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9. 21:08ㆍ시식코너/《일수인생一树人生》Priest,2009
제2장 은원
취샤오하오의 지능지수로는 별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날은 이번 학기의 마지막 날이었다. 셰이는 마침 저녁 하교 시간 후 당번을 서야 했다. 교실 안의 사람들이 대부분 가버렸고, 못된 녀석들만이 교실 밖에서 날뛰고 있었다. 취샤오하오는 왕수민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한 대 쳤다.
"네가 생각해낸 거니까 네가 가!"
왕수민은 소매를 걷어올리며 비틀비틀 교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정인군자'인지라, 이런 식으로 남몰래 하는 짓은 품위가 떨어져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침 셰이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니 변비 같은 얼굴의 왕수민이었다. 어째선지 몹시 불편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계속 청소를 하며 이 이웃의 재수 없는 얼굴을 건드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샤오셰가 고개를 숙였을 때 마침 왕수민에게 옆모습이 보였다. 긴 눈썹과 날카로운 아래턱, 수려한 용모는 참으로 사내 아이임을 알 수가 없었다. 왕수민은 죄책감이 올라 꾸물거렸다. 뒤에서 부추기던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형제들아, 이런 여자애를 괴롭히는 건 명예롭지 않아.
취샤오하오는 무언가 깨닫고 곧 입을 뒤통수까지 삐죽였다——네가 패기가 없다는 걸 알겠다.
왕수민의 아드레날린은 어린친구들의 경멸하는 눈초리에 의해 즉시 비정상 분비되어, 그는 이를 갈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오냐, 네 그 가짜 여자애를 군중으로부터 떨어뜨리고, 도련님이 오늘 너에게 군중의 힘을 보여주마!’
가볍게 기침을 한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목으로 갔다.
"셰이."
셰이가 다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한 쌍의 커다란 도화안은 흑백이 뚜렷하고 맑고 투명한 게 마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왕수민은 아무렇지 않은 체하며 뒤를 가리켰다.
"리 선생님이 널 찾아. 사무실로 오래."
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는 온순했고 속마음도 성실했다. 왕수민은 비록 물건은 아니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기에 순순히 마지막 책걸상을 정리한 후 리 선생님의 사무실을 향했다.
그가 모퉁이를 돌자 취샤오하오는 즉시 손을 흔들어 못된 녀석들을 지휘하며 우르르 몰려왔다. 어린이들의 파괴력은 놀라운데다가 일부러 쿵쿵 뛰기까지 하니 가지런한 책상과 의자는 금세 어질러졌다. 왕수민은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조금 조용히 움직여, 빨리빨리빨리."
셰이는 손을 깨끗이 씻고 담임인 리 선생님의 사무실로 갔다가 멍해져 있었다——리 선생님의 사무실 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그는 잠시 주저하며 서 있었다. 학기말이 곧이라 사람은 이미 빠르게 돌아갔다. 열려 있는 복도 문으로 서북풍이 우우 소리를 내며 불어들어와 그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갔다.
셰이는 작은 손을 내밀어 차가운 자물쇠를 한 번 만져보고, 또 5분 간 서 있다가,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져 돌아가서 왕수민에게 다시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가 교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가 방금 정리해둔 책상과 의자는 마치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처럼 어수선해져 있었다. 칠판에는 못생긴 개 그림 옆에 비뚤비뚤한 분필 글씨가 크게 씌어 있었다.
"이건 셰이, 암컷이다."
그리고 색이 다른 귀신 얼굴들.
학교는 이미 조용해졌고 교실 안이 어두워졌다. 셰이는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바닥에 있는 칠판지우개를 주워 먼지를 털어낸 뒤 다리를 받치고 하나하나 깨끗이 닦았다. 그 다음에 넘어진 책상과 의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끝냈을 때 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셰이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의자에 분필로 한 줄의 글씨가 적혀 있었다 :
네 책가방은 연못에 있으니 직접 가서 물어와.
셰이는 입을 약간 오므렸다. 갑자기 마음이 몹시 억울했다. 그는 교실 문을 잘 잠그고 운동장의 연못으로 갔다. 사람들이 말하길 어떤 종류의 꽃은 진흙에서 나도 물들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연못 아래는 정말 새까만 진흙탕이었다. 그 위는 얇게 얼음이 얼어 있었다. 자신의 짙은 남색 가방이 연못 한 가운데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얼음 조각과 흙탕물이 온통 튀어 있었다. 가방 안에는 다음 학기 교과서와 필통도 들어있었다. 책가방은 얼마전 그의 생일 때 어머니가 새로 사준 것이었는데, 그렇게 더러운 연못에 외롭게 누워 있었다.
이 큰 운동장에 홀로 서 있는 자신과 같았다. 서북풍에 그의 작은 얼굴이 따가웠다. 셰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가 눈가에 시큰한 열기가 몰려오자 손을 뻗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떨궜다.
온 세상이 그를 버린 듯, 아무도 돕지 않는다.
그는 한참만에 소매로 얼굴을 깨끗이 닦고 바짓단을 높이 걷어올리고 연못 둘레에 올라섰다. 그곳에는 이제 막 내린 눈이 얇게 얼어 있었는데, 셰이는 날이 너무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발이 미끄러져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뼛속까지 시릴 만큼 차가운 연못 물이 온몸으로 밀려 왔다. 그가 손을 들어올리자 새까만 흙탕물이 그의 손끝에서 떨어졌다. 저도 모르게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셰이는 자기가 만약 이 연못에서 얼어죽거나 익사하면 내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그와 놀기를 좋아하지 않고, 왕수민조차도 그를 상대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그는 익사하지 않았다. 그 연못은 너무 얕았다. 셰이가 일어나니 연못은 그의 무릎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연못 사이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들어가 흙탕물이 가득 담긴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씩 기어 돌아왔다. 길을 가는 행인들은 모두 온몸에서 흙탕물이 흘러내리며 추워서 입술이 파래진 아이를 한 번 더 쳐다보는 걸 참지 못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늦어 모두 행색이 바빠 멈춰서 물어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셰이는 멍하게 집으로 걸어갔다. 그는 여태까지 세상에 이렇게 추운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왕수민의 지휘로 나쁜 일을 끝낸 아이들은 기세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이 왕수민의 뒤를 따라다니며 쾌거를 칭찬하자 그는 매우 의기양양했다. 취샤오하오는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였다.
"큰형님, 앞으로 네가 우리 큰형님이야. 대의멸친이다!"
그래, 드디어 한 단어가 맞았다.
"내가 그린 개가 똑같았지? 그 여편네 화가 나 죽을 걸."
"책가방은 내가 던졌어!"
"네가 별로 멀리 못 던져서 결국 내가 막대기로 가운데로 보냈잖아."
"네가 던져봐, 그 낡은 가방이 어찌나 무거운지, 다음엔 꼭 네가 던져라."
"난 그냥......"
왕수민이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드라마 속 무림 맹주의 모습을 흉내내어 손을 흔들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각지의 영웅들이 모두 힘을 냈다. 앞으로......"
앞으로 뭐였는지 떠오르지 않아 자기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너희들은 나를 따르라. 내 한 입은 곧 너희들의 한 입이니, 너희가 맛있는 걸 먹고 매운 걸 마시게 할 것이다!"
한 무리의 사내아이들은 호두만한 주먹을 들고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문화 수준이 높지 않은 큰형님은 결맹의 어휘가 방향을 꺾어 산적 두목의 맏딸이 산적 두목의 아내로 바뀐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웅적인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걸 뭐라고 하던가? 오, 백성을 위해 해악을 없애고 군중을 이탈한 사람은 마땅히 군중의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왕수민은 마치 장군 같았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그가 거짓말로 셰이를 속였을 때, 작은 소년의 그 또렷하고 거리낌 없는 눈이 떠올라 마음 속으로 왠지 모르게 좀 떨떠름했다. 그러나 그 약간의 불편함은 곧 어린이들의 즐거운 분위기에 휩쓸렸다. 앞으로 그가 그들의 큰형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마치 하늘을 밟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영웅적인 기분은 그의 아버지 왕다솬의 허리띠 아래서 금방 가라앉았다. 왕다솬이 성적표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곧 허리띠를 풀어들고 '남자 단식'을 하기 위해 왕수민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할아버지를 부르고 할머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그의 어머니 자구이팡이 돌아오자 남자 단식은 곧 혼성 복식으로 바뀌었다. 자구이팡은 숨돌릴 틈도 없이 탁자를 두드렸다. 엉덩이가 퉁퉁 부은 왕수민은 빨래판에 무릎을 꿇고 처량하게 외가 가훈을 들으며 우거지상을 하고 자신이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했다.
이 날 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뜻밖에도 셰이일 줄이야...... 아래층에서 구급차가 끊임없이 "죽었어——죽었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황차이샹은 집에 없었는데, 마침 셰서우줘는 밖에서 카드놀이를 하다 돈을 좀 잃고 또 술을 좀 마셔서 뭘 봐도 눈에 거슬리는 상태였다. 셰이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살얼음 조각을 몸에 달고 와들와들 떨며 돌아왔다. 짙은 남색 가방은 이미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셰서우줘는 술에 취해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손에 집히는 대로 의자를 들고 셰이를 향해 사납게 내리쳤다.
"젠장할 이 망할 놈아, 내가 몇 세대가 덕이 없어 너를 키워 물건을 만들어놨더니 너는 네 아버지가 부자로 보이냐? 가방을 진흙 속에 던져? 가방을 진흙 속에 던져? 하루종일 밑지는 새끼! 네가 집안을 망쳤어! 네가 집안을 망쳤어!"
황차이샹이 돌아와서 문을 열었을 때, 셰이는 이미 전신을 경련하며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친아들의 참상과 부인의 비명에 놀란 셰서우줘는 마침내 술이 깼다. 손에 든 의자가 툭 떨어졌다. 두 눈에 핏발이 가득했고 커다랗게 뜬 눈은 머지않아 뽑힐 듯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황차이샹은 셰이를 안고 황급히 120에 전화했다. 지금까지 교양있게 작은 소리로 말하던 여자는 마침내 셰서우줘에게 삿대질을 하며 무지막지하게 욕을 퍼부었다.
"셰서우줘! 네가 사람이야? 사람이야? 너......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 내 아들이 만약 잘못 되면 넌 곱게 못 죽을 줄 알아!"
구급차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위층 아래층 이웃이 모두 와서 구경했다. 왕다솬과 자구이팡은 자기 집 새끼를 상대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가서 도와주었다. 왕수민은 몰래 복도의 계단을 붙잡고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셰이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이 귀신 영화 속 죽은 사람처럼 새파래져 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복은 쌍으로 오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 하였다. 첫번째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절세의 까마귀 주둥이일 것이다. 퉤퉤퉤, 좋은 것은 영험치 못하고, 나쁜 것은 영험하다.
셰이는 응급실에 실려가 겨우 살아나서, 겨울 방학 내내 병원에서 지냈다. 황차이샹은 회사와 병원 양쪽으로 뛰어다니며 아들을 돌보았다. 사람이 마치 매일 말라가는 것 같았다. 매일 날도 밝기 전에 셰이의 하루 식사를 만들고, 점심 때는 데워서 보온통에 갖다주고, 저녁 때 또 갖다주고......
자구이팡은 이따금 가서 도와주고, 돌아와서 왕다솬과 고개를 가로저었다. 쇠로 만든 사람도 이런 고통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일이 터졌다.
그날 밤 황차이샹은 회사에 일이 있어 퇴근이 늦었다. 샤오셰가 병원에서 초조하게 기다릴까봐 급히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가다 길목에서 갑자기 나온 승합차에 부딪쳤다...... 그녀를 보살펴주는 어머니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붙잡아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벽에 걸린 흑백 사진이 되었다. 왕수민은 그 사진을 보며 약간 가짜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황 아주머니가 그렇게 포동포동한 두 뺨과 그렇게 새까만 머리를 한 채 그렇게 즐겁게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몹시 울고싶어졌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그와 관계 있는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셰이를 속이지 않았더라면, 만약 셰이가 그렇게 순진하게 그를 믿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가 셰이의 책가방을 연못에 버리지 않았더라면, 만약 셰이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만약 셰 아저씨가 그를 때리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황 아주머니가 아직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 세상에 그렇게 많은 '만약'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셰이가 병원에서 나왔을 때, 온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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