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인생 제3장 - 청경채

2020. 10. 11. 01:39시식코너/《일수인생一树人生》Priest,2009

제3장 청경채

 

어릴 적 일은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은 인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평범한 바쁜 사람들은 일찌감치 그 당시 칠판에 글을 쓰던 예쁜 선생님도, 초등학교 수업 시간이 오후 1교시였는지 2교시였는지도, 1학년인가 3학년인가부터 했던 자연 수업도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과 의자에 묻은 풀, 비웃음 속에서 유난히 무거웠던 단어, 어느 겨울 연못의 차가운 물과 씻을 수 없는 진흙은 영원히 잊지 못했다.

 

온 세상이 다 자신을 버린 것 같은 무력감을 잊을 수 없었다.

 

그 겨울은 매우 춥고 뼛속까지 추웠다. 셰이가 다 자란 후 따뜻한 강남에 와서도 그때의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추위는 잊을 수 없었다. 서북풍은 언제나 창문을 두드리며 유리창을 깨뜨릴 듯했고, 하늘은 항상 뿌옇고 영원히 개지 않을 듯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병이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큰 변화를 겪은 아이는 항상 어딘가 잘못돼 있었다.

셰이가 퇴원한 이후 자구이팡은 어머니가 없고 아픈 이 아이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서 지켜보았다. 자신의 아들 왕수민은 셰이를 대할 때 목소리도 작아졌고, 거칠고 두꺼운 낯가죽에는 보기 드물게 쩔쩔매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부부는 결국 세심하지 못했던지라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뜬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말수는 전보다 훨씩 적어졌고 작은 얼굴은 하얗고 투명하여 한참동안 혈색이 돌지 않았다.

 

왕수민을 불안하게 한 것은 셰이가 그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왕수민은 셰이가 무엇이든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후한 얼굴로 용돈을 아껴 산 싸구려 알사탕을 셰이의 손에 쥐여주고, 뻔뻔스럽게도 숙제를 하고 있는 걸 끌고 가 축구를 해도 셰이는 더 이상 그와 어떤 소통도 하지않고, 눈빛도 주지 않았으며, 말도 하지 않았다.

 

왕수민은 셰이의 세계에서 이제 곧 왕수민이라는 사람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는 숨이 차도록 말할 수 있는 생물인데 셰이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듯, 국부 공기 지수에 일시적 영향 밖에 주지 못했다.

 

그는 변덕스러워졌다. 왕수민은 줄곧 자신의 값어치를 깎는다고 생각해 셰이를 상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 다 큰 처녀 같은 여성스런 말투에서 멀어지기를 원했었다. 하지만 셰이가 실제로 그와 멀어지자 그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빠져나간 듯 허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천박한 잠재성을 갖고 있는데, 왕수민과 같은 비교적 진기한 종은 이미 천부적인 자질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전에는 셰이가 조심스럽게 그를 대할 때, 그는 곧잘 상대하지 않거나 일이 없냐며 딴죽을 걸었다. 이제 남이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자 그는 도리어 신경쓰기 시작했다.

 

3학년 후반 학기 개학 첫날, 왕수민은 일찌감치 아침밥을 물고 셰이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셰이가 문을 열자 입구에는 자면서 머리카락이 웃기게 뻗친 남자아이가 체를 치듯 벌벌 떠는 것이 보였다. 2월의 복도는 여전히 매우 추웠는데, 창문에서 찬바람이 씽씽 불어들어와 왕수민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셰이의 팔을 끌어당겼다.

"늦었어. 빨리 가자."

 

하지만 그는 허공을 붙잡았다. 셰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몸을 기울여 그의 손을 피했다. 왕수민은 얼굴의 웃음이 굳어지더니 부자연스럽게 손을 돌려 자신의 봉두난발을 다독이면서 셰이의 뒤를 따라가며 중얼중얼 할 말을 찾았다.

"듣기로 선도부가 여전히 지난 학기 그 패거리라고 하던데 너 스카프 가져 왔어?"

 

무시당했다.

 

"어...... 너 숙제 다 했어? 나는 <겨울방학생활>이 아직 두 편 남았는데 좀 보여줄래?"

 

계속 무시당했다.

 

왕수민은 언제 이 소패왕이 이런 수모를 참았냐며 분노하여 이를 갈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나가 셰이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보다 머리 반 정도 더 큰 것을 믿고 기어코 셰이의 어깨를 잡아당겼고 셰이는 비틀거리며 끌려갔다. 셰이가 눈을 들었지만 오히려 왕수민을 보지 않고 시선은 한 점의 무게도 없는 것처럼 가볍게 그의 얼굴을 지나갔다. 여전히 흑백이 뚜렷하고 아름다운 한 쌍의 눈이었지만, 그를 스쳐가자 왕수민은 몹시 추워졌다.

 

소패왕의 손은 저도 모르게 느슨해져서 어찌할 수 없었다.

 

셰이는 고개를 돌리고 가방을 등에 올리곤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매섭도록 싸늘한 분위기가 여전히 흩어지지 않은 작은 뒷모습이 북풍 속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왕수민은 그의 가방 귀퉁이에 씻기지 않는 까만 자국을 발견하고 갑자기 괴로워졌다. 그는 묵묵히 입을 오므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셰이를 따라가며 발밑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길가에서 아침을 파는 아주머니가 일찍부터 노점을 내고 떠들썩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왕수민의 하수도처럼 넓은 마음은 갑자기 막혀버렸다.

 

셰이가 교실 문을 열자 반찬 시장처럼 떠들썩하던 소리가 잠시 조용해졌다. 8~9살 짜리 아이들에게 죽은 사람은 여전히 아주 멀고 낯설었다. 심지어 그들에게 부적절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여러 쌍의 눈동자가 교실에 들어오는 셰이를 주시하며 낮은 소리로 수근대기 시작했다.

 

그 눈초리는 셰이로 하여금 매우 차갑고 약간은 무섭게 만들었다. 그는 입구에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숙여 목에 감긴 두툼한 목도리에 파묻었다. 그들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연민? 신기함? 아니면 다른 무언가? 그는 약간 긴 소매 속에서 슬며시 손을 꽉 쥐었다. 그 순간 셰이는 온갖 냄새가 뒤섞인 교실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발걸음을 옮길 힘이 없었다.

 

갑자기 셰이의 몸이 다른 사람에게 세게 부딪쳐 한쪽으로 몰렸다. 뚱뚱한 취샤오하오와 한 무리의 소년들이 떠들어대면서 일부러 그에게 부딪치며 교실로 뛰어들었다. 셰이의 어깨는 문에 강하게 부딪쳐 마비될 지경이었다.

 

취샤오하오가 고개를 돌려, 비곗살에 밀려 가느다란 틈만 남은 작은 눈으로 셰이를 향해 호의 없이 웃으며 괴상야릇하게 말했다.

"셰 마마께 문안 인사 드리옵니다."

 

셰이의 이마에 앞머리가 늘어져 다른 사람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 힘줄이 마치 터질 듯이 계속 뛰는 것을 느꼈다. 취샤오하오가 목청을 가다듬고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들렸다.

"청경채——노란잎아——두세살에——엄마잃어...... 우악!"

 

왕수민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취샤오하오의 노래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왕수민이 달려들어 두 눈을 부릅뜨고 호랑이처럼 노려보았다. 가방을 취샤오하오의 머리에 던지고 그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옆에 있는 여자 아이의 책상 위에 있던 책이 살찐 남자 아이의 팔에 쓸려 온통 바닥에 떨어졌다. 왕수민은 취샤오하오의 몸에 올라타 그의 살찐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너 뭐라고 했어, 다시 한 번 말해봐!"

 

취샤오하오는 입을 벌리고 힘껏 발버둥쳤지만 애석하게도 뚱뚱한 몸이 감당이 안 돼 싸우지 못하고 왕수민의 주먹에 두어 번 맞자 귀신처럼 울부짖었다. 머리를 두 가닥으로 땋은 반장이 기세등등하게 일어났다.

"뭐해?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애석하게도 소녀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는 취샤오하오의 돼지잡는 듯한 울부짖음에 묻혀버렸다. 망할 놈들은 이미 책상에 뛰어올라 고함치면서 흥분한 얼굴로 징을 두드려대며 천하를 어지럽혔다.

"때려라, 때려라! 힘 좀 써!"

 

이번에는 반찬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미친 개 시장도 3학년 2반보다는 시끄럽지 않을 터였다.

 

이 동정은 빠르게 순시하던 학년 주임을 불러들였다. 안경을 낀 중년 뚱보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얼굴색이 흉한 것이 티비에 나오는 험상궂은 상조 문화재 같았고, 벗겨진 이마에는 핏줄 하나가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하며 왕수민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말도 안 돼, 너희 반 선생님은?!"

 

손을 뻗어 왕수민을 끌어내리려 하자 왕수민은 붉은 눈으로 피아 구분 없이 학년 주임의 손을 향해 '어흥'하고 입을 벌렸다. 학년 주임은 '지중해'같은 방대한 몸집에도 동작이 매우 신속하여 무림고수처럼 재빠르게 손을 움츠려 그가 물지 못하게 했다.

 

학년 주임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미쳤어미쳤어, 네가 감히 사람을 물어?"

커다란 손이 왕수민의 뒷덜미를 잡아 막무가내로 발톱을 휘두르는 작은 개자식을 취샤오하오의 몸으로부터 들어 올렸다.

 

문간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온 담임 선생님은 한겨울에 가엾게도 이마에 땀이 얇게 배어 있었다.

"뭐야뭐야? 왕수민? 취샤오하오? 왜 또 너희 둘이야?!"

 

학년 주임이 입을 여니 그가 훈계하는 말은 마치 동쪽으로 흐르는 춘수와도 같았다. 리 선생님은 곁에서 들으며 맞장구치더니 마침내 두 마리 토끼새끼들을 사무실로 데려갔다. 떠나기 전 리 선생님은 고개를 들고 안경을 부축하며 위엄있는 눈으로 군중들을 둘러보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뭘 보고 있어? 자습 안 해? 돌아올 때까지 본문 받아쓰기 하고 있어. 안 하면 50번 베껴쓰게 할 거야!"

 

인파는 즉시 뿔뿔이 흩어졌다.

 

셰이는 밀치락달치락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방학 내내 비어 있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진흙탕에 담갔던 구겨진 새 책을 꺼냈다. 작은 손으로 문질러 펴보았지만 한 글자도 볼 수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손에 연필을 들고 본문 옆 빈 속 표지에 낙서를 하다가 두 개의 글자 앞에서 멈췄다.

'죽''어'.

 

왜 너희들은 모두 죽지 않는 거야?

 

이 문장은 그의 가슴 속에서 맴돌며 모든 생각을 밀어냈다. 그가 연필을 꽉 쥐고 있던 작은 손의 마디는 파래졌고, 팽팽하게 다물린 입술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휘갈긴 연필 끝이 책장을 긁어 상처를 냈다. 같은 책상에 앉은 여자 아이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본문을 외우느라 짝이 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왜 너희들은 모두 죽지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