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9. 23:06ㆍ완결/《과문过门》Priest,2015
고3 (高三)
쉬시린의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아침에 함께 학교에 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었다.
사실 그들 두 사람은 아침에 길에서 대화하는 일이 매우 적었다. 더우쉰 학우는 비인간적으로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쉬시린은 늘 반쯤 혼수상태인 채로 그의 뒤를 따라 팔랑거리며 학교로 가곤 했다.
하지만, 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말 달랐다.
개학 날, 쉬시린은 흐리멍텅하게 신발을 신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집 앞에서 무려 5분을 기다렸다. 자신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걸로 오해한 도도가 껑충껑충 달려와서 그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쉬시린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눈을 뜨고 멍하니 하품을 한 뒤, 혼자서 갔다.
학년 전체가 고3용 '동물 보호 강의동'으로 이사했다. 방학동안 인테리어를 새로 한 교실은 이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맨 뒷줄의 외로운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뒷문 창을 통해 엿볼 때, 앞에 있는 말썽꾸러기들에게 헛기침하며 주의를 주는 사람은 더이상 없었다...... 쉬시린은 아직 적응하지 못해 부주의했다. 쪽지를 돌리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다가 하루에도 두 번씩 담임선생님에게 걸려, 하마터면 휴대전화의 후견권이 보장되지 않을 뻔했다.
앞이 캄캄한 고3 생활도 졸업반의 조기 개학에 짓눌렸다. 거의 매시간마다 새로운 시험지가 나왔다. 학생들이 시험지를 전달할 때는 조용히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냈고, 희거나 누르스름한 종이 조각이 반 전체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마치 그 노래 가사처럼——
홍호수 물결치네.
매주 하던 체육 활동 수업도 경화수월이 되었다. 정식으로 취소된 건 아니었지만 항상 칠리향이 한두 명의 선생님을 데리고 와 앞뒷문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화장실에 가는 것을 포함해서 누가 나가든 노려보았다.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역시 야간 자율 학습이었다. 학생들이 저녁을 실컷 배불리 먹어서 단전에 있던 그 작은 내력이 전부 위장으로 밀려드니, 두뇌를 동시에 돌볼 여력이 어딨겠는가? 일곱시가 조금 넘어가니 영어책의 글자가 모두 겹쳐져 보였다. 평균 3개의 단어가 두 번씩 연속되었다. 책상에 엎드려서 어둡게 자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하필이면 칠리향이 하이힐을 신고 순찰을 돌고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고3이 된 쉬시린은 자연스럽게 농구팀에서 '은퇴'했다. 여학생 무리가 줄지어 그에게 물을 주는 성황은 더 이상 없었다. 때때로 저녁 자습 시간에 아래에서 환호성이 들려오면 쉬시린은 창밖을 한 번 내다보았다. 물을 주는 여학생들이 바뀌어 있었고, 멋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도 바뀌어 있었다. 견고한 구장에서 1, 2년 동안 선두를 달리던 사람은 유수처럼 흘러가버렸다.
관계가 멀었다 가까웠다 하던 우타오와는 지난 학기 '성년식' 때 감정을 상한 이후로 점점 멀어졌다. 쉬시린은 한동안 학교에서 그를 상대하기가 귀찮았다. 고3 개학 후부터 우타오는 반의 시야에서 페이드아웃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의 훈련은 갈수록 가중되어서, 가끔씩 교실에 와서 앉아있거나 피곤해서 구석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했다. 학생들은 모두 뒤떨어지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려는 궁리를 했다. 우타오는 자신의 체육 성적을 올리는 데 필사적이었다. 다 같은 '성적'이지만 노력하는 방향은 달랐던지라 억지로 한 교교실에 앉아 있어도 매일 갈림길 위에서 사이가 점점 멀어져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신기했다. 어떤 사람은 백발이 되도록 새롭고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나도 마치 오랜 친구 같다. 어떤 사람은 여러 해 만에 다시 만나 주변 10킬로미터 반경의 그리움을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매일 함께 붙어 있지 못하면 금방 감정이 식는다.
쉬시린에게 있어 우타오는 점차 평범한 얼굴만 아는 친구가 되었다.
학교 생활은 천편일률적이었다. 새로 만든 답안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끔 의외의 일도 있었다.
"영어 신문 구독한 사람 받아가——다——받았——어? 이번 호 영어신문 못 받은 사람 있어?"
월요일 오후 1교시 수업은 학급 사서함 집중 교부 시간이었다. 영어 과목 대표가 양 손을 모으고 목이 쉬고 힘이 다 빠진 채 신문 구독자 수를 세어보더니, 수업 사이를 틈타 엎드려 잠든 쉬시린을 깨웠다. 쉬시린은 요즘 감기 기운이 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차이징이 옆에서 그를 치며 말했다.
"너한테 온 편지가 있어."
쉬시린은 지저분한 편은 아니다. 다만 고3이 되면서 늘어난 답안지를 항상 여기저기 마구 던져버렸다. 찾지 못하면 곧 잊어버린다. 물론, 후자는 고의일 수도 있다.
나중에는 더이상 볼 수 없었던 차이징이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책상을 치워주었다.
"......아? 나한테?"
그는 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편지 봉투를 받았다. 흐리멍텅한 한편,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는 편지를 주고받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쉬시린은 편지봉투를 뒤집어 보았다. 윗면을 보니 수취인 이름과 주소가 또박또박 손글씨로 쓰여있고, 우표도 붙어 있었다. 하지만 우표에 소인이 찍혀 있지 않았다.
쉬시린은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렸다. 이 물건의 출처는 이 학교, 심지어 같은 반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모두들 각자의 일로 정신이 없었고, 얼굴에는 졸린 오후의 짜증이 담겨 있었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여 그 알 수 없는 편지를 뜯었다.
편지봉투에서 먼저 감기약 한 통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뭇잎 모양으로 접은 편지가 나타났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식으로 접는 게 유행인 것 같았다. 쉬시린은 엄청난 힘을 들여 비로소 완전히 떼어낼 수 있었다. 편지의 글씨는 매우 깔끔하고 반듯했다. 펜놀림이 매우 부드러웠다. 다만 특징이 뚜렷하지 않아 누가 썼는지 금방 분간할 수 없었다. 주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표현을 써서 봄가을의 슬픈 정서를 표현하고, 중간에는 아주 함축적으로 자신의 사소한 기분을 써놓았다. 마지막으로 약간의 지면을 할애해 쉬시린의 보잘것없는 잔병에 상냥하게 관심을 기울였다.
쉬시린은 구름속에 갇힌 듯 아리송했다. 잠시 후 뒤집어서 다시 한번 자세히 이해해 보았다. 그의 눈이 마지막 부분에 있던 '너와 같은 학교에 붙었으면 좋겠어'라는 문장에 잠시 머물렀다. 이것은 매우 애매하지만 러브레터라고 할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쉬시린의 잠귀신은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그는 도둑처럼 감기약을 책상 서랍 속에 집어넣고 편지는 닥치는 대로 접어 원고지 무더기에 처박아 넣었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린 그는, 뤄빙을 힐끗 쳐다보았다.
뤄빙은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넓은 교복 옷깃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앉은 자세가 바른 것이 '창밖의 일은 듣지 않고 한마음으로 성현의 책만 읽겠다'는 모양새였다.
쉬시린은 뤄빙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락도 잘 하지 않는다. 반장 여자친구를 사귀는 기분은 어떨까? 쉬시린은 뤄빙의 성격에 근거해 상상해보았다. 두 사람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함께 자습을 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재미없는 연애를 하느니, 차라리 문을 닫고 혼자 성인 영화를 보는 편이 나았다.
또한 쉬진 여사는 그에게 명백히 이야기했다. 옛날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열서너 살에 결혼을 했는데, '이른 연애'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터무니없었다. 쉬시린이 이 나이에 정이 들어 예를 갖추고 연애를 한다면, 이는 인생의 큰 사건이니 그녀는 간섭하지 않을 터였다. 다만, 한 가지 그가 만약 떳떳치 못한 일을 한다면, 그 시정잡배들처럼 하는 일 없이 연애로 소일한다면 쉬진 여사는 반드시 하늘을 대신해 정의를 행할 것이었다. 먼저 그의 다리몽둥이를 꺾고, 타지의 기숙학교에 보내 온종일 딴짓할 시간이 없게 만들 수 있었다.
쉬시린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만 두자.'
그는 소문도 내지 않고, 답장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도 낙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예 멍청한 척했다.
쉬시린은 자신이 그 함축적인 러브레터를 만지작거릴 때 차이징이 그를 말없이 흘겨본 것을 몰랐다.
차이징은 쉬시린과 달리 한눈에 뤄빙의 글씨를 알아보았다. 그는 불타는 듯한 눈빛을 서둘러 거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수중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물리 시험 답안지가 그를 좀 숨막히게 만드는 듯했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순식간에 쉬시린의 기억 뒷편으로 내던져졌다.
주말에는 한 달 남짓 집을 비웠던 더우쉰이 드디어 돌아왔다.
고3은 매주 토요일에 6시간의 자율 학습을 하는데, 마지막 자습 시간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더우쉰이 소리없이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무심코 뒤돌아본 쉬시린은 하마터면 그대로 뛰어오를 뻔했다.
더우쉰은 미리 알리지도 않고 짐을 메고 다니다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6중으로 달려왔다.
한 달 동안의 대학 생활 덕분인지, 마침내 더우쥔량과 주샤오청에게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그는 거의 환골탈태한 것마냥 달라져 보였다.
이 해 연초에 그가 막 6중으로 전학 왔을 때는 아무 말없이 얼굴에는 난폭한 기운이 가득했고, 세상과 원수를 진 듯 쇠약한 모습이었다. 이때 더우쉰이 입은 옷은 때마침 당시의 흰 셔츠와 회색 재킷이었고, 귀에는 익숙한 이어폰 줄이 힘없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매우 차분하게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말주변은 없었지만, 양호한 태도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칠리향에게 자발적으로 인사를 했다. 그후, 마치 반을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쉬시린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집에 가?"
쉬시린은 주말에 원래 야구 약속을 잡아뒀는데, 곧바로 과감하게 약속을 어기고 가방을 들고 튀어올랐다. "가자! 내가 꼬치구이 쏠게!"
더우쉰이 말했다. "내가 사줘야지. 나는 네 선생님인걸."
굳이 끓지 않은 주전자를 들다니.*
*속담・비유 (일부러) 하필이면 끓지 않은 주전자를 들어 그 물로 차를 우려내주다. 일부러 남의 약점만을 들추어 난처하게 만들다. 하필 남이 감추고 듣기 싫어하는 말만 끄집어내다.
"...... 죽어."
두 사람은 익숙하게 학교 입구의 꼬치구이 노점으로 달려갔다. '더우 선생님'은 야채와 고기가 섞인 꼬치를 들고 쉬시린을 쿡쿡 찔렀다.
"당근이 있어."
"난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았는데."
"괜찮아. 올해 백신을 맞았으니까 옮지 않아."
쉬시린은 곧바로 그의 손을 잡고 그 대신 제일 위에 있는 빛깔 고운 당근을 물어 갔다.
"쯧쯧, 무슨 사정이 그렇게 많아? 자, 먹어."
더우쉰은 그제서야 고개를 숙여 고기를 뜯어먹었다. 한동안 먹다가 그는 또 자신이 고개를 숙이고 먹기만 하는 게 꼴불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침울하고 기운 없는 밥통 같았다.
그는 쉬시린을 슬쩍 훔쳐보고, 머리를 쥐어짜서 대화거리를 찾아냈다.
"고학년 선배가 말해줬는데, 우리 과에는 특별히 돈이 좀 들어간 실험실이 있어서 학부생도 생쥐를 장기간 키워 실험용으로 쓸 수 있대."
쉬시린은 하마터면 꼬치구이로 목이 막힐 뻔했다. 하필 음식을 먹고 있는 중에 쥐 이야기를 꺼내다니, 더우 선생님도 참으로 생각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한데다 더우쉰이 어렵게 찾아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서 쉬시린은 마음이 갑자기 온화해졌다. 그는 매우 협조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쥐가 비싸?"
"비싼 편이야."
쉬시린이 말을 받아주자마자 더우쉰은 마치 어려운 문제를 맞힌 것처럼 흥분하여 곧이곧대로 대답하였다.
"듣기로는, 그것들 건강을 지키려면 정성껏 사육하면서 먹이를 보장해야 하고, 또 파이프를 타고 오르도록 유도해서 단련을 시켜야한대. 그렇게 몇 달이나 키워야 비로소 죽일 수 있어."
"......"
쉬시린은 힘들게 음식을 삼키고 말했다.
"그럼 피가 떨어진 실험실은 누가 치워?"
"비닐을 깔아두고," 더우쉰이 말했다.
"실험이 끝나면 사체를 그대로 싸서 정리하면 돼."
"......"
"그후에 학교 앞에서는 꼬치구이를 대량으로 판대."
이 물건은 여전히 그렇게 잡담을 할 줄 안다.
http://www.jjwxc.net/onebook.php?novelid=2495960&chapterid=20
두 편 연달아 오디오드라마 커버 일러스트 장면이 등장했었네요. ㅇ0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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