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생 제5장 집

2022. 1. 29. 07:50진행중/《부생附生》柳满坡,2020

 

쟈오 아주머니는 문 옆의 플라스틱 궤짝에서 슬리퍼 두 켤레를 끄집어내어 낡은 한 켤레는 자기가 신은 뒤 반쯤 새것인 한 켤레는 주웨이싱의 발밑에 놓아주고, 그가 잘 신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왜 또 바빠요? 감기도 덜 나았는데 더 쉬셔야죠."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 주 할머니는 일어나 부엌에서 물 두 잔을 가져와서 한 잔은 쟈오 아주머니의 손에, 한 잔은 접이식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병이야, 진작 나았지." 주 할머니는 다시 돌아가 앉았다. "그동안 고생한 건 너지."

 

주웨이싱은 노인의 걸음걸이가 순조롭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한 쪽 다리의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았다. 그는 쟈오 아주머니가 말한 할머니의 다리가 비에 젖으면 안 된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또 탁자 위의 그 물잔을 보고 만져보니 따뜻했다. 마치 일찌감치 뜨거운 주전자에서 따라둔 것처럼 식어 있었다.

 

"제가 무슨 고생을 했어요, 제가 가만히 못 있는 거 아시잖아요. 이전에야 노점상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닫았으니 낮에는 전혀 바쁘지 않아요."

 

쟈오 아주머니는 물을 마시더니 또 주웨이싱을 보고 화제를 그에게로 옮겼다.

 

"보세요, 할머니, 웨이싱이 얼마나 잘 회복됐는지, 의사가 몇 번 더 재검사를 하면 완전히 안심할 수 있다고 했어요."

 

주 할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거친 손가락으로 종이를 능숙하게 만지작거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작고 정교한 은원보 하나가 손바닥에 누워있었고, 손을 돌려 침대 옆의 종이 상자 안으로 던져 넣었다.

 

"막 돌아와서 좀 덥네요. 얘는 좀 이따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할게요." 대답을 듣지 못하자 쟈오 아주머니는 가볍게 웨이싱을 밀어 그의 태도를 표하도록 했다.

 

웨이싱은 그 물잔을 들고 거의 다 마신 뒤 부엌에 가서 깨끗이 씻어 제자리에 놓아둔 후에야 두 어른에게 말했다. "저 많이 좋아졌어요."

 

쟈오 아주머니가 호응해주었다. "그렇지그렇지, 할머니, 보세요."

 

주 할머니는 마침내 그를 쳐다보더니 또 씻어서 찬장에 넣어둔 그 잔을 쳐다보았다.

 

쟈오 아주머니도 뒤늦게 찬장을 지그시 보더니 웨이싱이 쉬러 가겠다고 하고나서야 불가사의한 정신을 되돌렸다.

 

"씻고 자, 옷은 침대 머리맡에 뒀다." 주 할머니가 말했다. 어조는 담담했다.

 

웨이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낡은 아파트는 80년대 초에 지어졌는데, 수세식 변기가 아직 보급되지 않아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다. 구십 몇 년에 정부가 공간을 새로 계획하여 모든 가구마다 복도에 화장실 한 칸씩을 지어주어 씻는 곳은 모두 집 밖에 있었다. 기껏해야 2제곱미터 크기의 장소로 세면대와 변기 하나를 놓을 정도고 욕조는 없어 샤워만 할 수 있었다.

 

주 할머니가 깨끗하게 치워놓았지만, 도무지 연대가 오래 되어 타일벽은 진작에 누렇게 변했고 모서리마다 오랜 세월의 물때와 녹으로 가득했다.

 

주웨이싱이 갈아입을 옷을 들고 문앞에 잠시 서 있다가 들어갔다. 문을 닫자 실내는 매우 어두웠다. 머리위의 노란 등을 더듬어 켰다. 주웨이싱은 아직도 어지러웠고 또 그 공간이 답답해 도중에 다리가 풀려 토할 뻔했지만 다행히 속전속결로 끝냈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쟈오 아주머니가 아직도 주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대부분 쟈오 아주머니가 말했고 주 할머니는 손밑의 일만 할 뿐이었다.

 

"얘가 병원에서 의사 말도 잘 듣고, 저한테도 예의를 차렸어요. 이번 사고 이후 녀석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 정말 놀라실 거예요. 얼마나 착해졌는지, 제 생각엔 앞으로 더 좋아질 거 같은데 한 번만 더 믿어봐주세요......"

 

주웨이싱은 문밖에 서서 쟈오 아주머니가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을 대신해 사정하는 것을 들었지만 할머니는 줄곧 대답이 없었다. 쟈오 아주머니가 화제를 바꾸고나서야 주웨이싱은 비로소 문을 밀고 들어가 두 사람을 지나 큰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이 적지 않다. 주웨이싱이 가서 뒤적여보니 음악사, 고전악 감상, 악보 등, 드문드문한 전문서적보다는 각종 잡지가 많았다.

 

주웨이싱은 또 옷장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현란한 무지개색이 눈에 들어왔다. 빨주노초파남보, 주웨이싱이 퇴원할 때 입었던 스타일과 똑같이 자수와 글리터가 달린 것도 있다. 그야말로 극단 전체를 혼자 짊어진 것 같다.

 

주웨이싱은 자신의 이전 품위를 이해할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리며 훑어보다가 옷장 아래 직사각형 상자 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조심스레 끌어내어 열어보니 조립되지 않은 은빛 플루트 세 파츠가 눈앞에 드러났다.

 

플루트는 새것이 아니었다. 틈새에 산화되어 까맣게 변한 흔적이 보이고 면포 닦개 두 개도 쭈글쭈글했다. 주웨이싱이 손을 뻗어 만져보니 겉에 먼지가 얇게 덮여 있는데 분명 요 한 달 동안 쌓인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다친지 얼마나 됐다고? 이 플루트는 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 같을까? 전공생으로서 악기 연습을 매일 할 필요가 없는 걸까?

 

주웨이싱은 의문스럽게 방안을 한 바퀴 더 둘러보았다.

 

할머니가 갈아입을 옷을 윗자리에 놓아두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침대일 것이고, 형은 아래쪽에서 잘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책상, 옷장, 구석구석에 다른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모두 주웨이싱 스타일의 물건 뿐이다. 골목의 아주머니들은 자신이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주 있지도 않는 사람의 물건이 9할9푼을 점유하고 있다니 이 인간성은......존재감이 지나치게 크다.

 

주웨이싱은 기억은 부족해도 생활 상식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은 가지고 있다. 플루트를 배우는데 구체적으로 얼마의 돈이 드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현재 가정 형편으로는 이 전공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배웠을까? 어떻게 합격했을까? 합격해놓고 왜 악기는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 검게 변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일이 있어 미뤄둔 것일까, 아니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일까?

 

플루트 상자를 되돌려놓고, 주웨이싱은 생각에 잠겨 위층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할머니가 아마 그의 머리에 난 상처를 고려한 듯, 대나무 돗자리에 베개는 면직물이었고 푹신푹신했다. 은은한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향은 저질이지만 잠이 오게 만들었다.

 

주웨이싱은 냄새를 맡고 눈꺼풀이 지쳐 내려앉았다. 머릿속에는 오늘 영갑리로 오는 길부터 겪은 여러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의 초라함과 빈곤함이 싫은 것보다 주웨이싱은 이십 년 동안 살아온 집에 더 깊이 감개했다. 그는 그저 생소할뿐, 익숙함도 없고 귀속감도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적응해야 해. 주웨이싱은 자신에게 말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그는 잠이 들었다.

 

아마도 새로운 환경으로 바뀐 탓인지 웨이싱은 또 꿈을 꾸었다.

 

칠흑같았던 과거와 달리 이번 화면은 색채가 있는데, 지나치게 화려했다. 가득 찬 포화도가 눈을 자극해 형상을 분간할 수 없었다. 팔레트처럼 알록달록하여 산과 강 같기도 하고, 건축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고, 동물 같기도 하고, 아름답고 묘하며 괴상하고 몽롱하고 비현실적이다. 눈은 제 기능을 잃었는데 다행히 귀는 아직 일을 할 수 있어 그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비파, 시약을 끊임없이 그릇에 부어 서로 반응시키듯, 음이 겹겹이 포개져 눈과 귀에 무겁게 쌓여 쾅 소리가 날 때까지......

 

꿈속 세상이 터졌다!

 

주웨이싱은 힘겹게 눈을 떴다. 머리가 2G 메모리에 1T의 자료를 욱여넣은 것처럼 팽만하여 아팠다.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되돌아와 어두컴컴한 방안이 뚜렷이 보였다. 이미 저녁이었다.

 

얼굴을 만져보고 생각과 호흡을 가라앉히고 주웨이싱은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도 어둑어둑하다. 쟈오 아주머니는 언제 떠났는지 주 할머니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과 가볍게 들려오는 라디오 희곡 소리뿐이다.

 

꿈에서 들은 음악 소리가 혹시 여기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주웨이싱은 허튼 생각을 하며 작은방 문 앞으로 갔다. 할머니는 아직도 지전을 접고 있었다. 바닥에는 벌써 상자가 거의 가득 찼다. 옅은 실루엣은 그녀의 등이 사람 앞에서처럼 그렇게 곧지 않고 조금 구부정해 보였다.

 

주웨이싱이 어떻게 입을 열까 생각할 때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고개는 여전히 숙인 채다.

 

"탁자에 밥 있다. 찬 거 먹기 싫으면 데워라."

 

주웨이싱이 물었다. "할머니는 드셨어요?"

 

할머니가 말했다. "난 이따가 먹으마."

 

주웨이싱은 거실로 나가 불을 켰다. 탁자 위에 과연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육류와 채소, 그리고 동과 햄 죽순탕도 있었다.

 

주웨이싱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의 많지 않은 상식 저장고 속에 가스를 사용해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낡은 냉장고에 낡은 전자레인지 한 대가 놓여 있어 그는 할 수 있었다.

 

탁자 위의 요리를 하나하나 데우고 주웨이싱은 나지막히 말했다. "식사하세요, 할머니."

 

주 할머니가 동작을 멈추더니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반쯤 명멸하는 빛이 문가의 소년의 붕대 감은 얼굴을 비췄다. 밝고 깨끗한 피부를 돋보이게 하여 유난히 풋풋해보인다. 또 그의 표정은 평화롭고 성실하여 어딘가 낯설었다.

 

주웨이싱이 주 할머니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셈인줄 알았을 때 주 할머니는 손에 든 지전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손을 씻더니 휘청이는 걸음으로 와서 탁자 앞에 앉았다.

 

주웨이싱은 그녀의 시원찮은 다리를 보고 다른 한쪽에 앉아 주 할머니에게 탕을 떠주고, 할머니가 그릇을 들고나서야 그도 젓가락을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별로 말이 없었고 큰 기척도 내지 않았다. 주웨이싱은 큰병이 이제 막 나아 입맛이 보통인데 다행히 할머니가 만든 요리는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었다. 역시 그가 병원에서 먹었던 것과 같은 맛이다.

 

밥을 먹는 동안 할머니가 자신을 여러번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그릇을 보고, 그의 젓가락이 떨어지는 곳을 보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입을 열지 않았고, 주웨이싱도 물어보지 않았다. 탕을 다 마시자 할머니가 마침내 말했다. "너희 지도원에게서 방금 전화가 왔다."

 

주웨이싱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들었다.

 

"그녀는 여름방학 때 외지에서 연수하다 오늘에야 돌아와서 네 일을 듣고 가정방문을 하고 싶다고 했어. 나는 네가 거의 다 나았으니 귀찮게 올 필요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일어나서 찬장에서 깨끗한 그릇 두 개를 꺼내 남은 밥과 탕을 함께 부어 말아서 뚜껑을 덮고 조리대 구석에 놓았다.

 

"학교에서 네 병에 보조금을 신청했으니 네가 필요한지 물어보라고 했어. 필요하면 개학한 뒤에 사무실로 그녀를 찾아가라."

 

보조금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왜 이렇게 전화해서 필요하냐고 물어봐야 하는가?

 

할머니는 그의 의문을 알아차린 듯했다. "이전에는 네가 전부 거부했었다."

 

거부라니, 왜 거부해?

 

할머니가 말했다. "넌 네 이름을 써서 보조금을 받는 걸 싫어했어."

 

주웨이싱은 그것이 괴상한 자존심에 의한 것이라고 즉시 추측했다.

 

"보조가 필요하면......선생님께 잘 해드려라." 할머니는 또 당부했다.

 

주웨이싱은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할머니가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선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물건을 받아들었다.

 

"제가 할게요."

 

할머니는 움직이지 않았고, 관찰하는 듯한 눈길을 또 그에게로 떨어뜨렸다.

 

"제가 할게요, 할머니." 주웨이싱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고집스러웠다.

 

할머니의 정서는 쟈오 아주머니보다 함축적이다.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서 미세하게 몇 번 흔들리더니 물러서서 자리를 내주었다. "뜨거운 물로 씻어야 해."

 

"알았어요."

 

사실 주웨이싱의 상식 저장고에는 설거지라는 기능도 빠져 있었다. 움직임이 클 뿐만 아니라 몇 번이나 손에서 놓칠 뻔했다. 세제는 넘쳐서 흘러내리기까지 했는데 다행히 가까스로 마지막까지 끝냈다.

 

주변을 치우고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주웨이싱은 방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도 이미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있었다. 주웨이싱이 작은방을 지날 때 안에서 희곡 가락이 들려왔다 :

 

취중에 웃고, 웃는 중에 취하니, 천지가 함께 취하네.

 

웃음은 슬픔을 띠고, 슬픔은 웃음을 띠니, 인생이 백 가지 맛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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