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문 22장 떠나다 (去也)

2020. 8. 1. 20:00완결/《과문过门》Priest,2015

2부 - 양파(洋葱)

 

 

 

 

 

 

 

 

떠나다 (去也)

 

 

 

 

 

 

그날 쉬시린이 막 떠났을 때, 쉬진은 자신을 부르는 전화 한 통에 집을 나섰다.

한 법맹 대자본주가 여러 해 전 해외에 세운 특수 목적 회사의 국내 수속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었다. 이 일이 남긴 문제점이 어떻게 해서인지 해외 투자자들에게 들통이 났다. 회사에서는 오히려 그 합법성을 의심했고, 전략 투자자들은 모두 공적 관계 위기에 처했다. 국내에서 책임지고 뒤치다꺼리를 맡은 팀은 혼란에 빠졌다.

 

두 달 넘게 집을 비운 쉬진은 아직 소파에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했는데, 바로 발에 반창고 두 장을 다시 붙이고 10센티미터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대국 주재를 위해 회사로 달려갔다. 

 

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먼저 화상 회의를 열었다. 당일 밤까지 방안을 마련해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쉬진은 점점 어지러워지는 관자놀이를 움켜쥐고 탕비실에 가서 두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신호가 가기 전, 고개를 숙인 쉬진은 신발끈이 끊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쪼그리고 앉아 끊어진 부분을 살펴보았다.

'유년이 안 좋아.'*

*流年不利 평생의 운세/사주가 좋지 않음

 

곧 그녀는 보좌관에게 신발 한 켤레를 사오라고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벌떡 일어났더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

유년이 뚝 그쳤다.

 

쉬시린은 평생 병원에 가본 경험이 열 번이 넘지 않은데다, 이는 전부 열 살 이전의 일이었다. 그가 망연자실하여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가을바람은 가차없이 그의 외투를 꿰뚫었다. 쉬시린은 병원 입구에서 단단히 몸서리를 쳤다. 그는 아무런 상식이 없어 어디 가서 사람을 찾아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더우쉰이 침묵을 지키며 그의 손을 단단히 쥐었다.

 

이때, 병원 앞을 줄곧 서성이던 한 남자가 그들을 보고 성큼 다가왔다. 그의 코끝은 빨개져 있었는데 밖에서 얼어버린건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샤오린이니?"

그 사람이 말했다.

"난 아까 전화했던 자오 아저씨야."

 

"안녕하세요, 아저씨."

쉬시린은 예의를 잊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요? 어떻게 됐어요?"

자오 변호사는 어렵게 입술을 오므리고,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은 듯, 쉬시린을 꼬박 반 분이나 바라보았다.

 

"얘,"

그는 벌벌 떨며 한숨을 쉬고, 다소 조리 없이 말했다.

"얘야......"

더우쉰이 먼저 무언가를 느꼈는지, 쉬시린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그날의 기분이 어땠는지, 쉬시린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달리 꿈 같았다. 곁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조차 희미한 것도 꿈을 꾸는 것과 똑같았다. 쉬진이 여러 해 동안 모은 주요 직원들이 모두 왔다. 그는 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더우쉰이 목덜미를 쥐고 어디론가 데려가도 어디로 가는지, 일의 경위는 어떤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처음엔 쉬진의 여자 동료가 울며불며 그를 안아주려 했는데, 모두 더우쉰에게 예의를 핑계로 거절당했다. 더우쉰은 보통사람을 초월한 예민한 감각으로, 쉬시린을 둘러싸고 있는 '백일몽'을 느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보호하려 했다. 사람과의 교류가 서툰 그의 촉각을 힘겹게 내밀어, 쉬시린을 대신해 오가는 사람을 상대했다.

 

병원 일이 끝나고, 젊은 변호사 두 명이 그들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깊은 밤 도로의 불빛은 안개 속에 서로 이어져, 하나씩 뒤로 스쳐지나갔다. 차창을 통해 밖을 보던 쉬시린은 갑자기 가슴이 한바탕 격렬하게 뛰었다.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다.

'나 방금 뭐하러 갔었지?'

더우쉰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아 자신의 품 안에 눌러 넣었다.

 

쉬시린의 집은 밤새 불이 켜진 채였다. 두 아주머니는 두 눈이 벌겋게 되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쉬시린을 보는 순간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의 울음소리는 쉬시린의 무감각한 신경을 찔렀다. 커다란 공황과 도울 수 없는 분노에 정신이 번쩍 들어 쉬시린은 사납게 더우쉰을 뿌리치고 집 안으로 달려갔다.

백발이 희끗하지만 언제나 말끔한 외할머니는 거실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쉬시린이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의 17세 영혼은 모든 자기 보호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쉬 외할머니에게 한바탕 화를 내고 싶었다.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들이 엄마가 죽었다고 했어요. 말도 안되는 헛소리예요."

또 어린 남자 아이가 되어 외할머니 뒤에 숨어 어른들이 모든 일을 처리하기를 기다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아무 것도 할 겨를이 없었다. 곧 외할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쉬 외할머니는 주샤오청이 힘든 결혼 생활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흘렸고, 백낭자와 허상공의 생리사별에도 눈물을 흘렸고, 삼타백골정의 손오공이 스승에게 쫓겨나도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여러 연극에서 연기하며, 남의 이야기 속에서 평생을 울다가 지금 와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눈 같은 살쩍을 살며시 끌어올리며 쉬시린에게 말했다.

"네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구나. 네 할아버지도 이렇게 가셨다. 할아버지는 자기 건강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일어나 앉으려다 갑자기 넘어지더니 우리들 고아와 과부만 남겨뒀어. 내가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너무 살찌지 않게, 기름진 것도 많이 못먹게 하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또 쓰러지고, 남은 것은 여전히 고아와 과부였다.

 

"이 샤오후이*는,"

쉬 외할머니는 말 한마디에 숨이 턱 막히는 듯 헐떡였다. 마치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린 나이든 사람처럼 오랫동안 침묵한 후에야 자신의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사사건건 제 아버지를 따라갈 수 있을까?"

*쉬진이 개명하기 전에 부르던 호칭

 

이 두 마디 말은 마치 알묘조장(揠苗助长)*의 손처럼, 부드럽게 그의 귀를 스쳐 지나서, 그의 열 일곱 살 소년의 혼을 사납게 잡아당겨 단번에 그를 길게 누르고 담금질하여 스물 일곱...... 서른 일곱 살로 바꾸어놓았다.

쉬시린은 소년으로서의 마지막 숨을 내쉬며, 등을 미리 당겨 어른의 사이즈로 만들었다. 그는 할머니를 일으키며 말했다.

"너무 늦었어요. 먼저 가서 쉬세요. 그리고 전 괜찮아요......"

*1.[성어] 알묘조장. [《맹자·공손추상(孟子·公孫丑上)》편에서, 전국(戰國) 시대 송(宋)나라에 어떤 사람이 벼이삭이 너무 더디게 자란다고 조금씩 손으로 이삭을 뽑아서 빨리 자라게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2. [성어,비유] 일을 급하게 이루려고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치다.

 

쉬 외할머니는 고개를 들어야 외손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쉬시린은 곧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았다. 손에 닿는 것은 초췌하고 늙은 뼈였다. 오랫동안 벌레에게 먹힌 낡은 문틀 같았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샤오후이가 없으면 제가 할머니 돌볼 수 있어요. 응?"

 

매 한 글자, 한 글자가 전부 귓속말 볼륨이었지만, 모든 글자는 쇠못과 같았다. 쉬시린은 말을 마치고 자신의 몸에 철갑을 박았다.

뒤이어 다짜고짜 쉬 외할머니를 침실로 들여보내고, 신발과 외투를 벗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와서 손님들에게 애도의 말을 한 번씩 듣고 두 아주머니에게 손님들 차 대접을 부탁했다. 동틀무렵이 되어서야 사람들을 배웅했다.

 

"어머니께서 많은 일을 남기셨는데, 저는 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이틀 후에 형님, 누님들에게 도움을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요. 먼저 감사드립니다."

쉬시린은 스스로 자신의 항렬을 높여 '아저씨, 아주머니'를 모두 '형, 누나'로 바꾸었다. 잠시 멈추더니 그는 또 말하였다.

"이후에 여러분도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연락 끊지 마시고, 제가 필요한 곳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언제든 갈게요."

 

다음 며칠간은 후사를 처리했다. 쉬진의 재산과 회사 지분 등을 처리하고, 장례식을 치르며 그녀와 무슨 관계인지 모를 손님들을 접대했다. 그녀의 생전 동료들이 여러가지로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사소한 것까지 상의할 수는 없었다. 쉬시린은 감히 외할머니를 더 신경쓰게 하지 못했고, 두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몰랐다. 다행히 곁에 더우쉰이 있어 무엇이든 상의할 수 있었지만, 완전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더우쉰은 학교에 휴가를 신청했다. 낮에는 쉬시린을 도와 심부름을 하고, 여러가지 일에 대처했다. 저녁에는 쉬시린과 함께 그의 작은 일인용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쉬시린은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어 저녁 내내 가만히 누워만 있을 뿐이라 작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온종일 번개처럼 나타난 주샤오청과 더우쥔량도 얼굴을 내밀고, 송롄위안...... 쉬진이 예전에 접촉했던 온갖 사람들이 모두 왔다. 정숴는 외국에서 돌아왔다. 쉬 외할머니는 그를 아주 싫어해서, 그는 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호텔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다.

 

쉬시린은 관련된 간부들을 초대하고, '얘기 좀 하자'는 정숴의 초대를 거절했다. 다행히 정숴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의 '나중에 얘기하자'는 핑계를 이해해주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쉬진을 보내주었다.

 

쉬시린이 처음으로 '죽음'이 뭔지 알게 된 것은, 아주 어렸을 적 외할머니와 함께 '설가장'이라는 평서*를 들었을 때였다. 서너 살짜리 아이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누가 누군지 모른 채 , 셋째할아버지 백문표만 좋아했다. 그가 쓰는 무기 '팔괘매화량은추'는 듣기에 매우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서(评书) 민간 문예의 한 가지로, 장편의 이야기를 쥘부채·손수건·딱따기 등의 도구를 사용해 가며 강설(講說)하는 것.

 

백문표가 설평의 손에 죽었을 때, 작디작은 쉬시린은 외할머니의 탄식 소리를 듣고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왜 저래요?"

"죽었구나."

"그게 뭔데요?"

쉬시린의 물음에 쉬 외할머니가 대답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란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란다.

 

속세의 슬픔과 환희는 지금 이후로 모두 상관없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마치 정처없이 떠도는 부평초처럼 인연이 모였다가 흩어지며, 긴밀해졌다가 소홀해진다. 이는 모두 무상한 일이다. 부모형제도, 연인과 친구도 끝이 있다. 이른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天长地久)'는 것은, 사실 해이하여 소홀해지는 것에 불과하다.

오는 날, 모이는 날, 많으면 하루를 더 벌어, 언제든 뚝 그칠 수 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자신이 '잃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끝나자, 쉬시린은 지쳐서 빈 껍데기가 된 채 거실 소파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창문 밖에는 햇빛이 찬란하게 빛났고, 하늘은 높고 땅은 넓으며, 가을빛이 완연하였다. 도도는 창틀에 축 늘어져 나른하게 졸고 있었다.

 

"이 개는 며칠 동안 신경써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혹시 병이 난 거 아닐까요?

쉬시린은 할말을 찾지 못해 할머니에게 말했다.

"볼 필요도 없다. 안 아퍼." 외할머니는 말했다.

"그냥 늙은게다."

 

쉬시린이 멍해졌다. 도도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 데려왔다. 그때 쉬진은 모든 일을 시작하기 어려웠고, 너무 바빴고, 주머니 사정도 빠듯했다. 아들이 강아지를 갖고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경주급의 순종 명견을 살 수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데리고 난장판인 개 시장에 갔다. 그리고 몸이 자라는 바람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잡종을 사왔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다 이모양이야."

외할머니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작은 사람이었고 저 작은 강아지는 너를 따라 자라서, 네가 어른이 되길 기다렸다가, 그것도 '떠나갈' 게다."

 

실례합니다. 영산까지 몇 개의 길이 있습니까? 십만 팔천여 리입니다. (借问灵山多少路?有十万八千有余零。)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무감각과 피로감이 극에 달한 줄 알았던 쉬시린은 갑자기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 발짝 두 발짝씩 위층으로 뛰어올라가 곧장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를 대신해 방을 정리하던 더우쉰이 경악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쉬시린은 단지 몸 뒤로 문을 쥘 수밖에 없었다. 며칠 결근하던 눈물이 곧바로 흘러내렸다.

 

 

 

 

 

작가가 할 말이 있다 :

“借问灵山多少路?有十万八千有余零。” —— 사범(思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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