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9. 05:44ㆍ시식코너/《일급율사一级律师》木苏里,2018
실습생 (1)
11월 말, 데카마의 초겨울, 중앙광장의 아침 종소리가 들려왔다. 회색 비둘기가 날개를 치며, 마찬가지로 회색의 먼지 낀 하늘을 스쳐 지나갔다.
어둡고, 춥고, 불길함이 치솟았다. 이 얼마나 좋은 날인가. 집을 털리고 임종을 지키는 사람에게 알맞은 날이었다. 참으로 이 때 옌수이즈(燕绥之)의 심정에 잘 어울렸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일급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성간 메이즈대 로스쿨 학장을 지내며 유명인사들이 모인 가든파티에 단정하고 아름다운 차림새로 참석하곤 했는데......
얼마 안 가서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오전 8시로, 그는 데카마 서부의 가장 혼란스러운 암시장에서 한 편으로는 느릿느릿 커피를 마시며, 다른 한 편으로는 길거리 상점들의 혼잡한 표지판을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웠지만, 표정은 오히려 진한 불쾌감과 혐오감이 가득해 마치 에스프레소 커피가 아닌 순수 고양이 똥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곳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가게를 물색했다—— 물건을 조사하는 것을 돕거나, 가능하면 가짜 증명을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좋을 터였다.
5분 후, 옌수이즈는 한 협소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가게 밖의 전자 표지판에는 두 줄의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흑석 수리점
뭐든지 다 합니다!
아주 좋다.
옌수이즈는 쥐고 있던 커피잔을 길가의 전자 수거함에 버리고 발을 들어 그 가게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
닭장 같은 머리를 한 주인이 카운터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
가게는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현재 약간 추위를 타는 옌수이즈에게도 온기가 느껴졌다. 검은색 장갑을 벗은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금속 고리 하나를 꺼내 카운터에 내려 놓았다.
"이걸 조사하고 싶은데요."
이는 가소성 스마트 기기로, 임의로 변형이 가능하여 대다수 사람들은 휴대가 편한 고리 모양으로 만들곤 했다. 팔찌, 반지, 귀걸이...... 심지어 발찌에 허리띠까지.
옌수이즈는 그렇게 취미가 비범하진 않아서, 그의 손 안에 든 것은 아주 단순한 반지였다.
"뭘 알고 싶소?"
"찾을 수 있는 건 전부."
"좋소."
주인이 적당한 도구를 맞춰 몇 번 두드리자 스마트 기기에서 홀로그램 인터페이스가 나왔다.
화면 안의 내용물은 형편 없이 적어 마치 이제 막 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깨끗했다.
모두 네 가지 내용이었다 : 신분증명서 한 장, 자산카드 한 장, 이웃 별로 가는 항공권 한 장, 그리고 전자음으로 된 음성 파일 하나.
직업 윤리 때문에 주인은 서류를 함부로 뒤지지 않았는데, 옌수이즈는 이 네 가지 파일의 내용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그는 벌써 수십 번이나 뒤져봤기 때문이다——
신분증명서는 일시적인 가짜 신분이었다. 이름은 롼예(阮野)로,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였다.
자산 카드는 암시장에서 구한 무기명 허위 카드로 잔고는 그가 두 달 살기에도 부족했다.
항공권은 떠나는 것만 있고, 돌아오는 건 없어서 그를 멀리 굴려보내는 게 주목적이었다.
"이게 다인가?"
주인이 물었다.
옌수이즈는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네, 이게 다예요."
스마트 기기 뿐이겠는가. 그가 현재 가진 전체 가산이 아마 이게 다일 것이었다.
당신은 이 세상이 자극적이지 않은가?
그는 5월 주말에 있던 연회에 참석했을 뿐이었다......
그날은 술이 잘 안 받아서, 반쯤 돌아다니자 그는 속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먼저 떠나겠다고 인사를 한 뒤 근처 호텔을 찾아서 쉬었다.
그 '잠'이 꼬박 반년을 이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여름부터 겨울까지 자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11월이 되기 이틀 전이었다.
그는 암흑가의 한 아파트에서 깨어났다. 깨어났을 때 머리맡에 이 스마트 기기가 놓여 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행히 인터넷에는 정보가 다양하다. 그는 별다른 노력 없이 표면적인 원인을 밝혀냈다. 연회가 있던 날 그가 투숙한 호텔에서 공교롭게도 폭발 습격이 일어나서 그는 뜻밖의 재난을 당한 재수없는 귀신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이 재수없는 귀신이 유명인이었던지라 각종 뉴스 홈페이지에서 화려하고 충격적인 제목으로 그가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안타까이 여기고 있었다. 마치 개를 산책시키듯 몇달을 끌고나서야 서서히 사라지고 잊혀졌다.
......
물론 진상은 분명히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스마트 기기에 든 전자음의 오디오 파일은 그에게 일부분을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폭발에서 그를 구해낸 사람이 있었다. 반년 동안 그에게 단기 유전자 수술을 진행해서, 외모와 생리 연령을 약간 조절하여 한동안 갓 졸업한 학생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했다. 또 그에게 가짜 신분과 돈, 그리고 항공권을 준비해주어 데카마를 멀리하도록 했다......
요컨대, 각종 정보는 분명하게 그 폭발은 누군가 원한을 갖고 의도한 것이었고 그는 어떤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폭발의 목표였음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최고급 악덕 변호사가 이 생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서 보복을 당한것이냐고 묻는다면, 조금 과분하다.
워낙 많아서 귀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옌수이즈는 암시장에 와서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원흉을 찾아내지는 못하더라도, 그를 구해준 사람이라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30분이 넘도록 주인이 눈꺼풀을 문지르며 건진 게 하나도 없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옌수이즈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 흔적도 없어요?"
"없소. 아주 철저하게 없어."
"스마트 기기 본체는요?"
"암시장에서 구입한 무기명 기기는 조사가 매우 어렵소. 기수가 그렇게 많은 성계를 커버해야하는데, 그야말로 우주에서 바늘 찾는 격이지."
옌수이즈는 스마트 기기 고리를 몇 번 건드려보더니 결국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이 이웃 별로 가는 항공권은 되팔아 주실 수 있을까요?"
주장은 항공권을 힐끗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울 수 없소."
"뭐든지 한다면서요?"
옌수이즈는 문 밖의 표지판을 향해 턱을 들어올렸다.
"과대 광고요."
옌수이즈는 변론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또 말했다.
"끝으로 한 가지 할 일이 있어요."
"뭐요? 말해보시게"
주인은 인사치레로 말했다.
"오늘은 어쨌든 뭐라도 한 가지 해드리겠소. 아니면 문밖의 표지판은 정말 뜯어버려야 할거요."
"제 등록증을 만들어주세요."
옌수이즈가 말했다.
"메이즈 대학 로스쿨, 남십자 법률 사무소의."
메이즈 대학 로스쿨은 데카마는 물론 비취 성계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로스쿨 중 하나로, 주변의 일류 법률 사무소와 인턴십 협약을 맺고 있어, 학생들은 등록증을 가지고 한 곳을 선택해 일률적으로 실습이 가능했다. 물론 최종적으로 법률 사무소에 정식 입사가 가능할지는 심사 결과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옌수이즈는 후사에 관계 없이 남십자 법률 사무소의 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를 '요절'시킨 그 폭발 사건이 바로 남십자 법률 사무소에 연루돼 있었기 때문이다.
"등록증?"
주인은 듣자마자 머리가 터질 듯 간곡히 말했다.
"이건 진짜 못 도와줘."
"그럼 항공권은 가짜로 못 도와주나보네요."
"......"
"여기 진짜 암시장 맞아요?"
"그래그래그래, 항공권 바꿔줄게!"
주인은 투덜거리며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일로 나는 무슨 차익도 못 벌고 귀찮기도 귀찮고 걸리기도 쉬운데......"
그는 20분을 중얼거렸다. 옌수이즈는 들리지 않는 척하며 속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 됐소. 항공권은 환전해서 직접 자산카드에 넣어드리면 되겠소?"
옌수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바에야, 미안하지만 등록증도 같이 만들어줘요."
주인의 얼굴이 무너졌다.
"이렇게 된 바는 어떤 바요? 등록증은 정말 못 만들어. 농담 아니오."
"왜죠? 등록증 자체에는 특수한 기술도 안 들어가잖아요. 걱정 마세요. 전 단지 단기간만 사용할 거니까, 당신한테까지 영향이 미치진 않을 거예요."
옌수이즈는 본인 학교의 물건을 모방하는 것이므로 양심에 실로 한 치의 가책도 없었다.
하지만 주인은 몹시 괴로웠다.
"그 증서 자체는 별 기술이 안 들어가 내가 2분 만에도 하나 만들어줄 수 있소만, 그 서명은 어떻게 할 수 없단 말이오! 지금 필적 감정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당신도 알잖소."
옌수이즈는 눈썹을 들어올렸다.
"무슨 서명?"
"학교마다 등록증에는 학장의 서명이 들어가야 하는데, 전부 문서로 등록돼 있소. 제일 엄격하게 조사하는데 내가 그걸 어디서 구해온단 말이오?!"
요 며칠 간 줄곧 마음이 불편했던 옌수이즈는 마침내 웃고 말았다.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랍니다."
주인은 이 학생이 십중팔구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분 후, 미친 것은 주인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등록증의 학장 서명란에 이 학생이 제멋대로 획을 그어 사인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이를 자구 대조 시스템에 올렸더니 놀랍게도 통과된 것이다!
학생이 위조된 등록증을 가지고 '으스대며' 나갈 때 쯤에야 주인은 정신을 차리고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동동 굴리며 낙심하였다 : 젠장, 학생한테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냐고 묻는 걸 잊었어!
닷새 뒤, 옌수이즈는 데카마에서 가장 명성 높은 법률 사무소에 앉아 있었다.
접객실의 부드러운 소파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보도하러 온 몇몇의 실습생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앉아 있었다. 오직 그만이 긴 다리를 교차하고 턱을 괸 채 넋을 놓고 손에 있는 반지형의 스마트 기기를 만지작거리며 우아하고 느슨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보기에 약간 심사받는 학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심사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금발의 젊은이가 그를 힐끔 쳐다보고, 그를 힐끔 쳐다보고, 10분 동안 수십 번을 쳐다봤다.
"친구야, 내가 사각형 시험 스크린처럼 생겼니?"
넋이 나가 있던 옌수이즈가 갑자기 눈을 들어올렸다.
금발은 방금 한 모금 들이켰던 커피를 그대로 뱉어냈다.
그는 허둥지둥 티슈 몇 장을 뽑아 턱에 묻은 커피를 닦아내며, 멋쩍게 말했다.
"응? 당연히 아니지."
"그럼 왜 전기 봉을 밟은 것처럼 벌벌 떨어?"
옌수이즈는 사람을 괴롭힐 때 항상 약간의 웃음을 띠곤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차가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는데, 웃음기를 띨 때면 마치 얼음과 서리가 녹는 듯하여 각별히 사람을 기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피해자들은 뜻밖에도 귀신에 홀린 듯이 이것이 다정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여기곤 했다.
이 금발 학우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는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느끼긴커녕 자신이 방금 훔쳐보고 있었던 게 확실히 좀 실례되는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그냥...... 네가 우리 학장님을 좀 닮아서."
그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또 스스로 정정했다.
"전 학장님. 너도 알다시피 특히 젊다고 명성이 자자했던 옌 교수님 말야. 물론 그렇게 닮지는 않았어. 키도 네가 훨씬 작은데, 옆모습의 어떤 각도랑 앉는 자세가 좀...... 1년에 한 번씩 하는 연구심사회가 떠올라서 왠지 긴장됐어."
전 학장 얘기를 꺼낸 금발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뀌어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심사회는 물론 졸업식에도 참석할 예정이셨는데 그런 사고가 날 줄이야. 그렇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다니 너무 안타깝지 않아?"
그는 공감을 구하려 고개를 들었는데, 옌수이즈의 푸르고 그렁그렁한 얼굴이 보였다.
금발 : "......"
옌수이즈가 면전에서 추모를 당하는 복잡한 감정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실습생을 담당하는 인사 담당자가 이미 와버렸다.
등록증 심사를 마친 실습생들은 그녀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 우리는 이미 세 차례의 실습생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실습생 자리가 비어 있는 법정 변호사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그분들을 만나본 뒤 배정이 있을 것입니다......"
인사 담당자가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법률 사무소의 상황과 주의사항 등을 안내했지만 후반부 절반 정도는 옌수이즈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익숙한 사람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위층으로 반쯤 올라갔을 때, 때마침 변호사 몇 명이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가장 끝에서 걷고 있던 그 변호사는 키가 매우 컸고, 용모가 극히 영준했다. 그는 한 손에 커피를 쥐고, 다른 손으로 하얀색 무선 이어폰의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와 한창 통화중인 듯했다. 고요한 시선이 무심하게 실습생 무리를 스치며 친해지기 어려운 냉담함을 드러냈다.
이 젊은 변호사의 이름은 구옌(顾晏)으로, 한 때 옌수이즈의 학생이었다.
사실 이 분야, 특히 이런 유명한 법률 사무소에서 그의 학생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었다. 이곳의 변호사는 대부분 메이즈대학 로스쿨 출신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로스쿨에는 매년 만 명의 학생이 들어왔고, 옌 대교수는 기본적으로 머리만 돌리면 잊어버리는데다 어울리는 일이 적어 기억할 수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구옌은 그 중 하나였다.
어째서일까?
이 구 학우는 이론적으로 그의 반 직계 학생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었다.
또, 구 학우는 하루종일 차가운 얼굴로 그를 마주하며 마치 특별한 불만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말 :
온통 허튼 소리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구옌 공, 옌수이즈 수, 틀리지 마.
슴슴의 말 :
원제는 '일급율사[성간](一级律师[星际])'입니다.
[성간]은 왜 붙는 건지 궁금하네요 (.....)
+ 2020.10.10 단행본엔 떼고 나온 것 같아서 뗐음ㅋ
'율사(律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긴 하지만 본 작품에서는 주로 변호사를 뜻하므로 변호사로 번역했습니다.
그외 고유명사 번역은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더 마땅한 표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영문 ㅠㅠㅠ
+ 2020.10.10 제목은 편의상 그대로 일급율사로 두기로 했습니당^^
메모
德卡马 : 데카마
智能机 : 스마트 기기
梅兹大学法学院 : 메이즈 대학 로스쿨
律所 : 법률 사무소 / 율소
院长 : 학장
翡翠星系 : 비취 성계
无线耳扣 : 무선 이어폰 / 리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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