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거리 3화 [4.8km??]

2021. 4. 26. 13:48시식코너/《너의 거리你的距离》公子优, 2019

4.8km??

 

여러 해 동안 같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교 능력이이 퇴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팅솽은 이 Cycle 선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주원쟈는 옆에서 그를 재촉했다. "빨리 그에게 메시지 보내봐."

팅솽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한마디 보냈다 : 안녕하세요.

주원쟈 : "......"

"형 작업 능력도 너무 떨어졌네." 주원쟈는 휴대전화를 빼앗아 Cycle의 메인 페이지를 눌렀다. "상대방의 기본 정보부터 시작해서, 상태 메시지 안에서 채팅할 포인트를 찾아야...... 아니, 메인 페이지에 왜 아무 것도 없어?"

팅솽이 말했다. "인터넷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나보지."

주원쟈는 Cycle과의 채팅창으로 되돌아갔다가 깜짝 놀랐다. 상대방도 무미건조하게 회신해온 것이다 : 안녕하세요.

"...... 두 사람 역시 Perfect Match네." 주원쟈는 휴대전화를 팅솽에게 던져주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두 분 얘기 나누세요."

팅솽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글자를 쓰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우고 또 쓰다가  10분 동안 한 글자도 더 보내지 못했다. 그는 휴대전화 상단의 시간을 보고는 내일 아침 일찍 또 수업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라 한마디를 보냈다 : 죄송해요, 저 자야겠어요. 내일 수업이 있거든요.

몇 분 후, Cycle이 말했다 : 응.

팅솽은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주원쟈의 밤 생활은 이제 시작이었다. 주원쟈는 팅솽의 옷장을 뒤져 분홍색 셔츠를 꺼내 걸치고, 안에는 티셔츠와 무릎까지도 안 오는 반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팅솽을 찾아 자전거 열쇠를 받은 뒤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 중심가의 클럽을 찾아갔다.

주원쟈가 막 문을 나서자 초인종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팅솽은 주원쟈가 물건을 놓고 간 줄 알고 건물 현관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자신의 집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가면서 밖을 향해 소리쳤다. "주원쟈, 너 직접 열쇠 들고 나가면 안 돼? 문 옆 그릇에 하나 더 있으니까 나갈 때 가져가서 돌아올 땐 직접 열어, 초인종 눌러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리고 갈 때 문 잘 닫고 가. 들었어?"

"...... 팅솽." 익숙한 목소리가 문 밖에서 울렸다.

팅솽은 침실 문을 닫다가 주춤하더니 걸어나와 입구에 서 있는 량정쉬안을 보았다.

팅솽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잊은 물건이라도 있어?"

"너 어떻게 지냈어?"

"무난해."

"밥은 잘 먹고 있어?"

"응."

"다시 담배 피워?"

"응."

"피우지 마."

"봐서."

량정쉬안이 들어오려 하자 팅솽이 말했다. "뭘 안 가져갔는데? 내가 갖다 줄게."

량정쉬안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 내일 수업 있어서 정말 자야 해." 팅솽은 말하면서 문을 닫았다.

량정쉬안은 손으로 문을 막고 팅솽을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 "헤어지지 않으면 안 돼? 이렇게 몇 년이나 됐는데...... 난 정말 받아들이지 못하겠어."

오래된 연인에게 있어 스킨십은 정말 무섭다. 익숙한 피부, 익숙한 온도, 익숙한 냄새, 모든 것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너와 나는 그 당시와 같아.

이 순간, 팅솽은 거의 착각에 빠졌다. 량정쉬안은 단지 여행을 떠났을 뿐이고, 어쩌면 지금 다시 귀국했을 뿐이라고. 그의 몸은 량정쉬안의 잘못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머릿속은 이별 명령을 받아들이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은 단지 량정쉬안이 가장 친밀하고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심지어 미친 듯이 말하고 싶어했다 : 나는 이 사람이 그리워. 나는 이 포옹이 그리워.

"량정쉬안." 팅솽은 애써 벗어났다. "이러지 마. 이 일도 더는 꼴사나우니까 조용히 끝내자."

"꼴사나운 게 무서워? 난 무섭지 않아. 네 앞에서  내가 무슨 꼴사나운 태도를 보였어? 내가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까?"

"내 성격이 안 좋은 거 알아. 그냥 그런 걸로 하자. 이 일은 정말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량정쉬안이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팅솽은 선수쳐서 말했다. "난 이미 다음 단계를 시작할 준비가 됐어."

량정쉬안은 믿지 않았다. 그는 잠시 동안 팅솽을 쳐다보더니 또 방을 한 바퀴 훑어보고 말했다. "나는 지금 너의 집에 묵는 사람이 네 동생인 거 알고 있어. 날 속이려 하지 마."

"그를 말한 게 아니야."

"그럼 누군데?"

팅솽도 누구인지 모른다. 그는 지금 서둘러 량정쉬안을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량정쉬안은 팅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팅솽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가 시간을 내서 팅솽 곁에만 있으면 지금의 균열을 고칠 수 있다고도 믿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밤 반드시 남아야 했다.

그는 확실히 팅솽을 알긴 했지만, 아직 철저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팅솽의 기질은 정말 나빴다. 그는 작은 일이라도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치를 따져도 용서하지 않았고, 량정쉬안이 비굴하게 굴어도 원칙이 더 중요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사과도 필요없었다. 그는 단지 상대방이 떠나기를 원했다.

그는 량정쉬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가 뭔가를 하지 않는다면 량정쉬안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휴대전화를 들고 량정쉬안의 면전에서 Cycle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 "자기야亲爱的, 잘 자."

량정쉬안은 별 수 없이 말했다. "팅솽 너 누구한테 연기하는 거야?"

팅솽은 휴대전화를 주시하며 빌었다 : 형님, 빨리 회신해주세요. 량정쉬안이 가면 제가 바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연기하는 게 아니야, 나는 확실히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됐어." 팅솽이 말했다.

량정쉬안이 말했다. "만난지 며칠 안 된 사람 아니야? 난 개의치 않아. 우리 다시 시작해."

팅솽은 아무 말 없이, 손으로 Cycle에게 보낼 메시지를 입력했다 : 주무세요? 부탁인데 저에게 음성 메시지 하나만 보내주세요. 도와주세요. 제 전 남자친구가 우리 집에 눌러앉아 떠나질 않고 있어요.

Cycle이 드디어 답장을 보냈다 : 경찰 불러요.

팅솽은 재빨리 답했다 : 경찰에 신고하면 이웃에 시끄럽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요. 저 내일 수업도 있어요. 전공과목이 어려워서 꼭 가야해요.

잠시 후, Cycle이 답했다 : 뭐라고 말하죠?

팅솽은 마음이 놓여서 계속 타자를 쳤다 : 자기도 잘 자. 조금 오글거리게요. 아니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Cycle이 한참 동안 음성을 보내지 않자, 량정쉬안이 소리쳤다. "팅솽."

팅솽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나 얘기하고 있잖아."

"얘기해. 기다릴게."

몇 분 후, Cycle에게 음성메시지가 왔다.

아마도 Cycle이 말할 때 휴대전화 마이크에 너무 가까웠는지, 방 안도 조용해서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하게 들렸다. 두 글자는 마치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긁는 것 같다.

"잘 자."

량정쉬안의 안색이 나빠졌다.

팅솽은 못 본 척하며 Cycle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참, 어제 저녁에 넥타이를 우리 집에 두고 갔던걸요."

얼마 후, Cycle이 음성메시지를 보냈지만, 팅솽은 감히 누르지 못했다. 그는 Cycle이 그의 거짓말을 폭로하여 일을 망칠까 봐 걱정되었다.

량정쉬안은 팅솽을 주시하며 말했다. "넥타이는 어디에 있어?"

"더러워져서 오늘 드라이클리닝을 맡겼어."

량정쉬안의 얼굴색은 점점 안 좋아졌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말했다. "난 안 믿어."

팅솽은 Cycle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방금 음성 뭐라고 한 거예요? 날 폭로한 건 아니죠?

Cycle : 열어봐요.

팅솽은 왠지 이 네 글자가 믿을 만하다는 생각에 그 음성 메시지를 열었다. Cycle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있다 가지러 갈게."

팅솽은 량정쉬안에게 말했다. "봐, 거짓말 안 했다니까."

량정쉬안은 팅솽을 한참 쳐다보더니 비로소 말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넌 진짜 아깝지도 않은가보구나."

팅솽은 한동안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넌 진짜 아깝지도 않은가보구나? 그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도대체 누가 먼저 팽개쳤는데?

"문 닫는다."  팅솽은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네 물건이 보이면 내가 보내줄게. 번거롭게 여기로 뛰어오지 마."

 

량정쉬안이 떠나고 나서야 팅솽은 침대에 누워, 오랫동안 쌓인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Cycle에게 전 남자 친구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고, 오늘 밤 고마웠다고 했다.

Cycle은 다시 답이 없었다.

밤새 팅솽은 자다 깨다 하며 아무리 해도 잠이 들 수 없었는데, 아침 6시가 넘었을 때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주원쟈가 또 초인종을 마구 눌러 잠에서 깼다.

팅솽은 주원쟈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욕을 했다.

주원쟈는 종이봉투를 탁자 위에 던져놓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아침 사왔어. 진작 알았으면 안 사올걸 그랬어. 심보가 고약하다니까狼心狗肺."

"내 심보가 고약해? 너 빨리 물건 챙겨서 나가. 개집 늑대굴에서 자지 말고." 팅솽은 잠이 오질 않아 일어나서 씻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 씻을 때까지 주원쟈는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욕실을 나가보니 주원쟈는 소파에 엎드려 한쪽 다리를 소파 등받이에 걸친 채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팅솽은 자신의 이불을 주원쟈에게 던져준 뒤 노트북을 들고 식탁에 가서 주원쟈가 사온 아침 식사를 하면서 메일을 확인했다.

학교에서 보낸 단체 메일을 제외하면, 메일함에 읽지 않은 메일은 단 하나, 보낸 사람 BAI, Changyi 뿐이다.

팅솽은 이 이름을 보고 조마조마하며 메일을 열었다.

망했다.

첫 줄부터 망했다.

죽음의 과목의 변태 교수는 그에게 죽음의 과목을 재수강하라고 했다. 심지어 다음 학기 재수강이 아니라 내년 재수강이다. 이 수업은 여름학기에만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내년에, 재수강.

첫  번째 수업에 빠졌다는 이유로.

팅솽은 입맛이 떨어진채 다시 아침을 먹었다. 그는 메시지를 보내 몇 명의 학교친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물었다. 학생들의 의견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독일 교수의 자주권은 매우 커서, 이 일은 학교에서 관여할 수도 없기에 교수님께 부탁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팅솽은 교수를 욕하면서 메일을 보내 교수님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친구의 필기를 통해 첫 시간 수업 내용을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장담했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교수님의 Sprechstunde①를 꼭 예약하여 가르침을 청하겠다고 썼다.

 

이어진 하루 동안 그는 쉬는 시간에 일이 없으면 이메일을 확인했다. 하루가 지나고 담배 한 갑을 다 피웠지만 Prof.Bai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하루 수업을 듣느라 이미 정신적으로 매우 지쳐 있었는데, 그는 집에 돌아와 주원쟈가 밖에서 소리를 켜고 게임을 하며 그보다 더 크게 떠들어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원쟈, 이어폰 좀 끼면 안 돼?" 팅솽이 말했다.

주원쟈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손은 자판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어폰 배터리가 없어."

"배터리가 없는데 충전 안 해?" 팅솽은 말을 하고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소음을 막았다.

마음이 어수선하다.

팅솽은 휴대전화를 하다가 어째선지 Distance를 켰다. 채팅창에는 한 명 밖에 없다. Cycle.

그는 Cycle의 메인 페이지에 들어가봤지만, 여전히 공백으로, 어떤 상태도 게시하지 않았다. 채팅창으로 돌아가 얼마 안 되는 채팅 기록을 뒤적여본 그는 또 그 네 개의 음성을 눌러서 들었다.

Frost : "자기야, 잘 자."

Cycle : "잘 자."

Frost : "참, 어제 저녁에 넥타이를 우리 집에 두고 갔던걸요."

Cycle : "며칠 뒤에 가지러 갈게."

Cycle의 목소리는 참 듣기 좋다. 팅솽은 다시 Cycle의 "며칠 뒤에 가지러 갈게"라는 말을 몇 번이고 들으며 상대방의 얼굴을 상상했다. 상상할 수 없었다. Cycle의 목소리는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그 목소리는 영원히 추태부리지 않는 사람에게 속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젯밤에 자신과 연기를 해줬다는 생각에 팅솽은 웃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갑자기 Cycle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팅솽은 한번 생각해보고 타자를 쳤다 : 퇴근했어요?

Cycle은 답이 없다.

팅솽은 계속해서 타자를 쳤다 : 난 오늘 하루종일 수업이었어요. 저녁에 얘기 나눌 시간 있어요?

그가 메시지를 보내고 한참 기다렸지만, Cycle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한쪽에 두고 나가서 주원쟈를 불러 저녁을 먹었다.

밤 10시가 넘어 다시 휴대전화를 보니 Cycle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Cycle:하루종일 회의가 있어서,

Cycle : 이제 막 집에 도착했어요.

메시지를 확인한 팅솽은 바로 답을 보내려다가, Cycle의 이름 아래 현재 거리가 287㎞에서 4.8km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4.8km?

팅솽은 먼저 휴대전화 화면을 닦고, 또 눈을 비볐다.

화면에 표시된 현재 거리는 여전히 4.8km이다.

어떻게 된 거야?

프로그램에 bug가 생겼나?

팅솽은 Cycle에게 물었다 : 우리 사이의 거리가 왜 4.8km가 됐죠?

잠시 후, Cycle이 대답했다 : 요 며칠 타지에서 회의를 했어요.

팅솽 : ?

타지에서 회의???

그래서 287km 떨어진 Cycle 선생이 차로 10분이면 오는 Cycle 선생이 됐다고?

Frost : 그럼 진짜 넥타이 가지러 우리 집에 올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 문장이 발송되자마자 팅솽은 후회했지만 보낸 메시지는 철회할 수 없었다. 그는 채팅창 속 Cycle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약간 긴장했다.

10분 후, 마침내 화면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Cycle : 만약 내가 당신 집에 넥타이를 두고 온 게 확실하다면.

 

 

작가의 말 :

①Sprechstunde, 교수가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개방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