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4. 00:12ㆍ시식코너/《해약解药》巫哲, 2018
제15장
쟝위둬는 수도 없는 불면의 밤을 겪었다. 기본적으로 혼자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앉아 있거나 혹은 눕거나 했고 이따금 몇 사람을 불러 함께 술 마실 곳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불면은 단순히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각종 고통, 졸음, 두통에다 이유없이 온몸이 저리고 아프다. 그래서 잠을 못 자는 밤에 더 나은 방식은 혼자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집안에 앉아 함께 잠을 못 이루는 사람과 앉아 한밤중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것도 전혀 그와 같은 길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디서 왔는지도 불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잠시 믿을만하다가도 또 의심이 가중되는 폐물 도련님이다.
잡담할 게 뭐가 있는가?
도무지 무슨 화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술 있어?" 청커가 물었다.
"어떤 술 마시게?" 쟝위둬가 물었다.
"...... 너 컵도 하나뿐이면서, " 청커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술을 고를 수 있어?"
쟝위둬는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문 채 창가에 있는 캐비닛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이리 와서 골라."
청커는 어리둥절해서 일어나 캐비닛 앞으로 걸어갔다. 거의 한쪽 벽을 다 채울 듯이 줄지어 선 각종 술을 보며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난 뭘 마시든 그 컵을 사용해." 쟝위둬는 벽에 기댔다. "술을 마시는 거지, 컵을 마시는 것도 아니잖아."
"오." 청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특별히 좋은 술은 없어." 쟝위둬가 말했다. "다 명절에 내 그 동생들이 가져온 거야."
"난 술에 대해 연구해보지 않았어. 마셔도 좋은 술인지 아닌지 몰라." 청커는 커튼을 투과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통해 흰색 사기병을 보았다. 병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는데 보기에 몇 년 된 것 같아 그는 조금 호기심이 생겨 들어보았다. "이건 뭐야? 불 좀 켜줄래?"
"너 다 울었어?" 쟝위둬가 물었다.
청커는 아무 말 없었다. 이대로 손을 뒤집어 병으로 쟝위둬를 내리쳐서 기억을 잃게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쟝위둬가 가서 불을 켜자 집안이 단번에 밝아졌다.
청커는 손에 든 병이 평범한 백자병임을 확인하였다. 작은 면포로 밀봉돼 있었는데 조금 먼지가 앉아 있었다.
그는 냄새를 맡아보고 고개를 돌려 쟝위둬를 보았다. "이걸로 하자. 향이 굉장히......"
줄곧 별 생각 없었는데, 지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밝은 불빛 아래서 팬티만 입고 선 쟝위둬를 보자 그는 순식간에 어딜 봐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냥...... 불 끄는 게 낫겠어." 그가 말했다.
"나 산책시키는 거냐?" 쟝위둬가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옷을 좀 입어도 되고." 청커가 말했다. "춥지도 않아?"
"안 추워." 쟝위둬는 또 느릿느릿 가서 불을 껐다. "이 날씨면 난 찬물로 씻어도 문제없어."
불이 꺼진 후 청커는 마음을 놓고 술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 술, 직접 담근 거야?"
"천칭이 가져온 거야." 쟝위둬가 부엌에 들어가 그릇 두 개를 갖고 나왔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아버지는 딸을 원했거든. 임신한 게 딸이라고 생각해서 술 한 단지를 묻어두고 딸이 18살이 됐을 때 마시려고 했대. 뉘얼홍이지." 1
청커는 웃었다. "그래도 좋네. 십몇 년을 묻어둔 술."
"아니, 태어난 걸 보더니 이건 그날 바로 파냈어." 쟝위둬는 또 냉장고에서 밀폐용기 하나를 꺼냈다. "부엌에 샨차이 단지랑 같이 뒀었는데 그래도 십몇 년 지나긴 했어."
"너 마셔봤어?" 청커가 물었다.
"마셔봤어. 지난달에 꺼내서 둘이 마셨지." 쟝위둬는 술병을 열어 그릇 두 개를 가득 채운 뒤 그릇 하나를 청커의 앞으로 밀었다.
"어때?" 청커는 가까이 가서 향을 맡아보았다. 매우 향이 진했다.
"십몇 년 방치했다니까." 쟝위둬가 말했다. "말 오줌 한 병이라도 향기로울 걸."
청커는 그를 힐끗 보았다. 그는 아마 지금 기분이 매우 좋은지 의외로 불쾌하지 않았다.
쟝위둬는 밀폐용기를 열더니 그것도 그의 앞으로 밀었다. "이것도 맡아봐."
청커는 냄새를 맡았다. "육포?"
"응, " 쟝위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아주 좋아." 청커는 아무 생각 없이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고 몇 번 씹었다.
점심때부터 지금까지 작은 케이크 한 조각 먹은 게 다였다. 원래 자신이 이미 배고픈 게 지나간 줄 알았는데, 육포를 씹고 나서야 그는 자기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마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깨달았다.
배에서 눈물겨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나머지 술 한 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던 쟝위둬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왜?" 청커는 조금 머쓱해졌다.
"소리를 들었어." 쟝위둬는 작게 말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청커는 그의 말투를 듣자 그의 얼굴 위 경계심이 느껴졌다.
"나야." 청커는 목을 가다듬었다. "내 배에서, 소리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가 마치 그의 말을 방증이라도 하듯 또 한 번 울렸다. 그는 곧바로 난처해져서 테이블 위에 엎드리고 싶었다.
"너......" 쟝위둬는 한숨 돌린 듯하더니, 이어서 또 조금 놀랐다. "그래도 안 좋아, 방금 그거 먹고 배탈이 난 건 아니겠지?"
"배고픈 거야." 청커가 말했다.
"시발, 배고프다는 말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 쟝위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가 배달시킬게. 하지만 도련님 입맛에 맞는 고급 야식을 먹긴 좀 어려울 거야. 지금은 바비큐밖에 없어."
청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사람 얼굴이 밝아지면 조금 섬뜩할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쟝위둬는 평소 엄청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으면서 의외로 아래서부터 비치는 창백한 빛을 견딜 수 있었다.
쟝위둬가 전화를 걸기 시작하자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얼른 손을 뻗어 화면을 흔들었다. "됐어! 육포면 돼!"
"됐어?" 쟝위둬가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 괜찮아, 배달 기다리면서 육포 먹다 보면 배부를 걸." 청커는 자신이 이때 인사치레가 아닌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몹시 다행이었다.
"그럼 그렇게 해." 쟝위둬는 휴대전화를 옆에 내려두고 그릇을 들어 앞에 있는 그릇에 부딪히고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청커는 이미지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연달아 육포 네 조각을 뜯어먹고 나서야 멈추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이 술은 정말 괜찮았다. 후끈후끈하면서도 순조롭게 위장까지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살짝 숨을 돌렸다.
쟝위둬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육포 한 조각을 들고 조금씩 뜯어먹고 있었다.
표정을 똑똑히 볼 수 없었고, 눈길도 닿지 않았다. 쟝위둬가 팬티 한 장만 몸에 걸치고 있는 것도 잘 보이지 않아 청커는 이렇게 침묵하는 것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쟝위둬는 육포 한 조각을 다 뜯어먹고 술 반 그릇을 비운 뒤에야 한마디 물었다. "잡담하자면서? 무슨 얘기 할래?"
그래, 무슨 얘길 하지?
청커는 원래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인 데다 예전이었다면 완전히 접촉이 불가능한 사람이기에 무슨 말을 하든 제멋대로 굴 수 있어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 얘기나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되는데, 쟝위둬가 갑자기 이렇게 묻자 마치 준비된 사람을 부르는 듯하여 그는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너 뭐 얘기하고 싶은 거 있어?" 그가 물었다.
"한밤중에 잡담하자고 한 건 넌데 네가 나한테 물어?" 쟝위둬가 말했다. "하지만 나한테 얘기하라고 하면 그것도 괜찮아."
"응." 청커가 그가 있는 쪽을 쳐다보니 단지 콧등에 매우 곧게 뻗어있는 희미한 빛만 보였다.
"난 특히 이 얘기가 하고 싶었어." 쟝위둬가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테이블 위로 엎드려 앞으로 다가갔다. "너 도대체 여기 뭐하러 왔어?"
또 이 말이다.
청커는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는 내가 뭐 하러 온 것 같은데?"
"방금 너 누굴 봤지?" 쟝위둬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어선지 목소리가 낮게 눌려 사람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허스키함을 띠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쟝위둬의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았다. 만약 지금 그의 화두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면 청커는 매우 칭찬해주고 싶었다.
"방금?" 청커가 물었다.
"네가 길 맞은편에 서 있었을 때, " 쟝위둬가 말했다. "네가 본 그 사람, 누구야?"
"내가 본 사람?" 청커는 갑자기 소름이 끼쳐 등 뒤가 한바탕 서늘해졌다. 그는 참지 못하고 손을 뒤로 해 등을 몇 번 긁었다.
"연기하지 마, " 쟝위둬가 말했다. "난 줄곧 집 안에서 널 지켜봤어."
"난 아무것도 못 봤어. 방금 길거리에 사람이 있었어?" 청커는 성질을 참았다.
쟝위둬는 말이 없더니 한참 만에 일어나 가서 거실의 불을 켜고는 다시 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와 허리를 굽혀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이런 장면은 정말이지 기이해서, 청커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쟝위둬의 어깨를 밀쳤다. "난 진짜 아무도 못 봤어. 네가 이렇게 말하니까 나 지금 좀 무섭다."
"무섭긴 개뿔이, 내가 널 진짜 내 친구라고 말한다면 이 주변에서 널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어." 쟝위둬는 허리를 펴더니 다시 불을 끄고 맞은편으로 돌아가 앉았다. "너 혹시 네 그 시계 다시 가져가고 싶냐?"
"...... 아니." 청커는 멍해졌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난 이미 이 일을 잊어버렸을 거야."
"응." 쟝위둬가 대꾸했다. "못 가져가, 내가 안 줄 거니까."
"너 가져." 청커는 술을 마셨다.
갑자기 조금 서운하다.
그 예거 르쿨트르 때문이 아니다. 시계 하나일 뿐이고, 무슨 기념의 의미도 없으니 만약 삼십만 이상이라도 그는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서운함은 쟝위둬의 그 "내가 널 진짜 내 친구라고 말한다면"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었다.
쟝위둬는 결코 그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자신도 줄곧 쟝위둬를 "집주인"으로 규정해왔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래도 조금 섭섭한 것 같았다.
어쩌면 그에게 친구가 너무 쉽게 와서인지도 모른다. 예전의 리듬대로라면 그와 쟝위둬의 이런 관계는 이미 "친구"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친구가 너무 쉽게 떠나가서인지도 모른다. 가겠다고 하니 바로 흩어졌다. 그는 현재의 공허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떤 "친구"든 붙잡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또......" 청커는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지만 입을 열자마자 그만두었다. 그가 언제 이런 일에 답답해할 지경으로 전락했단 말인가?
쟝위둬일 뿐인데, 친구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야? 그는 이전에 근본적으로 이런 사람과는 무슨 친구 사이도 될 수 없었고 심지어 가장 가식적인 관계의 친구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렇게나 누군가를 친구라고 여기지 않아." 쟝위둬가 말했다. "우리 같은 길거리 한량들은 너희 도련님들과 달라. 친구는 나에게......"
쟝위둬는 테이블 위를 내리쳤다. "아주 무거워."
"이해가 안 돼." 청커가 말했다. "나는 친구가 없어."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육포 한 조각을 집어 천천히 몇 입 베어 먹었다. 그는 쟝위둬의 날카로움에 감복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 날카로움은 늘 신기한 곳에 쓰였지만.
"친구가 없는 것도 이상할 거 없어." 쟝위둬가 말했다. "내 기준으로는 평생 몇 명의 친구도 쉽지 않아."
"너랑 천칭 같은 그런 거?" 청커가 물었다.
"걔는 그냥 등신이야." 쟝위둬가 말했다. "난 매일 걔를 죽이고 싶어."
청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바로 친구지.
"사실 그날 너랑 같이 밥 먹었을 때 그, 쉬딩?" 쟝위둬는 그의 그릇에 술을 가득 따랐다. "네 친구인 셈이지?"
"예전엔 그와 친하지 않았어." 청커가 말했다. "합작 이외의 시간에는 그와 단둘이 밥을 먹어본 적이 없어."
"오, " 쟝위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가볍게 흔들거렸다. "너의 그 '예전'은 어땠는데?"
"......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청커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맨날 너한테 뭐 때문에 전화했는지 알잖아."
"평소에 집안일을 안 하면 잘 모르지, 그런 사람은 많아." 쟝위둬가 말했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달라." 청커는 주머니에서 납작해진 담뱃갑을 꺼내어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난 지금도 내가 뭘 이어서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어서?" 쟝위둬는 그의 그릇을 툭툭 쳤다. "술 마시고 육포 먹고 있잖아."
"난 이 나이 되도록 그냥 빈둥거리면서 보냈어. 뭘 해야 할지, 혹은 뭘 하고 싶은지도 생각 안 하면서." 청커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릇을 가볍게 튕겼다. "난 아버지한테 집에서 쫓겨났어."
쟝위둬의 술을 마시던 동작이 멈칫하더니, 곧 몇 모금을 마시고는 등받이에 기댔다. "난 네가 동생한테 쫓겨난 줄 알았어."
청커는 아무 말 없이 그릇을 쟝위둬를 향해 들어 올린 후 고개를 들고 반 그릇을 마셨다.
"중개인은 네가 예술가라고 말했는데, " 쟝위둬가 말했다. "무슨 예술을 해?"
"...... 중개인 말도 믿어?" 청커는 웃기 시작했다.
"보통은 과장하겠지만, 너무 허튼소리는 하지 않아. 네가 그에게 과장해서 알려줬을 수도 있지." 쟝위둬가 말했다. "뭐야?"
청커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나한테 무슨 일을 하냐고 묻길래 무직이라고 할 순 없어서, 모래 그림이라고 했어."
"모래 그림이 뭐야?" 쟝위둬가 물었다.
"모래로 뭔가 그리는 거지." 청커는 테이블 위에서 손짓을 하며 쟝위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했다. "그냥...... 모래 몇 줌을 뿌려서, 손을 이용해 슥슥 긁어내는 거야."
"오." 쟝위둬는 담배를 문 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쳐다본 후 쟝위둬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청커는 담배를 끄고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젖혔다.
이 술은 나쁘지 않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연거푸 두 잔을 마시면 그는 지금쯤 틀림없이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약간 어지러울 뿐, 다른 불편은 없었다.
고개를 드니 공중에 떠서 살짝 흔들리는 느낌이 느긋하고 편안했다.
쟝위둬는 부엌에서 다시 나오더니 포대 하나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청커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가 또 뭔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왔는지 보려 했지만, 희미한 빛을 통해 테이블 위에 던져진 포대는 개봉되지 않은 것이었고, 보기에 마치......
"한번 그려봐, 보게." 쟝위둬가 말했다.
"뭘 그려?" 청커는 어리둥절해졌다.
"모래 그림, " 쟝위둬는 그 포대를 가리켰다. "이건 소금이야."
"...... 나더러 소금을 이용해서 모래 그림을 그리라고?" 청커는 손을 뻗어 포대를 쥐어 보았는데, 진짜로 소금이었다. 그것도 큼지막한 알갱이의 바다소금.
"모래랑 똑같지 않아?" 쟝위둬가 말했다.
"소금으로 그린 건 소금 그림이지." 청커는 설명을 시도했다. "그 둘은 달라, 게다가 이 소금은 알갱이가 크잖아......"
쟝위둬는 아무 말이 없더니 또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갔다.
청커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 한숨을 쉬었다. "쟝위둬...... 아니, 삼형, 삼형 너 좀 안 설치고 다니면 안 돼?"
쟝위둬가 다시 부엌에서 나왔을 때는 또 포대 세 개를 테이블 위로 던졌는데, 마침 모두 그의 코앞으로 떨어졌다.
청커가 손을 내밀어 만져보니 이번엔 고운 소금이었다.
"너 소금을 뭐하러 이렇게 많이 샀어?" 그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언젠가 모래 그림 예술가가 나타나서 나한테 그림을 그려주길 기다렸지." 쟝위둬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에 하자." 청커가 말했다. "지금은 그리기 싫어, 조금 어지럽기도 하고."
"안 돼." 쟝위둬의 대답은 명료했다. "바로 지금."
"왜?" 청커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지만 그의 얼굴 표정도 잘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 쟝위둬는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난 안 믿으니까."
"응?" 청커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었다.
"아무 말이나 지어내서 날 속일 생각 하지 마, 지금 당장 그려." 쟝위둬의 목소리는 조금 차가웠다. "못 그리면 이 문밖으로 나갈 생각 하지 마. 그리지 않아도 나갈 생각 하지 말고."
청커는 쟝위둬의 이런 추웠다 더웠다 하는 태도에는 이미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게다가 이때 그의 머리는 조금 어지러워서 그는 단지 기분이 좋지 않을 뿐이었다.
불쾌한 것은 쟝위둬가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한밤중에 모래 그림을 그리도록 강요해서가 아니라 쟝위둬가 그가 모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서였다.
비록 가족들 모두 하찮게 여기며 그가 하는 일이 단지 노는 수준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의 실력이 어디쯤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쉬딩은 애초에 류톈청을 통해 그에게 부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그의 폐물 생활 중 유일한 하이라이트이다. 그를 완전히 쓸모없는 폐물의 영역까지 떨어뜨리지 않는 유일한 하이라이트이다. 비록 그 자신도 줄곧 특별히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그랬다.
"불 켜." 청커는 일어나 테이블을 만져보았다. 꽤 반질반질하다.
쟝위둬는 가서 불을 켰다.
갑자기 밝아진 불빛에 청커는 순간적으로 아득함을 느꼈다. 이 일은 예전이었다면 그도 웃어넘겼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쓸모없이 살았다지만 팔팔육십사 개의 막대기를 휘둘러도 닿지 않을 사람의 부정에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아마 오늘은 두 그릇의 술에 열이 올랐을 것이다.
그는 쟝위둬의 몸을 힐끗 훑어보았다. "옷 입어."
"넌 네 그림 그려, 내가 옷을 입든 안 입든 무슨 상관이야?" 쟝위둬는 가만히 선 채 눈썹을 비틀었다.
"최소한의 존중이야." 청커는 팔로 테이블을 받치고 여전히 꼼짝 않고 서 있는 그를 보며 소리를 높여 고함을 쳤다. "너 시발 입을 거야 말 거야!"
"시발!" 쟝위둬는 갑작스러운 이 외침에 깜짝 놀라 그를 가리키며 한참을 노려보다가 비로소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갔다. "입을 테니까 너 이 자식, 그림 못 그리면 내가 바로 바지 벗고 너 덮칠 줄 알아!"
"내가 그리면?" 청커는 자신이 술기운을 빌어 쟝위둬를 대할 때 늘 세 갈래 길을 돌아서 가던 습관은 이미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소금 한 포대를 들어 입구를 찢어내고 조금 집어내어 손끝으로 문질렀다.
"월세 3개월 치 면제." 쟝위둬가 침실에서 말했다.
"난 그 정도로 돈이 부족하지 않아." 청커는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들을 다 티 테이블 위로 치워놓았다. 이 테이블은 검은색에 윗면이 유리라 꽤 적합했다.
"얼마나 큰 걸 원해?" 쟝위둬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내가 못 그리면 넌 날 덮친다면서, " 청커가 말했다. "내가 그려내면 월세 3개월 면제라니,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그래, " 쟝위둬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네가 그렇게 날 덮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청커는 피식 웃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 어떠한 판돈도 필요 없었다. 특히 이런 건 그와 류톈청 무리였다면 하룻밤 새 입만 열면 이백오십 가지 머저리 같은 조건을 걸 수 있었다.
"뭐 그려?" 청커는 소금 포대에서 소금 한 움큼을 꺼내 테이블 위에 살살 뿌렸다. 몇 번 뿌리니 검은색 테이블에 금방 하얀색이 고루 깔렸다.
"나." 쟝위둬는 청커가 소금을 뿌리는 첫 동작을 보고 바로 그가 진짜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청커 같은 집안일 허접은 물을 따를 때도 한 손을 잘못 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소금을 뿌리는 이 몇 차례의 동작은 능숙하고 멋있었다. 떠다니는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유려하여 모래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최소 3년은 오줌과 모래를 뿌린 경험이 있어 보였다.
"너?" 청커는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왜, " 쟝위둬도 그를 쳐다보았다. "그림으로 그리기엔 너무 복잡하게 잘생겼나?"
"일단 야옹을 그려볼게. 손댄 지 한 달이 넘어서, " 청커는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에 가득 깔린 소금을 찍더니 손가락을 움직여 일부분을 덜 어내며 호선을 그렸다. "손이 좀 굳었어."
"응." 쟝위둬는 대꾸하고 그의 손끝을 응시했다.
첫 번째 호선 이후 청커는 잠시 멈추더니, 그다음에 두 번째 호선, 세 번째 호선을 그렸다. 쟝위둬는 깨닫고 조금 놀랐다. 이렇게 손가락 몇 번 그은 것으로 그는 이미 고양이임을 알 수 있었다.
청커가 또 손가락으로 소금을 조금 쥐어 고양이 머리 위를 가볍게 돌자 원 중간에 작은 점이 생겼는데 그는 심지어 소금이 어떻게 청커의 손끝에서 떨어졌는지도 보지 못했다.
이어지는 "과정"은 그에게 있어 과정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는 도저히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청커가 포대에서 소금을 꺼내는 것과 손가락 끝이 지나갈 때 채워지는 여백 혹은 지워지는 선 뿐이었다.
야옹의 모습이 점차 청커의 손끝에서 나타났다. 흑백의 두 가지 색뿐이고 선도 단순했지만 야옹의 모습이었다. 어디가 비슷한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야옹인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닮았다.
청커는 끝으로 고양이수염을 그린 뒤 손을 털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거면 그릴 수 있다고 해도 되겠지?"
"돼." 쟝위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아." 청커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 한 모금을 내뱉었다. "내가 너 덮친다?"
무료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유료분부터는 글에 비밀번호가 걸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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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분은 원기옥 좀 모아서 오고 싶은데 아마 그냥 한 편씩 뚝딱이며 올릴 듯한^^ㅋ
- 女儿红 고서에 전해지는 어쩌구 술로 딸이 18살이 되어 시집갈 때 축하주로 마신다는 듯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