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4. 22:49ㆍ진행중/《부생附生》柳满坡,2020
주웨이싱의 개두 수술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의사는 그에게 한 달은 누워 있길 권했다. 아마 적막한 탓인지 주웨이싱은 줄곧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아 비틀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간호사가 보고는 그를 얌전히 누워 있도록 참견하려 했지만 소년의 깊은 눈빛에 말문이 막혔다.
주웨이싱의 눈에는 두려움도 초조함도 없고, 심지어는 슬픔이나 기쁨도 없어 살아 있는 정서가 결핍되었다. 하지만 못에 가득 고여 있는 물 같은 것도 아니다. 그 안에는 망연함과 호기심, 탐구심이 있었다. 망연함은 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관한 것이고, 호기심은 오가는 모든 일에 관한 것이며, 탐구심은 자신이라는 존재의 진실과 의미에 관한 것이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그는 관찰하고 탐구하며 마치 처음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조심스러움을 지녔다.
이는 본디 긍정적인 행위로 여겨져야 할 텐데 모든 사람들은 그를 보면 동정하고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돈도 없고, 건강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기억도 없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없다.
의료진이 그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병실의 환자와 가족, 옆방의 환자, 거의 모든 층에서 606호 병실의 남자아이가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세상에게 버림받은 것 같았다.
이날, 웨이싱은 또 병이 났다.
8월의 U시는 날씨가 변덕스럽다. 오전에는 밝은 태양이 내리쬐더니 오후에는 이미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건물 아래 봉미란은 돌멩이 같은 빗방울에 맞아 나뭇가지와 잎이 흔들렸고 송이송이 꽃봉오리는 바람에 떨려 활어처럼 팔딱였다. 마치 춤을 추며 발버둥 치는 듯했다.
웨이싱도 떨고 있다. 병원에 입원한 지 3주가 다 되어가는데도 그의 뇌진탕 후유증은 결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밤에는 악몽이 끊이질 않고 낮에는 심한 이명과 두통으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구토를 해서 한시도 편안하지 않았다.
그는 점심때 가까스로 삼킨 흰 죽 한 그릇을 또 남김없이 토해내고 침대에 누워 계속해서 잘게 떨었다. 눈앞에는 흰 빛과 검은 안개가 겹겹이 쌓여 바닷물처럼 그를 담그고, 또 뼈를 발라내듯 그의 영혼을 살갗에서 떼어냈다. 의식은 비현실적으로 밖으로 나와 허공에 떠서 자신의 가련한 모습을 바라본다.
침대 옆을 둘러싼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약을 좀 더 처방해야지. 이렇게 병이 낫지 않아서야, 사람이 힘들어서 죽겠어......"
"처방할 수 있는 약은 다 처방했다니까, 의사도 어쩔 수 없지......그 같은 상황에서 약값 계산은 어떡하고......"
"도대체 이 사고는 어떻게 된 거래? 이전에 복도에서 경찰 조사하는 걸 봤는데, 정말 호텔에서 혼자 떨어진 거야?"
"응, 나도 들었어, CCTV를 보니 이 녀석이 술에 취해 5층 발코니를 넘어 떨어졌고, 다른 사람 탓이 아니래, 안 그러면 경랑 호텔에서 진작 배상했겠지......"
"에이그, 이렇게 어린 게......그런데 철이 없어도 그렇지, 식구들이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가 있나......"
"아무래도 가족이 없을지도 모르지......"
"학교에서 한 번 온 것 같더라, 보고 가더니 기부할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하는데, 개학도 해야 할 거고......"
"아휴, 녀석 좀 봐, 가엾게도......"
가물가물 긴 탄식과 짧은 한숨 속에 누가 방안의 냉방을 켰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아마 웨이싱이 덥다고 여겼을 것이다. 확실히 그의 머리는 땀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사실 이따금 오한이 들었고, 구석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더욱 추워 이가 떨리게 했다. 하지만 아무도 웨이싱의 실제 상태를 알아채지 못했고, 그들은 여전히 열정적으로 동정을 나누고 있었다.
떨리는 와중 또 웨이싱의 허공에 떠 있는 혼백이 몸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그는 잠들었고, 또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주위가 점차 조용해지고 억수 같은 비만 펑펑 쏟아져내렸다.
얼마가 지났는지, 한 줄기 천둥이 주웨이싱을 잠에서 반쯤 깨어나게 만들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급히 눈을 떴다. 시야는 어두웠고 병원 복도의 센서등만이 실내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주웨이싱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복도에서 울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문 앞에 나타났다. 빛을 등지고 있어 주웨이싱은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방의 불을 켰다.
옆 침대의 아주머니였다. 남편인 라오웨이가 요 며칠 수술을 마쳐 밤에도 간호해야 해서 그녀는 계속 남아 있었다.
찾아온 사람을 훑어보더니 아주머니는 궁금한 듯이 물었다. "누굴 찾으세요?"
주웨이싱은 무슨 직감에선지 간신히 버티고 일어나 앉았다.
과연 찾아온 두 사람이 그를 보자마자 급히 걸어왔다.
"웨이싱?!"
한 명은 그 아주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중년 여인이었고, 한 명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인으로 모두 수수한 차림새였다.
말을 한 것은 그 중년 여인인데, 침대 곁으로 다가오더니 걱정스럽게 다시 불렀다.
"웨이싱?"
입을 열며 주웨이싱의 얼굴부터 전신을 둘러보더니 중년 여인은 놀라고 또 슬퍼했다. "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떨어졌지?"
주웨이싱은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또 그녀의 뒤에 있는 노부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중년 여인의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과 달리 노부인의 안색은 아무런 기색이 없다. 그녀는 약간 근엄하게 생겼고 눈꼬리와 입꼬리는 아래로 처졌다. 웨이싱은 어쩐지 그녀가 책망의 뜻을 지닌 것 같았다. 바라보는 눈빛은 기복이 없고 냉담에 가까웠다. 시선은 꼼짝도 하지 않고 주웨이싱의 몸에 꼿꼿이 달라붙어 있었다.
웨이싱의 반응이 보이지 않자 중년 여인은 문득 깨달았다 : "아이고, 이......의사의 말이 사실이야!? 너 정말 우리 못 알아보겠어? 나는 쟈오 아줌마야, 여기, 여긴 네 할머니고." 말하면서 그녀는 노부인을 앞쪽으로 양보했다.
웨이싱과 노부인의 눈이 마주치자 상대방의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더욱 확실해졌다.
웨이싱은 눈을 뜨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시선은 바닥의 커다란 물자국 위로 떨어졌다.
어르신의 손에는 우산살이 녹슨 큰 우산 하나가 들려 있었다. 건물 밖의 그 빗줄기는 7층까지 올라온 후에도 우산 겉면에 아직도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지게 하여 바닥에 작은 물바다를 만들었다.
우산 옆에는 바로 노부인의 발이다. 그녀는 구식의 간결한 버클이 달린 천 신발을 신었다. 몇 개의 작은 징이 박힌 신발 등은 빗물을 배불리 먹어 흰 등불 아래 축축한 윤기를 띠고 밟은 곳은 바로 물자국이 생긴다. 노인의 바짓 자락도 젖은 자국이 무릎까지 번져 있었다. 거친 면 아래로는 그녀의 앙상한 다리 두 개를 볼 수 있었는데 위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
주웨이싱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
어르신의 미간은 여전히 찡그리고 있었지만 이번에 웨이싱은 그녀의 뺨 언저리에 흩어진 회백색 머리카락에 주목했다. 그다지 정돈되지 않아서 일부 혼란스러움과 초조함이 드러났고, 물이 흘러 얼굴의 골짜기를 더욱 깊어 보이게 했다.
주웨이싱은 입을 움직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쟈오 아주머니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더니 서둘러 말했다. "어디 불편한 거 아니야? 어서어서 푹 쉬어."
그녀는 웨이싱을 부축해 눕히고 물을 따라주려 했는데 머리맡 캐비닛 위의 주전자를 들어보니 비어 있었다.
쟈오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 "내가 가서 물을 떠 올게."
가기 전에 또 주 노부인이 아직도 서 있는 것을 보고 자리를 마련해주려 했지만 병실에 있는 두 개뿐인 의자를 옆자리 아주머니가 모두 차지한 채 일어나서 양보할 뜻도 없이 차가운 눈빛만 멀찌감치 이곳을 보고 있었다. 쟈오 아주머니는 주 노부인을 잠시 복도에 앉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노부인이 처음에 원치 않자 쟈오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리도 불편하시잖아요. 이미 며칠이나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또 비도 이렇게 많이 와서, 돌아가서 무릎이 또 병이 나면 어떡해요. 저는 웨이싱을 돌보느라 봐줄 겨를이 없을 거예요."
주웨이싱은 노부인이 몇 초 침묵하다가 입을 열어 꺼낸 첫마디를 들었다. "집안일로도 이미 귀찮을 텐데 내가 미안해서 또 어떻게 신경 쓰게 하겠어. 알겠으니까 갔다 와."
말을 마치고 나가서 앉았는데 우산을 손에 쥔 채 꼿꼿이 세워 지팡이처럼 두 손으로 겹쳐 쥐고 몸 앞을 지탱했다. 등도 곧게 폈다. 머리카락은 분명 흐트러졌고 옷도 반쯤 젖어 있는데 칠팔십 세인데도 앉은 자세는 유달리 단정하고 강인했다.
그녀는 주웨이싱은 보지 않고 그의 머리맡 진료 기록만 쳐다보았는데, 주웨이싱은 오히려 반쯤 가린 이불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곧 쟈오 아주머니가 돌아와서 그는 다시 쟈오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쟈오 아주머니는 일처리가 빨라 주웨이싱에게 물을 가득 따라주고 비닐봉지에서 가져온 일용품을 꺼내어 분류하면서 주웨이싱에게 어떻게 쓰는지 작은 소리로 당부했다. 순식간에 크고 작은 그릇과 컵이 침대 주변에 가득 쌓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녀가 주웨이싱의 슬리퍼를 손질해주는 동안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졌는데, 쟈오 아주머니는 눈치채지 못했다. 주웨이싱은 잠시 쳐다보더니 휘청거리며 침대 밑을 더듬어 주워 들었다.
그것은 통장이었다. 몇 년이 된 건지 모서리가 구겨져 있고 떨어질 때 마침 가장 최근 페이지가 펼쳐졌다.
주웨이싱은 은행 기록이 빽빽이 들어찬 것을 힐끗 보았는데 모두 최근 십여 일 동안 들어온 돈이었다. 액수는 크지 않아 많게는 사오백, 나머지는 모두 일이백 정도였고 가장 적게는 사오십이었다. 원래 있던 예금을 합쳐 삼만 위안이 모였고, 또 오늘 오후에 모두 인출된 것으로 나온다.
쟈오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서야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손을 뻗어 가져 갔다.
"이......이건 네 할머니 거야. 네 입원비 내려고 가져왔어. 우리가 좀 늦게 와서 직원이 퇴근했더라고. 웨이싱 넌 초조해하지 마, 내일 내가 다시 와서 다 낼 테니까, 꼭 낼 테니까."
쟈오 아주머니는 주웨이싱의 안색을 살피며 다급한 말투로 설명했는데 마치 그가 화를 낼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주웨이싱은 입술을 다물고 쟈오 아주머니를 보며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쟈오 아주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웨이싱에게 밥을 먹을 건지 물었다. 식당에 가서 밥을 짓거나 사과를 깎아줄 수 있다고 했다.
웨이싱이 입맛이 어디 있겠는가. 변함없이 거절했다.
위중하거나 막 수술을 마친 환자를 제외하고 병원 면회 시간은 저녁 여덟 시까지였다. 웨이싱은 후유증이 심각하지만, 전반적인 상황은 이미 안정되어 쟈오 아주머니와 주 노부인이 그의 가족으로서 바쁘게 왔어도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돌아가기 전 쟈오 아주머니는 안심이 되지 않아 웨이싱에게 상처를 조심하고 일어나지 말라고 당부하며 자신이 내일 꼭 그를 보러 오겠다 했고, 나가는 김에 줄곧 웨이싱의 침대에 찬바람을 쐬게 한 에어컨을 꺼버렸다.
주 노부인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서 있다. 맨 처음 길게 쳐다본 이후 그녀는 웨이싱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았다.
주웨이싱은 두 사람이 떠날 때까지 그녀를 주의해서 보았다.
총총히 나타나더니 또 총총히 사라져 밑도 끝도 없는 것이 마치 여름밤의 한바탕 소나기 같다.
사람이 복도 모퉁이로 사라지자 3호 침대의 아주머니는 비로소 언짢은 듯 한마디 했다. "......올 줄 알면서 왜 또 벌써 간데."
웨이싱은 듣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또 한줄기 천둥이 내리쳤다.
그는 참지 못하고 휘청이며 다시 일어나 창가로 바싹 다가가 밖을 내다봤다.
칠흑 같은 비의 장막 속에서 작게 비틀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낡은 우산에 반쯤 가리어져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물웅덩이를 건너 서로서로 부축하며 간신히 병원 대문을 빠져나갔다.
주웨이싱은 그녀들을 줄곧 바라보다 더 이상 상대방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 그는 또 보았다. 건물 아래 이제 막 빗물을 머금고 있던 봉미란이 어느새 간병인에 의해 작은 비막이가 세워져 있었다. 비록 급히 만들어 초라하지만, 막 태어난 식물이 비호받을 수 있는 땅을 만들어 비바람을 막아주었다.
웨이싱은 보고 또 보다가 느릿느릿 다시 누웠다.
이번 잠은 모처럼 편안했고, 가위눌림도 없었다.
- 无依无靠 1.의지할 데가 하나도 없다 2.무의무탁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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