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4. 22:27ㆍ진행중/《부생附生》柳满坡,2020
[신생新生]
기억 상실
주웨이싱祝微星은 건물에서 추락했다.
5층에서.
죽지 않았다.
구급차에 실려 U시 중심 병원으로 왔을 때 그는 숨을 쉬지 않았는데, 다행히 주임 의사의 의술이 뛰어나 그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억지로 되찾아왔다.
열 몇 시간 동안의 수술 후 ICU에서 일주일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 주웨이싱은 마침내 깨어났다. 뒤통수에 구멍이 난 것 외에는 얼굴도 망가지지 않았고 사지도 멀쩡해 몹시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그렇다. 막장 드라마의 에피소드 처럼, 주웨이싱은 기억을 잃었다.
......
일반 4인실 병실 안, 의사가 회진 중이었다.
안쪽 병상에서 주웨이싱은 의사의 문진을 받고 있다. 속이 미친 듯이 뒤틀리고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는 얼굴로, 떨리는 몸은 억제하기 어려운 고통을 드러낸다. 8월의 날씨에 그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어젯밤에 잘 못 잤어요? 또 악몽을 꿨나?" 주임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진지하게 알아보려 했다.
주웨이싱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순식간에 그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나 그를 삼켜버리려 하자 그는 눈을 번쩍 뜨고는 겹치는 이미지를 떨쳐내고 나직하게 대답했다.
주임이 또 물었다. "그럼 뭐 생각나는 거 있어요? 지엽적인 거나 스쳐간 장면이라도 괜찮아요."
주웨이싱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마치 깔때기가 있는 것 같았는데 안으로 빨아들이기만 할 뿐, 밖으로 나오는 것이 없었다.
"검사 결과는 신체기능이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요. 부정적인 반응은 뇌진탕 후유증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수 있으니 계속 관찰해 봅시다. 조급해하지 말아요. 기억에 대한 문제는......" 아마 뇌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방해 요인이 많아 의사는 정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 봐야 하고, 환자 자신도 봐야 한다.
그의 상태를 보고 주임은 좋은 약을 처방하여 주웨이싱의 증상을 좀 덜어주려 했지만 뒤에 있던 부주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경랑 호텔이 그의 입원비 일부를 지불했는데, 이후 비용은 충당되지 않았어요." 말의 의미는 좋은 약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주임은 주웨이싱을 보았다. 상대방이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이는 것을 보니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부주임은 침대 위 사람에게 직접 설명했다. "그 호텔이 바로 사건 발생지, 즉 당신이 이번에 추락한 곳이에요. 경찰 조사로는 호텔에 일부 안전 책임이 있지만 주요 책임 쪽은 아니라고 해요. 그들이 응급 치료 비용을 지불했고, 입원비는 병원에서 잠시 대신하고 있어요. 저희는 환자분 병세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경찰 조사를 받길 건의했지만, 현재 당신의 기억 상태로는 그들이 와도 결과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저희는 또 당신의 가족과 학교에도 연락을 했는데, 가족은 연락이 되지 않고, 학교는 여름방학 중이라 아마 조금 지나야 회신이 있을 거예요......"
말을 반쯤 했을 때 주임에게 끊겼다. 주임은 소년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안정시키는 약은 계속 쓸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심해서 먹고 잘 수가 없어요. 무슨 원기 회복이니 하는 건 조금 더 기다렸다가 생각해봅시다."
의사가 떠나자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이 끊임없이 떠는 아이를 슬쩍 쳐다보더니 자신의 냄비에서 흰 죽 반 그릇을 덜어 가져왔다.
"조금 마셔봐, 달콤해."
주웨이싱은 멀미가 나서 보이질 않아 한참이 지나서야 아주머니의 관심 가득한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그저 선의로 가득할 뿐인데 주웨이싱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아마 병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가냘퍼서 아직 변성기가 오기 전의 어린 소년 같지만, 주웨이싱의 침대 머리맡 진료 기록을 보면 그는 이미 열아홉 살이었다.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의사가 막 그랬잖아, 밥을 많이 먹어야 낫지, 게다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그녀는 와서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언제 나을 수 있겠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 아이는 그렇게 크게 다치고 그렇게 오래 입원했는데, 이 지역 사람이 아니더라도 요 며칠이면 부모 친척도 기차를 타고 도착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귀신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저 여위고 가련한 꼴 좀 보라, 문병도 간병인도 없으니 집안이 얼마나 독한지. 친구도 있고 동창도 있을 텐데 하나도 보지 못했다. 분명히 경찰이 돕기 위해 적지 않게 연락을 했을 텐데도.
아주머니가 가진 이런 의혹이 주웨이싱이라고 어찌 없겠는가?
눈을 뜨기 전 그는 이미 백 년 동안 아주 깊고 끝없는 암흑 속에서 땅에 묻혀 홀로 허우적대는 것 같았고, 마침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생명의 자유를 얻은 듯했다. 하지만 눈을 뜬 세상은 그를 여전히 망연하고 허무하게 만들었다.
그는 기억하려 노력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쩌다 사고가 난 건지를 조금씩 회상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웠고, 한번 어지럽기 시작하면 물건도 잘 보이지 않고, 토할 것 같고, 구역질로 밤잠을 설쳐 넋이 나갔다.
주웨이싱은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뿐인, 의지할 데 없는 현실 속에서 흐릿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
주웨이싱의 병상은 창가에 있어 2주 정도 지나니 그는 창밖의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은 U시 중심 병원으로, 매우 좋고 매우 유명하다. 정문에는 환자가 끊임없이 왕래하고 있다. 부모의 관심, 애인의 조급함, 친구의 위로, 혼자 병원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주웨이싱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혼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주웨이싱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병원의 사람들부터 병원의 꽃까지 바라보았다.
그는 6층에서 지낸다. 건물 아래는 커다란 초록 식물이 있었는데, 요 며칠 동안 여러 인부들이 뙤약볕 아래서 새로 심은 꽃나무였다. 파낸 자리에 사람 반 만한 크기의 식물을 넣고 흙을 덮고 물을 주었다. 그 식물엔 이미 꽃이 피어 있었다. 꽃봉오리는 주먹만 한 크기로 마치 하얀 방울처럼 거친 줄기에 매달려 있다. 한 그루에 몇십 송이씩 모여 있어 매우 시선을 끈다. 바람이 불면 마치 방울이 울리는 것 같고 한 줄로 늘어서 맑은 소리가 들릴 듯 아름다웠다.
젊은 부주임이 회진을 오자 주웨이싱이 그에게 물었다. "저건......무슨 꽃이에요?"
그는 말이 적다. 의식을 회복한 이래로 별로 입을 열지 않았고 잠을 자거나 아니면 배를 쥐고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 의사는 그가 주동적으로 말을 꺼내자 잠시 창밖을 연구해보고 말했다. "봉미란凤尾兰이라는 관목 같네요."
봉미란......
주웨이싱은 이 이름을 곱씹었다.
"병원에서 왜 한여름에 옮겨 심었지?" 의사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게요, 후 선생님 기억하세요? 이 아래는 원래 해바라기였는데 옛날 이 계절이면 꽃이 아주 예뻤거든요. 무슨 일인지 며칠 전 병원에서 꽃을 모두 옮기래서 바꿔 심었다니까요." 어린 간호사도 덩달아 이상하게 여겼다.
두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몇 마디 나누더니 어린 간호사가 다시 비용 문제를 완곡하게 꺼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을 재촉해도 결말이 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누구를 찾겠는가? 경찰 쪽에서도 궁리만 할 뿐 소식이 없었다.
주웨이싱은 고개를 끄덕이고 창백한 입술을 열어 어떻게든 갚겠다는 뜻을 표현했다. 말은 몹시 간곡했으며 심지어는 부끄러움까지 띠었다. 오히려 어린 간호사가 차마 견디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도록 핍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떠나길 기다렸다가 주웨이싱은 수건을 들고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아직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며 사람을 부축하려 했는데 주웨이싱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고 직접 벽을 짚으며 거북이처럼 걸음을 옮겼다.
"아유, 이렇게 고집 센 애는 처음 보네......" 아주머니는 뒤에서 유감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몇 걸음도 안 되지만 웨이싱은 5분은 걸려서야 화장실에 들어갔다. 엄습하는 현기증과 이명, 메스꺼움을 막아내며 한동안 세면대 앞에 기대어 숨을 몰아쉰 후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친 병약한 소년은 키가 아주 크진 않지만 너무너무 여위었다. 원래 이런 체형인지, 아니면 밥을 잘 못 먹어서인지 알 수 없다. 머리카락은 박박 깎여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두피에 푸른 그루터기 한 겹만 덮여 있을 뿐이다. 비록 붕대를 두껍게 감았지만 드러난 머리는 유독 둥근 걸 알 수 있다.
머리는 둥글고 턱은 날카롭다. 작은 얼굴은 검푸르게 부어 있지만 오관은 이미 정교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커다란 눈, 높은 코, 작은 입은 뜯어보면 아름답고, 모아서 보면 더욱 아름답다. 다소 음산한 아름다움이다.
웨이싱이 앞으로 조금 휘청거리니 맞은편 얼굴이 확대되어 소년의 길고 치켜 올라간 눈썹 끝이 잘 보였다. 눈썹을 다듬고 귀에는 피어싱도 뚫었는데, 한쪽 귀는 네 개, 다른 한쪽은 아홉 개, 무려 열세 개였다.
자신의 얼굴일 텐데 웨이싱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볼 때마다 이 기분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거울을 쳐다보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건 누구야? 이게 나야? 나는 또 누구야?
곧, 쓸데없는 기분은 내려놓고 숨을 내쉬며, 웨이싱은 두 손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고 옷을 풀어 자신의 몸을 닦았다. 요 며칠 그는 줄곧 이렇게 부들부들 떨고 비틀거리며 지냈다. 다행히 한여름이라 약간의 찬물만으로도 충분히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창백하고 가녀린 동체를 드러낸 채 웨이싱은 앞을 다 닦은 뒤 돌아서서 눈을 들었다. 시선은 등 뒤로 내려앉았다. 왼쪽으로 튀어나온 날개뼈에 꽃 한 송이가 새겨져 있는 게 보인다. 새빨간 무궁화 한 송이다.
맑은 빛깔은 윤기 나고 투명하게 일종의 요염함이 묻어났고 이미 창백한 주웨이싱의 피부를 거의 투명해 보이도록 받치고 있었다. 그것은 심장을 향해 가지와 덩굴을 뻗고 있었는데 마치 가슴을 뚫고 안쪽에서 뛰고 있는 것을 붙잡으려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몸에 지니고, 가뜩이나 강인하지 않은 용모가 더해져, 주웨이싱은 거울에 비친 자웅을 따질 수 없는 소년을 바라보며 불쾌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작가의 말 :
2년 만에 다시 글을 씁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뢰 제거: 이 글은 비교적 길어요. 50만 자 이상이고, 내용이 천천히 고조되니 성질이 급한 사람은 잘 생각해보세요. 약간의 서스펜스와 초자연적 요소가 있으며, 전반적으로 시시콜콜하고 연애하는 일상 이야기예요. 달달물은 아니지만, 학대하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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