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문 18장 갈라지다 (分岔)

2020. 7. 28. 21:29완결/《과문过门》Priest,2015

갈라지다 (分岔)

 

 

 

 

 

 

쉬진 여사의 서재는 엄숙할 정도로 깨끗했다. 때때로 말끝마다 기차가 달리는 듯한 그녀의 성격과는 조금 달랐다. 각종 서류와 종이 재료 등은 종류별로 나뉘어 정리되어 있고, 책장에는 책과 각종 법학 고서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어 강박증 같은 느낌도 들었다.

 

쉬진은 책상 뒤에 앉았다. 더우쉰과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있어 마치 고객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

 

"앉아," 쉬진은 낮은 도수의 안경을 쓰고, 얇은 렌즈를 통해 소년을 훑어보았다. 그녀는 주샤오청과 더우쥔량의 유전자가 부딪쳐 무슨 사고가 났기에 뜻밖에도 이런 아이가 태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너희 선생님과 네 어머니에게 얘기 들었어."

 

더우쉰은 그녀가 또 익숙한 맛의 매질을 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숙여 '내 생각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자세를 취하고 죽은 척했다.

 

쉬진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할 줄은 몰랐다.

"입시를 미루는 일은 전반적으로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하진 않아. 대충 알아보니 가산점이 무효가 되는 건 확실히 좀 아쉽지만, 대학 입시에서 10점만 더 나오면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그런 생각으로 살겠지."

 

더우쉰은 이런 정통적 사상을 벗어난 평론을 듣고 그녀를 한 번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먼저 듣기 좋은 이야기부터 하는 것도 선생님과 학부모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나도 너희 장 선생님에게 들었는데, 네가 대학 입시를 포기하는 것에 정당한 이유가 없고 순전히 제멋대로라고 하시더라."

쉬진은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네 나름의 논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나이 대 사람이 특히 생각이 더 많기도 하고. 단지 네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 그렇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싫다면, 나에게도 말하기 싫겠지.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쉬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너 스스로 지원한 시험이고, 지금도 네가 포기하기로 결정했어. 더우쉰 학생,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건 좋은 일이야. 그만큼 일찍 성숙했다는 뜻이니까. 남보다 출발선이 앞선거지. 하지만, 난 어른으로서 너에게 한 가지 일깨워줄 게 있어. 네 맘대로 할 거면 네가 책임을 져야 해. 너희 선생님께서는 왜 너를 제멋대로라고 생각하고, 화를 내며 사방으로 전화해서 고자질을 했을까? 그녀는 네가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쉬진 여사와 쉬시린은 별로 닮지 않았다. 그녀는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는 매우 총명해 보이고, 쓰면 조금 엄격해 보였다. 언뜻 보면 굉장히 직업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쉬시린 같은 지나치게 활발한 아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

 

"너도 어리지 않아. 옛날 가난한 집이었다면 네 나이에 이미 가문을 책임질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너는 미숙하고, 그래서 어른들이 네가 제멋대로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거야."

 

젊은이에게 이 이야기는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았다. 더우쉰이 입을 벌리고 뭔가 반박을 하려던 차에 쉬진이 말을 이었다.  

 

"정치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지? '경제적 토대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 너는 경제적으로 독립했니? 당연히 너는 고등학생이니, 객관적인 조건은 만족할 수 없어. 그렇다면 주관적인 건? 이 방면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너희는 친구를 도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잖아.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알 거야. 스스로 생각해봐. 이렇게 호강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된 도련님들이 그 정도의 수입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날 더우쥔량의 양심이 철저히 개한테 먹혀 생활비를 안 준다면 넌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봤어?"

 

더우쉰은 할 말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독립했다 쳐, 그러면 정신적인 독립 문제가 남아있어." 쉬진이 말했다.

"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어떤 길을 가고 싶어? 이런 거 다 생각해 봤어? 생각 안 해봤어도 괜찮아. 아직 어리니까. 아무도 너에게 뭐라할 사람 없어. 선생님과 부모는 여전히 너를 돌볼 책임이 있고, 우리는 자신의 인지와 능력 범위에서 네가 미래를 계획하는데 도움을 줄거야. 이 과정이 순조로울 수 있도록 네가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어. 자꾸 우리 같은 평범한 어른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도전하지 마. 너도 이해하겠지?"

 

더우쉰은 잠시 망설이다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이 일주일 남은 지금, 너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면 명확한 시험 포기 이유가 될 수 있고, 이 일로 인한 결과도 감당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이제부터 네 맘대로 해도 돼. 하지만 만약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할 뿐이라면 그건 안돼. 이 규칙은 아주 단순해. 어른 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싶으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응석부리고 제멋대로 굴면 안돼.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

 

더우쉰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다 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쉬진의 한 차례 말에 마음이 복잡해져 분노와 부끄러움이 교차했다. 더우쉰은 태산 같은 걱정을 안고 일어나서 나가려다, 문 앞에서 태후에게 허브차를 바치려던 쉬시린을 마주쳤다.

 

쉬시린은 작은 소리로 더우쉰에게 물었다.

"뭐야? 혼났어?"

그는 방금 몰래 쉬진의 차를 한 모금 마셔서 입술에 물기가 한 층 묻어 있었다. 더우쉰이 힐끗 보더니 별안간 깜짝 놀란듯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후 더우쉰은 쉬시린을 지나쳐 냉장고로 가서 빙홍차 한 병을 꺼내 인생을 생각하러 갔다.

 

"샤오린즈, 너 들어와봐!" 쉬진이 그를 불렀다.

'샤오린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엄마, 왜요? 칠리향...... 아니 장 선생님이 원 플러스 원 삼아 내 얘기도 했어요?"

 

"네가 마음이 들떠서, 가라앉히지 못해 공부를 안 한다던데."

쉬진은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너 어젯밤엔 더우쉰을 데리고 무슨 사고를 치러 간거야?

쉬시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우물거리며 말했다.

"......친구들 모임에 놀러 갔었어요."

 

'친구들 모임에 놀러간' 이야기를 이렇게 켕기는 듯이 말하다니, 틀림없이 나쁜 일을 했을 것이다. 쉬진은 손을 뻗어 그를 눌렀다.

"조심해. 나한테 약점 잡히지 말고—— 너 정숴(郑硕)를 만났었니?"

쉬시린이 의아해했다. "정숴? 누군데요?"

 

쉬진은 그의 양심없는 모습을 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오!" 쉬시린이 드디어 반응했다.

"알았다. 엄마 전남편이죠?"

 

쉬시린은 원숭이처럼 의자 위로 훌쩍 뛰어올라 상체를 느릿느릿 책상 위에 엎드리고, 회전의자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비틀며 말했다.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왔어요. 난 옥황상제 할아버지의 털을 걸고 나라를 배반하고 적과 내통하지 않았어요. 적의 사탕발림도 먹지 않았다구요!"

 

쉬진이 몸을 뒤로 젖히고 눈살을 찌푸리며 보물 같은 아들을 바라봤다. 쉬시린이 정숴를 만났으니 그녀가 여러 해 동안 정숴가 그와 연락하는 것을 고의로 막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결과는 뜻밖에도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모두 잔머리이다. 잘난체하며 온갖 수단을 쓰는데 마음이 조금도 진지한 쪽으로 자라질 않았다. 말하자면 딱 정숴의 젊었을 때 모습이었다.

 

"네 아빠가 교육기금을 모았으니 내년 대학 입시에 쓰겠대." 쉬진이 말했다.

"또 네가 나중에 유학이 가고싶다면 그가 돌봐줄 수 있을거야."

 

쉬시린은 두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내가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니고...... 흠흠, 엄마 돈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그 사람 도움이 필요해요?"

 

쉬진이 무표정하게 반문했다.

"그럼 내가 돈이 부족하면?"

쉬시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바꿨다.

"돈이 뭐예요? 천금은 얻기 쉬워도 미인은 구하기 어려워요. 누가 미인을 두고 주름진 얼굴의 늙은 남자랑 살아요? 게다가 우리 집은 미인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외할머니가 덧소매 한 번 휘두르면 큰 별장 두 채의 값어치가 있는 걸요."

 

"너......"

쉬진은 굳은 얼굴로 뭔가 말하려 했으나 도중에 견디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당시의 정숴를 떠올렸다.

그는 타고난 다정다감한 씨앗이었다. 잘생기고, 달콤한 말을 하고, 매력은 어찌나 다양한지 다 알 수도 없다. 아무리 궁핍해도 풍채가 좋고 여자의 모든 환상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남에게 굽히지 않고 총애받는 법을 알고 이었다.

안타깝게도, 유리병에는 간장을 담지 않는 법이고 난봉꾼과 살아가서는 안되었다.

나비가 그리워하는 것은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꽃이다. 당신은 그 중 한 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철이 지나면 그는 다음 꽃 향기를 찾아다니게 될 것이었다. 막을 수 없다.

 

"이전엔 너와 그가 만나는 게 싫었어. 왜냐하면......"

쉬진은 저도 모르게 인정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활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너그러워도 한 명의 어머니로서 그녀도 결국 사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숴의 무책임한 난봉꾼 기질이 쉬시린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그녀의 훈육을 받았음에도 아들은 그 방면으로 발전하고 있는 추세였다.

"알았어요."

쉬시린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쉬시린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 큰 선녀의 결정은 모두 현명한 것이니, 나같은 범인은 단호하게 옹호할 수밖에요.”

이 아첨꾼. 스승도 없이 스스로 터득하다니. 천성은 별 수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숴를 따르며 컸다면 어떤 꼬락서니로 자랐을지 모를 일이었다.

 

쉬진이 말했다.

"무슨 짓이야? 클수록 정 씨 성을 닮았는데... 에, 너 계속 무릎 꿇고 있어."

 

쉬시린은 이 평가가 정말 싫었다. 정숴에 대한 그의 인상은 여전히 '허세'와 '무책임'에 머물러 있었다. 쉬진에게 혼난 기분이지만, 대놓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쉬진 자신은 정숴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 노릇을 하려면 이 일에 관여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분을 참고 달아났다.

 

쉬시린의 발소리를 들은 더우쉰은 등이 저절로 뻣뻣해지고 솜털이 곤두섰다. 쉬시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더우쉰의 방에는 두 개의 의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가 앉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많은 물건이 쌓여 있었다. 쉬시린은 주름 하나 없는 그의 침대 커버를 힐끗 보았다. 더우쉰이 그가 정리한 물건을 어지럽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바닥에 앉을 생각이었다.

 

그가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자마자 더우쉰은 마치 그의 행동을 예측한 것처럼 말했다.

"괜찮아, 침대에 앉아."

쉬시린은 의심스럽게 그를 보았다. 더우쉰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기질이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더우쉰은 침대 다리 쪽을 곁눈질하며 자신이 상대를 보지 않는 것처럼 가장했는데, 오히려 티가 나는 것 같다.

 

"태후마마가 뭐라고 했어?"

쉬시린은 침대 가에 앉아서 말했다.

"다음 주에 시험 보러 갈거야?"

"아마도."

 

쉬진 여사가 한 말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잘 생각해 봐' 였지만, 언외적 의미는 '억지부리지 마라'였다.

 

더우쉰은 의지와 충동을 지나 스스로 인정했다. 시험을 포기하는 행위는 순전히 이유 없이 소란을 피우는 일이었다. 그도 더우쥔량과 주샤오청의 앞에서 존재감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쉬시린은 잠시 앉아 있다가, 남의 침대라는 것을 잊고 사방으로 뒹구는 그의 습성을 회복했다. 그는 침대 위로 벌렁 나자빠져서 어쩐지 서글프게 말했다.

"그럼, 네가 대학에 붙어서 학교로 이사가면 우리 집에선 못 사는 거네?"

 

더우쉰의 방은 일년 내내 커튼을 치고, 밝기도 얼마 안되는 작은 스탠드를 켜고 있어 아침과 저녁을 분간할 수 없었다. 온 방안의 빛을 그러모아도 한 뭉치 밖에 안 되는데, 더우쉰의 각도에서 봤을 때 이 한 뭉치의 빛은 마치 모두 쉬시린이 끌어당겨 눈동자 속에 감춘 것 같았다.

 

그의 눈은 빛을 모아 불을 피워 더우쉰의 가슴 속을 뜨겁게 달구는 것 같았다. 자칫하면 좀전까지의 냉정함이 단번에 섬멸당할 것이었다.

 

쉬시린이 몸을 옆으로 돌리고 또 한 마디 중얼거릴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데, 네가 내년에 다시 시험을 쳐도 우리는 아마 같은 학교에 못 갈 걸. 내년에라도 결국 헤어질거야."

 

작은 불꽃이 갑자기 꺼졌다.

 

더우쉰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를 한참 동안 멍하게 바라보았다. 마음 속에 문득 명백한 깨달음이 일었다. 자신은 결코 시시해서 말할 필요도 없는 고등학교 생활에 미련을 둔 게 아니었다. 그가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은 쉬시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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