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인생 제5장 - 은원을 지우다

2020. 10. 15. 03:50시식코너/《일수인생一树人生》Priest,2009

제5장 은원을 지우다

 

놀란 셰이는 자신이 이미 포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들 몇 명이 중학생이며, 학교에 가지 않고 몰려다닌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의 악명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유명했는데 남자아이들이 그들의 얘기를 꺼낼때면 늘 모종의 불확실한 심리에 '사회생활인'이라는 이미지를 더해 이 작은 건달들을 비할 바 없이 위대하고 두려운 이미지로 떠받들었다.

 

그들은 사람을 때려 피를 보기도 했고, 몸에 칼을 지닌데다, 경찰서까지 드나들었다고 들었는데......

 

셰이는 주변을 힐끗 돌아보았다. 근처에 사람은 고사하고 개 한 마리도 없었다. 그는 지름길을 탐내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하며, 간신히 자신의 마음 속 공포를 억누르며 말했다.

"나...... 난 빨리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어."

 

작은 건달들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빡빡이가 그의 다른 쪽 어깨 위에 팔꿈치를 얹었다.

"모처럼 형제들이 찾아왔는데 이러기야? 집에 일찍 돌아간다니——장난 그만해. 누가 널 데려가준대?"

그는 실눈을 뜬 채 담배를 빨아들이고 스스로를 멋있다고 생각하며 내뿜고는 손가락 두개를 뻗어 문질러댔다.

"그럼 나중에 갚을 테니까, 형아한테 돈 좀 빌려주는 게 어때?"

 

"나 돈 없어......"

 

"괜찮아, 방금 저 늙은이가 너한테 주는 거 봤어. 내가 독식하기엔 부족하다 그랬지?"

노란 머리가 그의 바지 주머니를 툭툭 두드리며 그의 귓가로 향했다.

"좋은 말할 때 순순히 꺼내. 나중에 형제들이 널 덮치기 전에."

 

셰이는 어디서 난 힘인지 갑자기 노란 머리를 홱 밀어젖히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바지 주머니에 든 손가락으로 두 장의 지폐를 꽉 쥐고 눈을 크게 떠서 부라렸다.

"난 돈 없어!"

 

노란 머리의 얼굴에서 괴상한 웃음이 사라지고, 빡빡이의 눈빛도 험악해졌다. 몇 사람이 점차 셰이를 둘러싸고는 이 '도리를 모르는' 나쁜 꼬마 아이를 혼내주기로 결정했다.

셰이는 등을 벽에 바짝 붙였다. 가슴이 매우 빨리 뛰었고 돈을 쥔 손에는 땀이 났다. 그는 두려웠지만, 그 돈은 다음 학기에 쓸 돈이기에 그를 때려죽여도 내놓을 수 없었다.

 

몸이 세차게 밀리자 셰이의 관자놀이가 펄쩍 뛰었다. 그는 죽어라 입술을 깨물었을 뿐 소리를 내지 않았다. 노란 머리는 그의 멱살을 덥석 쥐고 들어올렸다. 셰이는 발버둥치며 어쩔 수 없이 턱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노란 머리의 입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질 담배의 고약한 냄새가 그의 얼굴을 뒤덮는 것을 느꼈다.

 

노란 머리의  눈초리가 일그러졌다. 사춘기의 울퉁불퉁한 얼굴에는 기름기가 흘렀고, 짙은 갈색의 눈빛은 비열하고 말할 수 없는 악의를 띠고 있었다. 셰이는 갑자기 그 겨울의 저녁이 떠올랐다. 의자를 정면으로 내려치는 남자의 거친 숨결과 고약한 냄새에 순식간에 몸 속의 피가 한꺼번에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오르는 듯했다.

 

그는 무릎을 들어올려 노란 머리의 복부를 호되게 들이받았다. 노란 머리는 미처 방어하지 못해 얼굴을 구기고 허리를 굽히며 뒤로 물러났다. 셰이는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한 대 쳤다. 그는 자신의 힘이 그렇게 센 줄 몰랐다. 노란 머리의 얼굴이 한쪽으로 쏠리며 셰이의 손가락 마디가 광대뼈에 부딪혀 멍이 들었지만 그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때로 분노는 가장 좋은 촉매제이자 진통제였다.

 

주위의 작은 건달들은 이 문약해보이는 순둥이에게 이런 수법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노란 머리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자, 차마 듣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빡빡이가 셰이를 가리키며 땅에 호되게 침을 뱉고는 ‘그를 때려’라고 소리쳤다. 몇 명의 건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이어서 무거운 주먹이 사방에서 셰이의 몸으로 떨어졌다. 그는 가능한 한 자신을 뒤로 움츠렸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 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에 넣은 채 그에게 가장 중요한 두 장의 지폐를 움켜쥐고 최대한 그들의 무수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신체의 같은 곳에 몰려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 공격들은 피할 수 없었다. 셰이는 천천히 주저앉았다. 등을 걷어차여 하얀 옷에 신발 자국이 남았다. 상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발을 들어 또 같은 곳을 걷어찼고...... 폭력적인 현실과 기억이 뒤섞여 머리끝까지 물에 잠긴 기분이었다.

 

돌연, 그의 몸에 떨어지던 주먹과 발이 사라졌다. 셰이는 숨을 가쁘게 내쉬다 한참만에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뒷모습 하나가 그의 앞을 가린 채 그가 당하던 아픔을 견디며, 한 편으로는 견디기 힘든 욕을 듣고 다른 한 편으로는 반격하고 있었다. 이때 왕수민은 마치 TV 속 스페인 투우장의 송아지 같았다.

 

셰이의 힘줄 세개짜리 머리와 작은 몸집과는 달리, 왕수민의 신체는 농구와 오락실, 선생님과의 게릴라전으로 단련되어 소년의 팔뚝에 언제부터 예쁘고 탄탄한 근육 라인이 생기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이마에 앞머리를 드리운 왕수민은 손으로 머리 부근을 감싸며 반쯤 드러난 눈으로 주변의 건달들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의 눈은 약간 붉어져서 자연스럽게 포악함이 떠올랐다. 이를 '으득' 깨물면서 그의 한쪽 팔꿈치에 맞고 땅에 주저앉아 있던 빡빡이는 마치 아파서 죽겠다는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폐물 자식, 젠장, 폐물 자식!"

 

노란 머리는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느릿느릿 작은 칼 하나를 꺼내어 칼날을 튕기며 왕수민의 눈 앞에서 흔들었다.

"넌 뭐하는 파뿌리야? 죽고 싶어 환장했지?"

 

왕수민은 팔을 번쩍 내밀어 갈색 아래팔을 노란 머리 앞까지 뻗었다.

"찔러, 찔러 봐, 이대로 찔러!"

 

칼을 쥐는것과 사람을 찌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누군가가 말하길 난폭한 놈은 무모한 놈을 두려워하고, 무모한 놈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놈을 두려워 한다고 했다. 노란 머리는 왕수민이라는 이 전설 속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캐릭터를 만나본적이 없었다. 멍하게 서서 작은 칼을 들고 찌르지도 못하고 안 찌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왕수민이 갑자기 달려들어 칼날을 잡았다. 작은 칼은 특별히 예리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가 이렇게 부주의하게 잡는 바람에 곧바로 피가 손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왕수민은 약간 일그러진 표정으로 노란 머리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 이는 마침 셰이의 펜과 맞아떨어졌다. 잔인한 척하던 열 살 남짓한 작은 건달들은 피를 본 노란 머리가 무의식 중에 손을 놓은데다가 얻어맞기까지 하니, 왕수민은 손쉽게 작은 칼을 빼앗았다.

 

왕수민은 손바닥의 피가 손목과 단단한 팔뚝을 따라 흘러내려 땅에 뚝뚝 떨어지는 채로 하찮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겨우 이정도 담력으로 가로막은 거야? 꺼져! 집에 가서 우유나 마셔!"

 

피에 물든 소년은 작은 건달들의 심리적 감당 능력을 훨씬 초월하여, 노란 머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빡빡이를 쳐다봤는데, 마침 빡빡이도 어쩔줄 몰라하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란 머리는 이를 깨물며 손을 흔들었다.

"가자!"

그리고 이를 악물고 원한 가득한 시선으로 왕수민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너 두고 봐!"

 

이 말이 나오면 보통 거리 싸움은 끝난 셈이다. 진 쪽은 도주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후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80년대 영화 속 이단아들의 말투를 흉내내며 이와 같이 말하곤 했다. 작은 건달들은 우르르 흩어졌다.

 

왕수민은 작은 칼을 땅에 던지고 숨을 고르더니 비로소 이를 악물고 이목구비를 찡그렸다.

"씁...... 그 세 마리, 귀여워 죽겠네."

그는 고개를 돌려 반쯤 주저앉아 얼이 빠져 있는 셰이를 보더니 익살맞게 웃었다.

"너 괜찮아?"

 

황혼이 이미 황량한 들판을 끝까지 에워싸고 있었다. 가로등의 흐리멍텅한 노란 빛이 마침 이미 날카로운 모서리가 드러난 왕수민의 얼굴을 뒤덮었다. 눈썹엔 땀이 걸려 있었지만, 눈은 아주 밝았다. 셰이는 3년만에 이 소년을 똑바로 보는 것 같았다. 처음 알았는데...... 원래 어릴 때부터 꼴보기 싫었던 이 미운 녀석이, 이렇게 오랫동안 원한을 품었던 나쁜 녀석이 의외로 그럴 듯하게 자란 것 같았다.

 

그가 대답이 없자, 왕수민은 약간 당황하여 피가 흐르는 손을 들고 쪼그리고 앉았다.

"내 말은, 정말 괜찮은 거지? 근골을 다치면 안돼, 씁, 이 꼬맹아."

 

셰이는 재빨리 일어나 그의 다친 손바닥을 끌어당겨 붙잡고, 입을 크게 벌리고 날뛰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떡해?"

 

왕수민은 그의 갑작스런 관심에 어리둥절하여 거의 총애에 황송해하듯 곧바로 말을 더듬었다.

"음...... 난 그그그, 괘괘괘괜파......"

퉤, '괜찮아, 안 아파'를 '괜파'로 줄여버렸다. 셰이의 그 투명해서 속이 비쳐보일 것만 같은 두 눈을 마주하니 왕수민도 참지못하고 수줍게 웃어버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네."

 

셰이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왕수민은 기침을 한 번 했다. 어찌된 일인지 셰이의 미소를 보니 자신이 영웅이 된 듯한 기분이 들더니, 곧 별도 괜찮고 달도 괜찮고 상처도 그렇게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더할나위 없이 호기롭게 손을 뿌리쳤다.

"뭐 별거라고, 칼은 쇳조각으로 만든 거고, 우리 □□원의 의지는 때려도 깨지지 않는 3중 스테인리스인 걸!"

뿌리치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는 정말 아파서 계속 이를 물어야 했다. 왕수민은 얼굴을 찌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허세를 부렸지만 목소리는 참지 못하고 더 낮아졌다.

"하...... 엄마는 무서운데......"

 

"괜찮아. 내가 어머니께 말씀 드릴게."

셰이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숙인 채 몇 걸음 걷더니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마워."

 

왕수민은 다치지 않은 손으로 셰이의 어깨를 감싸고 두어번 두드렸다.

"가족 사이에 뭘 고마워 해?"

 

어떤 이는 사내아이의 우정은 곧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떨 때는 소위 '만나서 웃으며 은원을 지운다'는 느낌이 바로 사람의 가슴속에 가로막힌 돌덩이가 홀연히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 이후 3년 동안 냉전을 겪었던 셰이와 왕수민은 진정한 '절친'이 됐다.

 

중학교 3년 동안 사람들은 셰이가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왕수민이 있다고들 했다. 전자는 늘 좋은 의미이고 후자는 좀 처참했지만......

 

하지만 셰이와의 관계는 왕수민에게 있어 정말 잘 배울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오락실에 가는 횟수가 적어졌고 가끔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앉아 셰이를 모셔 숙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원래 총명했던 그는 공부를 조금 했더니 뜻밖에도 성적이 반에서 밀리지 않았고, 중위권까지도 오를 수 있었다. 즐거운 자구이팡은 셰이를 자기 집 작은 개자식의 귀인으로 여겼다.

 

셰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얌전했고, 수업시간에는 성실했으며 숙제는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옷깃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아름다웠고 깔끔하며 선생님을 존경했다.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면 열한 시까지 숙제를했고, 1년 내내 반에서 5등 안에 들었다. 완전무결한 모범 학생은 다른 사람이 결점을 찾아낼 수 없게 했다.

 

자구이팡은 사람들을 만나면 말했다. 셰이가 그들 집의 둘째 아들인데 공부를 잘하고 말을 잘 듣고...... 뭐? 첫째 아들 왕수민? 오, 그건 말이지, 그냥 넘어가.

 

 

 

 

 

작가의 말 :

우...... 너무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