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4. 23:08ㆍ진행중/《부생附生》柳满坡,2020
영갑리羚甲里
쟈오 아주머니는 주웨이싱에게 허투루 약속하지 않았다. 그날 그를 보러 오겠다고 말한 후로 매일 정시에 도착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주 노부인과 달리 쟈오 아주머니는 아주 붙임성 있고 현숙한 아주머니로, 온화하고 세심하여 극도로 세밀한 것까지 고려해 주웨이싱을 보살펴주었다. 게다가 일부 입원비를 지불해 병원을 안심시켜서 좋은 약을 아낌없이 처방해 웨이싱의 부정적인 증상을 적잖이 완화시켰고, 온 사람의 정신이 많이 좋아졌다.
병실의 환자와 가족들은 처음에는 옆 자리 아주머니처럼 웨이싱에게 불만을 품어 쟈오 아주머니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후 상대방의 친절한 태도로 인해 달라졌다.
쟈오 아주머니는 병실의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이야기를 잘 나눴지만 오히려 주웨이싱을 대할 때는 조금 서먹했다. 주웨이싱은 매사에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쟈오 아주머니가 늘 긴장해서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화를 낼까봐 두려운 것 같은데, 이 태도가 진작 찾아오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선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 알 수 없다.
주웨이싱은 쟈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았다. 저는 누구인가요? 저는 왜 추락했을까요? 저는 또...... 어떤 사람인가요?
최후에는 한마디로 귀결되었다——
"저를 잘 아세요?"
쟈오 아주머니는 뜻밖에도 그의 말투 속 겸손함에 걸려 그가 기억을 떠올리도록 도왔다. 그녀는 문화 수준이 높지 않아 이야기를 할 때 중점을 잠을 수 없었지만 다행히 주웨이싱은 한참을 듣고 스스로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 냈다.
주웨이싱, 남성, 19세, U시 토박이, U시 예술대학 재학 중, 2학년, 전공은 쟈오 아주머니의 말로는 피리라는 것 같다.
형상을 묘사하면서 쟈오 아주머니는 주웨이싱에게 손짓으로 흉내 내주었다. "반짝이는 피리야, 입시 전에 네가 방에서 연습하는 소리를 항상 들을 수 있었어. 듣기 좋았지, 우리 집 룽룽이도 듣는 걸 좋아했어."
반짝이고, 이 손놀림은, 플루트?
주웨이싱은 자신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옆면과 왼손 검지 손가락 뿌리에 미세한 굳은살이 있는 것을 진작 눈치챘는데, 이것은 피리 연습으로 생긴 것일까? 알고 보니 자신의 전공은 악기였다.
주웨이싱이 의외였던 건 쟈오 아주머니는 친척이 아니라 주 할머니의 이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함께 U시의 영갑리라는 오래된 골목에 살고 있었다. 주웨이싱에겐 부모가 없고 가족은 오직 주 할머니와 그보다 열 살 많은 형뿐이다.
왜 이웃 사람이 이렇게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그를 돌봐주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쟈오 아주머니는 주 할머니가 그들 가족에게 아주 아주 잘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웨이싱, 아줌마 상대로 미안해할 것 없어, 너희 할머니는 우리 집 은인이야. 그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렇게 오래 못 살았을 거야. 원래 부유하지도 않은데 자꾸 우리를 도와줘서 이번에 네 입원비까지 이렇게......"
쟈오 아주머니의 얼굴에 슬픔이 비쳤다.
"네 할머니께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어. 웨이싱아, 내가 병원에서 너의 이전 상황을 들었어. 남들이 우릴 탓해도 원망하지 마, 우리가 늦게 와서 널 혼자 고생시켰어. 네가 속으로 화가 나는 것도 아줌마는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화를 내더라도 나한테 내, 너희 할머니한테 내지 말고. 그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
"그날 너한테 일이 생기고, 경찰이 전화를 해서 네 할머니는 병원에 널 보러 왔었는데 너는 그때 수술 중이었어. 그녀는 혼자 몰래 그날 밤 기차표를 사서 고향에 돌아가 돈을 모으고 다시 U시로 돌아와서야 나한테 이 사실을 알려주시고 나도 같이 널 보러 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어. 그녀 자신이 꼿꼿하게 버티고, 너도 꼿꼿하게 버티고 있으니......너희 둘 다 얼마나 고생이야. 날 탓해, 내가 똑똑하지 못해서, 골목에 사람이 안 보이니 너희에게 일이 있으리라고 짐작했어야 했는데, 난 쓸모가 없어. 그녀도 너도 찾질 못해, 널 혼자 여기 이렇게 오래 있게 한 것도 모두 내 탓이야......"
쟈오 아주머니는 눈시울을 붉히고 무릎에 얹은 손을 격하게 떨며 얼굴에 괴로운 기색이 만연했다.
주웨이싱은 처음 보았을 때 그 고집스러운 노부인을 떠올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 오는 밤의 낡은 우산과 그 축축한 한 쌍의 천 신발, 이런 시일이 줄곧 눈앞을 맴돌았다.
위로의 말을 하지 않고, 또 말을 잘 못하기도 해서 주웨이싱은 단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일회용 종이컵을 들어 비틀거리며 건네주었다.
"쟈오 아주머니, 물 드세요." 웨이싱은 목을 가다듬고 간신히 말했다.
담담한 말투에 쟈오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주웨이싱을 보며 흐뭇해했다. "너 철들었구나, 웨이싱, 정말 잘됐어, 아주 잘됐어, 네가 마침내 철이 들었어......"
"저 이전에는 철이 없었어요?" 웨이싱은 의문스러웠다.
쟈오 아주머니는 입을 벌렸다. "......넌 그냥 아직 어려서, 조금 성질이 급한 면이 있었어."
쟈오 아주머니는 모호하게 말했지만, 자신이 병원에 입원한 이후의 친구 상황, 또 주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주웨이싱은 쟈오 아주머니가 그에 대한 평가를 다소 보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신에, 눈썹을 다듬고, 귀에 구멍도 열몇 개나 뚫은 그는 착한 아이일까?
......
또 일주일이 지나 주웨이싱의 상처는 기본적으로 거의 아물었다. 붕대를 풀고 낮에는 침대에서 내려와 한 바퀴 걸을 수 있었고 밤에는 편안하게 한숨 잘 수 있었다. 현기증과 눈앞이 캄캄해지는 후유증이 수시로 찾아오는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몸의 부상은 잘 회복되었다. 비용 문제를 고려하여 기억에 진전이 없어도 주웨이싱은 자신이 퇴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낫지 않았지만 의사도 이 조건을 알고 결국 승낙했다. 쟈오 아주머니가 비용을 지불한 후 환자의 정양과 재검 일정을 정중히 당부한 뒤 사람을 놓아주었다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주웨이싱은 주 할머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퇴원하는 날도 쟈오 아주머니가 데리러 왔다.
"너희 할머니가 그날 비를 좀 맞아서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내가 집에서 쉬시라고 했어.." 몇 번째인지 몰라도 쟈오 아주머니는 또 웨이싱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탓하지 마라."
주웨이싱은 환자복을 벗고 쟈오 아주머니가 챙겨준 평상복을 입었다. 밝은 오렌지색 반팔 티셔츠 앞면에는 섹시한 도안이 프린팅되어 있고 가슴에는 두세 근의 금속 장식이 달려 있었다. 체인 배지와 클립이 딸랑딸랑 드리워져 울리는 게 마치 편종 같았다.
주웨이싱은 참다가 1초 만에 손을 써서 그 쓰레기를 뜯어내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요."
쟈오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밥을 한두 번 사 왔는데, 재료가 조잡하다며 이후로는 집에서 만들어서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줄곧 병원에서 간호하고 있는데, 장을 보고 생선을 잡아 국 끓이고 밥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웨이싱은 바보가 아니다.
쟈오 아주머니는 계속 감동했다. "에이에이, 알면 됐어, 착한 녀석."
처음엔 지금의 주웨이싱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쟈오 아주머니는 시일이 지나며 이 불상사가 눈앞의 소년을 크게 바꾸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만 영구적인 건지 일시적인 건지는 누구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우리 애가 어찌나 놀라게 하는지......" 주웨이싱이 잠든 틈을 타 쟈오 아주머니는 늘 다른 침대 가족들에게 이 말을 했다.
돌아갈 때 쟈오 아주머니는 택시를 잡았다. 주웨이싱의 머뭇거리는 시선에 쟈오 아주머니가 설명했다. "너희 할머니가 특별히 나한테 분부하셨어, 네가 퇴원하자마자 차를 비집고 타면 안 되잖니. 어쨌든 우린 그리 멀리 살지도 않아서 별로 비싸지 않아. 며칠 전에 너희 집에 갔는데 아줌마는 너희 할머니가 또 무슨 보험을 들먹이는 걸 봤어. 그녀가 일찌감치 너희 형제들에게 들어줘서 이렇게 오래 지났으니 이번에 입원한 것도 보상이 적지 않을 거야.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보험?
주웨이싱은 의외였다.
입원 건물 밖에 있는 봉미란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고 밝은 태양 아래 활짝 피어 선명하고 향긋하며 활기가 넘쳤다. 주웨이싱은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택시가 그를 태우고 천천히 떠나도록 했다.
길가의 풍경이 매우 좋다. 웅장하고 세련된 고층 건물이 창밖에 줄지어 서 있는데 수시로 삼사십 층이 우뚝 솟아있다. 일렬로 늘어선 반사 유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쇼윈도 안의 다이아몬드처럼 값지고 눈부셨다. 도로는 넓고 정갈하며 도로변에는 푸른 나무가 녹음을 드리워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고요한 맛을 내어 종횡으로 뻗은 강철 숲은 현대와 자연이 어우러져 딱 봐도 많이 신경 쓴 것 같았다.
"저쪽은 단풍나무 공원, 왼쪽에는 거상 백화점, 천람 광장, 오른쪽에는 U시 과학기술관, U시 음악당, 앞쪽에는......저 하얀 양옥이 줄지어 있는 곳 보이니? 저기가 고인방 거리인데 부자들이 찾는 가게라고 들었어. 물건이 아주아주아주 비싼데 명절이 되면 여기가 온통 시끌시끌해, 토박이도 있고 외지 관광객들도 일부러 쇼핑을 하러 오거든."
그동안 웨이싱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길 돕는 게 습관이 들어 차에 타자 쟈오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주변 경치를 소개했다. 얼굴엔 영광스러움을 띠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녀도 이 가게의 단골손님인 줄 알 것이다.
웨이싱은 모두 묵묵히 들으며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짧은 신호등 뒤에 차량이 모퉁이를 돌자, 눈앞의 풍경은 갑자기 크게 달라졌다.
저예산 영화의 느닷없는 장면 같다. 저질이고, 복선이 없고, 거칠고 직접적으로 메인 화면을 당신 앞에 들이대어 초반의 극과는 전혀 연결되지 않는 데다 미감이라고 할만한 것도 전혀 없다.
주웨이싱은 멈칫했다.
차가 멈춰 서자 쟈오 아주머니는 시원하게 차문을 열고 내리더니 웨이싱을 불렀다. "다 왔어, 이쪽은 차가 못 들어가니까 몇 걸음만 걷자."
주웨이싱은 뒤늦게 택시에서 내려 눈앞의 모든 것을 흐리멍덩하게 바라보았다.
어수선하게 놓인 노점이 앞길을 꽉 막고 있는데 먹을 것 입을 것 날것 익은 것, 있을 만한 건 전부 있었다. 량피와 냉국수가 불티나게 팔렸고 오리목이 익는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구제 옷의 풍격은 각양각색의 사계절 코트부터 반바지까지 비닐을 깔고 팔리 땅에 펼쳐놓았다.
순식간에 바퀴 소리, 확성기 소리, 고함 소리가 거미줄처럼 뒤엉켜 주웨이싱의 귀를 파고들었고 맵고 시큼한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폭발하여 연기처럼 모여들어 주웨이싱의 속이 뒤집어지게 했다.
노점상 뒤편에는 구식 아파트가 몇 줄 늘어서 있는데 높지 않고 서너층이었고 좁은 골목이 중구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바깥에 녹이 슨 배수관 뒤편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철거"라는 글자가 몇 개 쓰여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파 같았다. 뒤엉킨 전선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이고, 곳곳에서 햇볕에 널어놓은 옷은 유행이 지난 머리 장식이며, 얼룩덜룩하고 빛바랜 벽면은 번진 화장, 얼굴은 온통 땟국물이 흘러 늙고 가치 없는 노파.
깨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나치게 조용한 병원에 갇혀 머리가 거의 텅 빈 상태였던 주웨이싱은 한순간 이런 강렬한 시정상을 조금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 만에 주웨이싱은 고개를 들어 멀리 걸려 있는 부식된 문패 위 희미한 세 글자를 분별해 냈다.
——영, 갑, 리.
여기가......바로 자신의 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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