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급율사 제4장 - 실습생 (4)

2020. 10. 14. 00:07시식코너/《일급율사一级律师》木苏里,2018

 

 

실습생 (4)

 

 

이런 말 한 마디 잘못했다고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요청하는 풍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아무튼 내가 가르친 것은 아니야, 옌수이즈는 속으로 말했다.

그는 여태까지 화가 난 얼굴로 참을성 있게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웃으면서 꺼지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꺼질 수 없었다. 그는 폭발 사건의 자료는커녕 구두점 하나도 보지 못했다.

옌수이즈는 아직 접지 않은 홀로그래픽 스크린을 힐끗 보았다...... 10시 15분, 그가 구옌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발표 이후 지금까지 1시간 하고도 11분이 지났다. 이는 아마도 남십자 법률 사무소의 신기록으로 보인다——

등록한 지 한 시간 만에 무자비하게 권고사직을 당하다니, 들어본 적도 없다.

어쩌면 상황이 너무 빨리 바뀌어 예상 범위를 완전히 탈출해버렸는지 옌수이즈는 속상하기보다 오히려 웃고 싶었다......

그라는 사람은 말과 행동이 실제로 매우 방자하여 무언가 생각하면 그대로 했기 때문에, 정말로 입꼬리를 구부렸다.

그리하여 통신을 끊은 구옌이 고개를 돌리자 곧 집으로 모실 실습생이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가와 입가에 옅고 유쾌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좋지 않다.

옌수이즈는 순식간에 웃음을 거두며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는 앞을 가로막는 반투명 홀로그래픽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쓸어서 가리고는 다시 눈을 들어 구옌을 바라보았다.

"대단히 죄송한데요......"

퍽이나 죄송하겠다!

옌수이즈는 그 차가운 얼굴에 분명 이 말이 씌어있다고 생각했지만, 구옌은 엷은 입술을 오므리고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더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시원하게 눈을 돌렸다. 조금만 더 지켜보다간 수명이 줄어들 것 같다는 듯했다.

 

변호사 사무실의 광컴퓨터가 연이어 몇 차례 소리를 내더니, 곧이어 홀로그래픽 페이지를 줄줄 토하기 시작했다. 구옌의 앞에 여러 무더기를 쌓아올리고도 멈추지 않았다. 정말 바빠보였다.

피즈는 이런 실성한듯한 착신음에 곧 위층으로 올라왔다. 빠르고 낭랑한 하이힐 소리가 마치 전쟁터에 나갈 듯하더니, 구옌 사무실의 잿빛 카펫을 밟고서야 소리가 뚝 그쳤다.

"구? 마침 약간 버벅였는데, 반쯤 수속하고 나서야 반응이 오더라구."

피즈가 몸 뒤로 문을 닫으며, 재빨리 옌수이즈를 힐끗 보았다.

"이 실습생은 왜 그래? 이제 한 시간 밖에 안 됐는데 집에 보내라고?"

 

구옌이 손에 쥔 서류를 한쪽으로 살짝 던지자, 홀로그래픽 스크린은 자동으로 원위치로 돌아갔다.

"난 실습생을 받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얘기했잖아."

응?

옌수이즈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구옌이 그가 이제 막 저지른 일들을 직접 이유로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예전의 구옌도 늘 이랬던 것 같다. 어떤 일이든 과하게 해석하지 않고, 제3자에게 누가 무엇을 해서 어떻게 됐는지 말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래서 그가 뭘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설령 그 이유가 비할 바 없이 정당하다고 해도.

이는 법정이 중요시하는 것과는 거의 배치되는 것으로, 남다른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일을 하는 사람은, 암암리에 생활 속에서도 더욱 변론적일 수 있고, 사실 관계에 따른 증거들을 끊임없이 늘어놓으며 뽐내기도 한다. 그는 다만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었다.

 

구옌은 말을 하며 옌수이즈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이전에 눈살을 찌푸린 그 눈으로 이미 질리도록 충분히 본 것 같았다.

피즈는 그 말에 설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담스는 한 시간 전에 이미 당신을 설득하는데 성공했잖아? 실습생 서류를 보고 그에게 응한 건 너였어. 그는 네가 비록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고 악독하게 몇 마디 하긴 했지만 결국 동의한 건 동의한 거야. 말한 그대로야. 난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았어."

옌수이즈는 더욱 의아해졌다.

 

그 텅빈 이력은 누가 봐도 허송세월한 사람의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변호사들이 실습생들을 한 명씩 뽑고, 자리에 없던 모어에게 그를 남겨주었겠는가. 모두 자신을 방해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하물며 구옌 같은 성격에 그 이력을 보고도 뜻밖에 수락했다고? 이건 무슨 농담이야?

 

만약 그 당시 그와 구옌의 사제 관계가 화목하고 좋았다면, 그는 구옌이 그를 알아보고 어렵게 밝혀내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옌 대교수는 꽤 자신이 있었다.

 

"그땐 확실히 승낙했지."

구옌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바꿨어."

"그치만 네가 여태 승낙한 일은 번복한 적이 없었잖아."

피즈가 말했다.

"넌 지금까지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번복한 적 없었어."

"그럼 이제부턴 있는 거야."

"......"

피즈는 구두 굽을 힘껏 밟아 부러뜨릴 것 같았다.

 

"석 달치 급여는 내가 이랬다저랬다 한 데 대한 보상으로 쳐. 보름 후 그를 모어에게 찾아가게 해."

"어엉? 뭐라고?"

피즈는 재빠르게 옌수이즈 쪽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모어에게 보내?"

구옌은 비강으로 차갑게 대꾸했다.

"응."

"모어에게 보내?"

"......"

"권고사직이 아니고?"

"......"

구옌은 이미 손 가는 대로 광컴퓨터의 소식에 회신했지만, 본래 이런 종류의 문제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굳은 침묵은 긍정의 또 다른 형식이었다.

옌수이즈는 이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화가 났으면서 권고사직은 아니라고? 설령 아니더라도 돈을 돌려줘? 이 학우 너 혹시 몽유병인거니?

 

"구,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에 너 오늘 좀 이상해."

피즈는 옌수이즈를 대신해 속마음을 말했다.

물론 이 한 마디는 가까스로 한 것이었는데, 1초 후 피즈가 히히 웃으며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귀여워! 정말 권고사직 시키려면 절차가 너무 어려워. 어쨌든 우리는 메이즈 대학과 협의 관계라 갑자기 학생 하나를 쫓아내면 산더미 같은 서류를 첨부해야 해. 난 요즘 스크린 멀미가 있어서 문서를 보려면 심장과 간, 비장, 허파에 신장까지 전부 아프다고."

한참을 한 마디 한 마디 듣던 구 대변호사는 마침내 한 마디 대답했다.

"난 실습생 멀미가 있어."

피즈 "......"

옌수이즈 "......"

 

"좋아, 하여튼 오늘은 너에게 인정미가 넘쳐흐르네."

피즈는 영혼 없이 사람을 칭찬했다.

"롼도 확실히 그렇게 느꼈지?"

그녀는 옌수이즈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롼? 누구?

옌 대교수는 미소지으며 그녀와 5초 동안 마주보고 있었다.

 

이 5초 동안 사무실 전체는 숨 막히는 침묵으로 가득 찼다. 피즈의 하이힐이 또 부러졌다.

5초 후 옌수이즈는 마침내 누군가가 자신에게 지어준 가명을 떠올렸다——롼예.

롼, 예, 단독으로 부르면 어떤 글자든 참으로......

옌수이즈는 자동으로 '롼'으로 변신해서 말했다.

"지난 한 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하는 바람에 너무 미안해서 말하기가 좀 그래요."

"괜찮아. 신인은 늘 작은 실수를 하니까, 이상할 것도 없어......"

 

미스 피즈는 실수와 용서의 문제에 대해 장황하게 말하는 게 마치 거대한 원을 도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서류를 보던 구옌도 듣다 못해 눈을 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 이 실습생을 모어에게 돌려줄 참이지?"

피즈가 기침을 했다.

"난 한 바퀴 돌려서 이 건에 대해 말하려고 했어."

"응?"

"돌려줄 수 없어."

"...... 이유는?"

"내가 손이 좀 빨라서 그의 등록증은 이미 모든 절차를 마치고 당신 명의 아래 걸려 있어. 변호사 협회의 심사도 다 끝나서 되돌리지 못해."

피즈가 그를 흘깃 보았다.

"그래서 내가 말한 일은 하나도 해결 못 했다?"

"아니, 사실 하나는 해결 했어"

피즈가 말했다.

"급여 가불을 신청했어."

 

이 말이 끝나자 옌수이즈의 자산카드에 '띵' 소리와 함께 메시지 알림이 나왔다.

죽든지 말든지, 이 스마트 기기는 그의 손 안에 며칠 안 돼서 아직 어떤 설정도 건드리지 않아 여전히 기본 모드였다. 그래서 맑은 전자 합성음은 또렷하게 말했다——

수령 비용 4680서

유형 : 급여 선수금

출처 : 사무 자산 카드 구옌

운영인 : 에일린·피즈

잔액 : 5022서

 

"......"

남십자 율소의 효율이 이럴 때는 무섭게 높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당신들은 상황도 묻지 않고 돈을 꺼내는가?

게다가 꺼낸 돈은 구옌의 것이다.

 

사무실이 다시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한동안 이 스마트 기기 알림 메시지 중 어떤 말이 더 혼란스러운지 알기 어려웠다.

잠시 후 피즈는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초리로 옌수이즈를 바라보았다.

"만약 급여 가불이 아니었으면 당신의 자산 잔액은 300여 서밖에 되지 않았던 거야? 그럼 어떻게 살아?"

곧, 시종 그를 보지 않던 구옌마저 눈길을 돌렸다.

옌수이즈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도 현실은 만약이 아니었네요."

 

그의 잔고가 너무 소름끼쳤던 것일까, 구옌도 흔들렸다. 오전의 떠들썩한 '권고사직' 사건은 결국 이렇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옌수이즈는 변호사 사무실에 정식으로 입주했고, 사무실 주인이 묵인함으로써 인정받았다.

구옌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바빠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중간에 짬을 내어 아래층의 행정 보좌관에게 연락해 일을 시킨 후 연락을 받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5년 동안의 사건 자료를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모두 옌수이즈에게 전달했다.

 

아마도 모든 실습생들에게 주어진 초기 임무——권종 정리일 것이다. 옌수이즈도 당시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보낸 적이 있어 당연히 낯설지 않았다. 솔직히 이런 일은 양만 많고 무미건조하며 눈을 피곤하게 해 사람을 귀찮게 만들었다.

그러나 옌수이즈는 매우 기뻐했다. 그가 남십자 율소에 실습생의 신분으로 들어온 것은 바로 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을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면 그는 '폭발 사건' 전후에 관련된 각종  세부 자료를 당당히 살펴볼 수 있을  터였다.

 

옌수이즈의 광컴퓨터는 홀로그래픽 문서를 점심 시간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토했다. 문서들은 미처 접히기 전에 그를 책상에 묻어버릴 정도로 높이 쌓였다.

결국 다른 실습생 로크, 오, 바로 그 금발 머리가 그에게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어봤는데, 그제서야 광컴퓨터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맙소사, 이렇게 많아?"

로크가 감탄하며 말했다.

"전부 구 변호사가 다룬 사건이라고?"

"모르겠어. 아직 자세히 보지 않아서."

옌수이즈는 문서를 하나하나 접어 눌러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평면으로 만들어 더 이상 압박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너무 시뮬레이션해도 좋지 않아."

로크가 말했다.

"언제까지 정리하래? 넌 왜 아직도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왜냐하면, 마침내 자신의 구체적인 '사인(死因)'을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으면 로크가 두려워할 것 같아 옌수이즈는 제법 자상하게 아무렇게나 이유를 댔다.

"드디어 뭘 좀 먹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지."

 

그는 로크와 함께 문을 나서 다른 실습생 몇 명을 만났고, 그들은 율소 바로 옆의 식당을 찾았다.

"잘 먹을 수 있는 날은 흔치 않으니까 소중히 여기자고."

필리다라고 불리웠던 여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바빠지면 일부러 다이어트 할 필요도 없어진대."

이 말이 끝나자 또 다른 실습생 안나가 곧 옌수이즈를 쳐다봤다.

"롼? 너 어떻게 우리 둘보다도 더 적게 먹니?"

옌수이즈는 변호사가 흔히 갖고 있는 결함이 있는데——위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 문제는 비교적 번거롭지만 그리 크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정말 위가 썩어버리면 직접 의료 수술로 새 것으로 바꾸면 되고, 어떠한 생명의 위험도 없을 터였다.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게 결국 위를 자주 교환하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밥은 매일 먹어야 하고 매일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먹는 게 그리 즐겁지 않았다.

옌수이즈는 최근 더욱 주의해야했다. 그는 반년 동안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해 갑자기 너무 많이 먹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잔병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을 천천히 삼키고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들을 향해 웃었다.

"돌아가면 그렇게 많은 권종을 상대해야 하는데,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아."

토할 테니까.

2인분 째 먹고 있던 로크는 스파게티가 목구멍에 걸려 고개를 돌려 기침을 하더니 바보가 돼버렸다.

 

점심을 반쯤 먹었을 때, 옌수이즈는 갑자기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그가 사는 그 아파트에서 온 것이었다. 당초 그를 구해준 사람이 그 아파트를 임대하는데 사용한 것은 모두 그의 가짜 신분과 스마트 기기 통신번호였기에 자신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메시지는 단 두 마디의 짧은 정보였다. 옌수이즈는 단 한 번 보았는데도 밥을 먹기가 힘들게 느껴졌다—— 그 아파트는 그의 임대 기간이 내일까지라고 알려주고, 만약 계속 머무르려면 임대로를 선불로 내야한다고 했다.

반년 치를.

"......"

옌 대교수가 돈 때문에 이렇게 걱정한 것은 수 년 만이었는데, 그는 권종을 보기도 전에 이미 토할 것 같다고 느꼈다.

 

메시지는 또 잠시 후 통신을 통해 음성 확인도 하겠다고 했다.

5분 후, 옌수이즈는 갑자기 한 통의 통신을 받았다. 그가 모르는 번호였다. 아파트에서 보낸 게 틀림없었다.

그는 통신을 연결하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아파트 임대는 연장하지 않겠습니다."

돈이 없어요. 임대는 무슨.

 

통신 상대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뜻밖에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직접 연결을 끊었다.

 

 

 

 

 

 

메모

로크 : 洛克

에일린·피즈 : 艾琳·菲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