공부하느라 바빠서 너랑 놀아줄 시간이 없거든."
이 말을 끝으로 그들 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잠시 앉아 있던 왕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충고 하나만 할게."
"응." 쟝청은 그의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 꽁초를 보고 있었다. 피어오른 연기는 바람에 잠시 흔들리더니 금세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숭이가 먼저 도착하면 넌 쫄아야 돼." 왕쉬가 말했다. "우리가 아무리 막나간다 한들 학생일 뿐이야. 외부에서 뒷골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맞서 싸울 수 없어."
쟝청은 약간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 멍청한 소년의 마음 속에 뜻밖에도 지능지수가 남아 있었다.
"다페이가 말한 거야." 왕쉬가 덧붙였다.
쟝청은 약간 담배 꽁초를 그의 얼굴에 눌러 끄고 싶어졌다.
구페이는 사실 늦게 오지 않았다. 약 10 분 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는데, 쟝청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구먀오도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소녀는 밧줄로 자전거 뒤에 묶인 채 스케이트보드를 밟고 있었다.
정신 나간 가족!
구페이의 다리가 땅을 딛자마자 구먀오는 스케이트 보드에서 뛰어내리더니 발끝으로 보드를 굴러 튕겨오르는 것을 손으로 잡았다.
그녀는 스케이트보드를 품에 안고 쟝청의 앞까지 걸어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짓더니 다시 달려서 구페이의 곁으로 되돌아가 그의 다리에 기대 섰다.
"누가 손을 댔어?" 구페이가 물었다.
"나." 쟝청이 일어섰다. "왜."
"원숭이를 만났어?" 왕쉬가 즉시 물었다.
"골목 입구에서" 구페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쯤 들어왔을 거야."
"젠장," 왕쉬는 눈썹을 찌푸렸다. "우리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나가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지." 구페이는 말하고 또 쟝청을 쳐다보았다. "두 가지 해결책이 있어."
쟝청은 이번에는 정말 귀찮은 문제를 일으켰음을 알고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벽에 기대었다. "말해."
"그가 찾아오도록 하면, 공평하게 계산 끝나는 거고," 구페이가 말했다. "그게 별로면 내가 지금 너희를 데리고 나가되, 이후 그들이 너희를 어떻게 가로막을지는 너희들 운에 달려 있는 거야."
왕쉬는 재빨리 쟝청을 쳐다보았다.
"공평한 것도 좋지만 먼저 말해둘게." 쟝청이 말했다. "나는 반격할 거야."
원숭이가 왔을 때, 그의 코에는 여전히 솜이 남아 있었다. 쟝청은 아마도 그의 혈소판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피가 멈추지 않다니.
왕쉬가 말했듯이 이번에는 원숭이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다. 한눈에 봐도 일고여덟 명은 되었는데, 동네 깡패 기질이 짙게 풍겨져 나왔다.
"얼먀오는 골목 입구로 가서 나를 기다려." 구페이가 말했다.
구먀오는 쟝청을 한 번 쳐다보고는 스케이트보드를 내려 놓고 몇 번 발을 구른 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쏜살처럼 나갔다.
"너도 나가." 쟝청이 말했다.
구페이는 핸들을 괸 채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왕쉬, 나랑 같이 나가자."
"나는…..." 왕쉬는 망설이며 쟝청을 쳐다보았다.
"나가." 쟝청이 말했다, 이런 순전히 얻어맞는 일에 그는 관중을 원하지 않았다.
구페이가 자전거 머리를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자 왕쉬가 뒤따라갔다.
원숭이는 음침한 표정으로 쟝청 쪽으로 걸어갔다.
그를 스쳐 지나던 구페이가 갑자기 그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더니 주머니에서 끄집어냈다.
"무슨 짓이야." 원숭이가 그를 쳐다보았다.
구페이는 말없이 그의 손목을 아래로 세게 쓸어 내리더니 손에서 무언가를 꺼내 옆의 벽에다 던졌다.
금속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선명했다.
쟝청이 소리를 따라 쳐다보니 검은 색 너클이었다.
개 같은 새끼.
"룰은 알려야지." 구페이는 낮은 소리로 말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골목 입구로 갔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왕쉬는 골목 어귀의 앙상한 나무 아래서 목을 움츠리고 서 있었고, 구먀오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옆의 나무 아래 눈더미를 에워싸며 빙빙 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길 게 무서우면 건드리질 말았어야지." 구페이가 말했다.
"난 안 건드려, 난 원숭이를 보면 도망간다고." 왕쉬가 말했다. "망할, 오늘 그놈을 마주친데다가 쟝청이 속사정도 모르고 그대로 손을 써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너희 두 사람 일은 해결됐어?" 구페이가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릎 꿇고 얼굴은 때리지 말아달라고 빈 건 아니지?"
"...... 끝냈어." 왕쉬는 한숨을 쉬며 골목 안쪽을 돌아보았다. "난 견문을 넓힌 셈이지. 학패 중에도 이런 유형이 있다는 걸 말야. 내가 건드려선 안 되는."
구페이가 웃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원숭이 떼가 나왔다.
원숭이의 안색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보기에 멀쩡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사람은 보기에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이마가 뚜렷하게 부어올라 커다란 혹이 생겨 있었다.
"그가 반격했어?" 왕쉬는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원숭이는 구페이와 눈을 마주친 후 별 말 없이 몇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시발, 쟝청이 그렇게 미친놈이라고?" 왕쉬는 골목 안쪽을 바라보았다.
구페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 모양을 보니 쟝청은 틀림없이 반격했을 것이다. 주동적이어선 안된다. 누군가는 ‘조금 더’ 했을 것이고, 이치대로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원숭이는 다시는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 쟝청은?
몇 바퀴 돌아 나오더라도 이렇게 오래 걸려서 나오진 않을텐데…... 그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꺼내서 확인해보니 과연 쟝청의 전화였다.
"어디 있어?" 그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길을 잃었어." 쟝청이 말했다.
"뭐?" 구페이는 크게 놀랐다. "길을 잃어?"
"그래, 길을 잃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줄곧 빙빙 돌았는데 이제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너희들 이 골목은 시발 미궁으로 만든 거 아니야?" 쟝청은 매우 언짢게 말했다.
"너…… 잠깐 기다려." 구페이는 구먀오를 쳐다보았다. "얼먀오, 들어가서 쟝청 형아 좀 끌고 나와."
구먀오는 스케이트보드를 밟고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재빨리 골목으로 들어갔다.
쟝청은 스케이트보드의 바퀴 소리를 듣고 외쳤다. "구먀오?"
구먀오의 그림자가 앞쪽의 한 모퉁이에서 튀어나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쟝청이 따라갔다. 사실 그는 이제 막 이쪽에서 왔는데, 구먀오를 따라 모퉁이 하나를 더 돌았더니 이전의 그 작은 거리가 보였다.
미친, 이렇게 가까운 걸 진작 알았더라면 구페이 이놈에게 전화하지 않았을 텐데.
오늘 깎일 체면은 이 네 번으로 정말이지 충분하다.
"괜찮아?" 왕쉬는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아." 쟝청은 배를 문질렀다.
"얼굴은 안 때렸어?" 왕쉬는 그의 손을 보았다.
"응," 쟝청은 그를 바라보았다. "왜, 네가 때리고 싶어?"
"그냥 물어본 거야." 왕쉬가 말했다. "배를 맞았어? 아파?"
"배고파." 쟝청이 말했다.
"너 싸운 거 아니야?" 왕쉬는 계속 캐물었다. "누군지 머리가 그렇게 커졌는데, 어떻게 생긴 거야?"
"너무 심하면 갚겠다고 말했잖아." 쟝청은 다소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그의 머리를 붙들고 벽에다 박았는데 왜, 너도 해볼래?"
"난 집에 갈게." 왕쉬가 말했다. "나는 간다...... 그럼, 다페이, 내일 점심 먹으러 와."
왕쉬가 떠난 후 구페이와 함께 서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구먀오가 구페이 옆에 멈춰설 때까지 보고 있던 쟝청은 그제서야 입을 열어 한 마디 했다. "고마워."
비록 원숭이의 주먹 두 방이 그의 위를 때려 아직도 조금 토기가 올라왔지만, 구페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해결 방안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외출할 때 거리에서 원숭이를 맞닥뜨리더라도 그는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너 정말 괜찮아?" 구페이가 그를 쳐다보았다.
"응," 쟝청은 더 이상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생각했다. "밥 먹었어?"
"아니." 구페이가 대답했다.
"...... 방금 왕쉬가 너 국수 먹는다고, 다 먹고난 뒤에 올 수 있다고 했는데." 쟝청이 말했다.
"그럼 너희 둘은 진작 박살났겠지." 구페이가 말했다. "중앙로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진짜 다 먹고 오는데 30분 밖에 안 걸렸어."
"가자, 좀 더 먹어." 쟝청은 구먀오를 쳐다보았다. "너 뭐 먹고 싶어?"
구먀오는 당연히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다만 구페이를 쳐다보았다.
"네가 앞장 서." 구페이가 그녀의 머리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구먀오는 즉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아갔는데, 척 봐도 앞쪽의 바비큐 가게를 향한 것이었다.
"타." 구페이는 쟝청을 쳐다보았다.
"나는 걸어갈게." 쟝청이 말했다.
구페이는 군말없이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갔다.
쟝청은 한숨을 내쉬며 약간 울렁이는 배를 눌렀다. 배가 고픈 건지 원숭이의 주먹에 몇 대 맞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구먀오는 가장 끝에 있는 바비큐 노점을 골랐고, 쟝청이 걸어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재료를 골라서 쌓아두고 있었다.
쟝청은 바비큐 냄새를 맡자 비로소 뱃속의 불편함이 천천히 사라지고 심한 허기만 남았다. 그는 고기를 가리켰다. "같은 걸로 열 꼬치, 그리고 마샤오(麻小) 두 근."
이 집에는 마샤오가 없었다. 그는 또 반 거리 정도 떨어진 집에 달려가 두 근을 사왔다.
큰 고기 접시 몇 개가 테이블에 쌓이자 구페이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넌 항상 이렇게 잘 먹어?"
"샤오밍의 할아버지는 103세까지 사셨대." 쟝청은 양고기 꼬치를 집어다 한 입 물어뜯었다.
구페이는 웃으면서 사장에게 홍성소이(红星小二) 한 병을 주문했다.
쟝청은 원래 매 끼니마다 술을 마셔야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샤오밍의 103세 할아버지가 그를 막았다.
구먀오는 말이 없었고, 그들 두 사람도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지난번에 구이를 먹었을 때처럼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이것도 꽤 좋았다. 배부르게 먹었다. 판즈와 함께 먹을 때 그는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종종 충분히 먹지 못해 간식을 더 먹어야 했다.
떠들썩한 바비큐 노점에서 그들의 테이블은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과 같았다. 사장은 지나갈 때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보았는데 아마도 그는 그들이 협상 중이거나, 언제든 일어나서 칼을 뽑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듯했다.
구먀오까지 배가 불러 모자를 벗어 머리를 움켜쥐고 나서야 쟝청은 침묵을 깼다.
"왜 초록색 모자를 사줬어?" 그는 구페이에게 물었다. 이 문제는 그날 가게에서 구먀오를 본 이후로 줄곧 그를 괴롭혔다.
"그녀는 초록색을 좋아해." 구페이가 말했다.
"오." 쟝청은 구먀오의 초록색 모자를 쳐다보았다. 구페이의 대답은 항상 이렇게 논리적이고 치밀해서 말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색 모자를 살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네."
구먀오가 고개를 저었다.
"응?" 쟝청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산 게 아니야." 구페이가 말했다.
"짰어?" 쟝청은 모자를 만져보았다. 정말 알아채지 못했다. 수공예인데도 이렇게 정교하다니. "누가 짜줬어? 어머니?"
구먀오는 미소를 지으며 구페이를 가리켰다.
쟝청은 고개를 홱 돌려 구페이를 보았다. "시발?"
"좀 교양있게 굴어." 구페이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오," 쟝청은 구먀오를 향해 조금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구페이를 보았다. "네가 짰어? 너 이것도 할 줄 알아?"
"응." 구페이가 대답했다.
쟝청은 갑자기 머리속에 있던 구페이에 대한 인상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머니에 사탕이 들었고, 털모자를 짤 줄 아는, 살인범, 죽인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
바비큐를 다 먹고 구페이가 자전거 올라타자, 구먀오는 자전거 뒤쪽에 감긴 밧줄 하나를 풀어 손에 쥐고 스케이트보드를 밟았다.
"가라…… 조심하고." 쟝청은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내일 봐." 구페이는 말을 끝내자마자 자전거로 구먀오를 끌며 작은 거리의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쟝청은 계산을 끝내고 나서야 반응했다. 내일 봐?
오늘이 벌써 끝난 거야?
물론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후 수업이 세 시간이나 남았는데, 그 중 두 시간이 정치였다. 수업 시간표를 본 순간 쟝청은 졸린 느낌이 들었다.
구페이는 오후 내내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내일 보자는 말이었다.
쟝청은 오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구페이의 부재는 저우징이 머리를 돌려 말을 걸 수 없어 조용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정치 선생은 라오쉬보다 존재감이 없었는데, 오늘 본 모든 선생님 중에서 가장 투명했다.
교단에서 수업을 할 때는 교실 안에서 제멋대로 웅성거리는 소리 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볼륨을 높여야 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판즈가 메시지를 보냈다.
-자습 시간에 선생님이 안 계셔. 편안
쟝청은 교단 위의 선생님을 힐끗 보고 판즈에게 회신했다.
-난 줄곧 편안했어. 여기 수업은 시장통이랑 똑같아.
-넌 어차피 조용해도 자고, 시끄러워도 자잖아.
-넌 몰라
쟝청은 한숨을 쉬었다. 판즈는 확실히 모른다. 그는 수업 시간에 늘 잠을 자지만, 매번 잠이 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수업을 들었다. 시험을 앞두고 복습 할 때는 잠도 자지 않고 무단결석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이런 환경에서 그는 학패의 질이 떨어질까봐 정말로 좀 걱정이 되었다.
하교벨이 울리자 교실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즉시 자신의 물건을 챙기고, 걷고, 잡담하며, 즐거워 했다.
쟝청은 짐을 정리하고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수많은 시선이 느껴져 주변을 둘러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난간에 기대어 그를 보고 있었다. 2학년인지 3학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눈빛에는 호기심과 탐구심이 가득했다.
쯧.
그는 고개를 돌려 왕쉬를 찾았다. 분명 이 자식이 무언가 말했을 것이며 이는 아마도 굉장한 허풍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마도 판즈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꺼내어 확인해보니 낯선 번호였다.
"여보세요?" 그는 전화를 받았다.
"쟝청, 맞죠? 물품이 들어왔으니 와서 가져가세요." 상대가 말했다.
쟝청은 멍해져있다가 곧 반응해서 다시 물었다. 상대방은 택배가 아닌 물류라서 직접 가서 가져와야 했다. 그는 주소를 물어보고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본 다음 전화를 끊었다.
보낸 이는 어머니였고, 전부 그의 방에 있던 잡동사니일 것이다.
오기 전에는 그를 위해 은행 카드를 준비했고, 지금은 그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보냈지만 연락은 두번다시 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감사해야할지 미워해야할지 몰랐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는 이미 무감각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생각이 떠오르면 불안하지만 쉽게 지나갔다.
그는 천천히 돌아갔다. 이 시간에 리바오궈는 확실히 집에 없을 터였다. 아마 저녁은 여전히 그 혼자 밥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생각하다가 결국 만두를 먹기로 결정했다. 점심을 많이 먹어서 이 때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리바오궈의 집 근처에는 식당이 많이 모여있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쟝청이 산책할 때 봐둔 꽤 붐비고 깨끗해 보이는 만두집이 있었다.
광장에 가려면 작은 구름다리를 건너야 했다. 빠르게 다리 쪽으로 걸으며 건너편을 한 번 본 순간 쟝청의 발걸음이 멎었다.
눈은 점심 때 그쳤고, 오후 내내 햇살이 좋았다. 지금은 해가 이미 저물었지만 하늘의 절반은 아직도 여전히 희미한 황금빛 맥락이 남아 펼쳐져 있었다.
조그만 다리도 따뜻한 색으로 물이 들었다.
쟝청은 이 순간 마음이 아주 안정되었다. 이 혼란스러운 하루의 온갖 답답함이 모두 흩어져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그는 걷는 속도를 높여 다리 위를 지나갔다. 30분만 일찍 왔다면 이곳은 훨씬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이 허름한 소도시에서 지낸 며칠 동안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일 터였다.
다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가 다리 한가운데에 도착했을 때 앞에서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다리와 하늘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옆모습을 보니...... 아니, 다리를 보니 알겠다.
구페이다.
구페이를 알아본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의외인 것은 오후 수업에 결석한 구페이가 이곳에서 딱 봐도 전문가용인 카메라와 카메라 가방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쩐지 저우징에게 카메라를 빌려주지 않으려 하더라니.
쟝청은 이대로 지나갈지, 다른쪽으로 가서 구페이를 못본 척할지 망설였다. 어차피 그들 둘은 할 말도 없었다.
그가 이제 막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구페이는 아마도 촬영을 마쳤는지 몸을 돌려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척은 불가능했기에 쟝청은 한숨을 쉬며 그를 맞아 걸어갔다.
할 말이 없어 인사나 하려고 할 때, 그를 본 구페이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향해 수중의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쟝청은 깜짝 놀라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릴 틈도 없이 셔터음을 들었다.
찰칵.
네 할아버지네 삼색묘는 잘 지내냐!
*마샤오 : 양념된 바닷가재의 일종
*샤오밍의 할아버지는 103세까지 사셨대 / 왜? / 남의 일에 참견을 안 해서 >> 즉, 참견 말라는 의미. 앞으로 계속 나옵니다.
*홍성소이(红星小二) 중국 백주의 한 종류, 국내에서는 주로 고량주로 불림
*마지막 줄 원문은 你大爷的三花猫啊 직역하면 네 할아버지네 삼색고양이야........ 적당히 얼버무렸습니다(・´з`・)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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